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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재미+의미 = 묘미의 광대, 김제동

by 이윤기 201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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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신영복에서 소녀시대까지...<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소통과 소신의 광대' 김제동을 가장 최근에 본 것은 약 한 달쯤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기념 토크콘서트 '사람사는 이야기 마당 김제동의 노하우(knowhow)' 공연이 열린 봉하마을에서 입니다.

간간히 비가 내리는 굿은 날씨에도 수천 명의 관객들이 모여 김제동의 한 마디에 울고 웃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즐겁게'(?) 추모하였습니다.

그가 개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묘미의 경지에 도달하였다는 것은 그날 확인하였습니다. 사람을 웃기는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웃기는 이야기 속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재미와 의미를 잘 섞어내는 재주를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재미와 의미가 잘 버무려 소통하는 묘미를 발휘하는 재담꾼입니다.

재미와 의미를 버무려 내는 '묘미'의 광대, 김제동

이제는 너무 유명한 연예인 되어버린 김제동을 직접 처음 본 것은 2002년에 통영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 공개 방송이 있던 날입니다. 2002년 8월 15일 통영마리나리조트 근처 해변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 공개 방송이 있었는데, 당시 김제동은 악기를 교체하거나 출연진이 바뀌는 중간 중간에 나와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유의 입담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능력때문에 불과 몇 달 사이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탁월한 진행자가 등장하였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을 때 입니다. 작은 인연이기는 하지만 그날 김제동이 진행하는 토크에 초대 손님으로 무대에 올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인연이 있습니다. 김제동씨는 기억도 못하겠지만 옷깃이 스치는 것 보다는 깊은 인연이겠지요.
 

 

오늘 소개하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2010년 2월부터 2011년 3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김제동의 똑똑똑>이라는 인터뷰 내용을 모은 책입니다. 개념 있는 광대 김제동은 이 책의 저자 인쇄를 모두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로 하였다는군요.

독자들은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는 셈이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입니다. 김제동이 만난 사람들의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또 책 값으로 좋은 일에 기부를 할 수 있으니 곱절로 유익한 책읽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제동이 만나러갑니다>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서 열린 김제동토크 콘서트에 다녀와서 곧장 읽었습니다. 토크 콘서트를 보고나니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책을 손에 들고나서는 좀처럼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숨 막히는 긴장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다음에 만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가 궁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매우 주관적인 것입니다만, 어쨌든 김제동이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쩜 이리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쏙쏙 골랐을까?

뿐만 아니라 김제동은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내가 묻고 싶은 것들을 잘 골라서 대신 묻고 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격식 없는 듯이 보이는 진솔한 만남과 소소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소설가 이외수에서 시작되는 인터뷰는 정연주, 김용택, 고미자, 엄홍길, 박원순, 정재승, 홍명보, 고현정, 강우석, 이정희, 김C, 남경필, 안희정, 양준혁, 설경구, 조정래, 황정민, 정호승, 수영, 최일구, 유인촌, 문용식, 나영석 그리고 신영복 선생까지 이어집니다.

'신영복에서 소녀시대까지'라는 광고 카피처럼 어떤 카테고리로도 묶을 수 없는 스물다섯명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꽤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김제동을 만나 나눈 이야기는 가벼운 듯이 느껴지지만 다른 들을 수 없는 좀 색다른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제동이 인터뷰한 스물다섯 명의 인터뷰이 중에서 정재승 교수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유명인이며 그가 쓴 칼럼들을 많이 읽었지만 정작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김제동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1969년생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알까 하는 의구심과 놀라움을 가졌었는데, 정재승 교수를 만나보니 한 술 더 뜨더라고 합니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이 천재과학자는 스물일곱에 카이스트 교수가 됐습니다. 과학과 인문학, 대중문화 등을 아우르며 맛깔 나는 글로 펼쳐내는 놀라운 재주도 가졌고요. 학문적 성공과 대중적 인기,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죠."(본문 중에서)

그는 과학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영화, 사랑, 의사결정 같은 주제들을 과학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하는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재승, "똑똑한 사람보다 공감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터뷰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는 과학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편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한 방향으로 사용된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평범한 과학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기여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질주하는 과학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질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요." (본문 중에서)

그는 과학을 국가성장 동력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리적 사고이자 방법론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그는 21세기는 공유하고 개방하고 협동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20세기엔 남보다 1.2배 똑똑하면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어요. 이젠 시대가 달라졌죠. 더 똑똑한 것 대신 다른 사람 100명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해요." (본문 중에서)

새로운 시대에 닥치는 문제는 경쟁만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뭔가 배우고 싶도록 해주어야 하며 평생을 두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독서가에 영화면 영화, 음악이이면 음악 모르는 게 없는 그는 김제동이 출연한 <스타 골든벨>도 다 보았을 뿐만 아니라 트위터 초고수라고 합니다. 술, 담배, 골프를 안 하면 가능하다는 것이 정재승 교수의 답입니다.

세상에 ! 트위터 하나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술, 담배, 골프를 안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정재승 교수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고현정, "연예인은 광대,  대중은 객석에 앉은 귀족"

많은 사람들이 '미실'로 기억하는 배우 고현정이지만, 저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역할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모래시계에서의 연기가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미실 역할을 맡은 드라마는 제대로 보지 않았고, '모래시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시청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튼 김제동과 만나 인터뷰하는 배우 고현정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연예인은 무대에서 광대고, 객석에 앉은 대중은 귀족이라'고 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긴 여운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녀처럼, 대통령처럼 취급받고 싶어 한다면 그건 정신병자야. 연예인은 무대에 선 광대고, 객석에 앉은 대중은 귀족이지. 우린 돈과 시간을 투자한 관객들을 어루만지고 즐거움을 줘서 보내야 하는 거야."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연예인들을 보면서 위로와 재미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고 열심히 일하면서 돈도 벌며 살아가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녀에게 들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기억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광석 팬, 김제동, 설경구...그리고 나도

김제동과 설경구의 만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설경구의 파란만장한 배우 생활이야기도 흥미 있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대목은 설경구와 김제동의 가수 김광석에 대한 편력이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김광석이다.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그의 노래는 누구의 사연을 대입시켜도 다 말이 되는 힘이 있다. 경구 형을 처음 봤던 건 <공공의 적>시사회 뒤풀이 때 그 때 형은 김광석 노래만 줄창 불러댔다." (본문 중에서)

 그런 설경구가 김제동을 만나고 나서 김광석 노래를 자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 설경구는 김제동이 김광석 제사를 지낸다(기일을 기억해서 소주 한 병 사놓고 한강가서 술마시는 정도)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깝'도 안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낮에 지하철 1호선 공연을 하고 밤에는 김광석씨 공연에서 표 받는 일을 도와줬어. 첫날 공연에서 신곡이라며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거야. 완전히 뿅갔지. 음향 콘트롤 박스에서 그 노래만 듣고 집에 가길 한 달 내내 반복했어." (본문 중에서)

설경구와 김제동은 언제 다시 만나 김광석 노래를 부르며 술 한번 마시자는 약속을 하더군요. 그 자리에 끼고 싶은 독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김광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김제동과 설경구가 만나서 김광석을 좋아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왜 그리 반갑던지요.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을 김제동과 설경구도 좋아한다는 것 아닙니까.

젊은 시절 혁명을 꿈꾸던 마흔 다섯의 두 친구가 한 달 사이에 나란히 세상을 떠났을 때, 김광석이 부른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노래가 하루 종일 입안을 맴돌았습니다. 십여년 전, 가족과 떨어져 태평양의 낯선 섬에 혼자 남았던 어느 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아스라이 남아있습니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김제동, 김광석을 좋아하는 설경구를 만나게 되어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김제동과 설경구가 나와 똑같이 김광석을 좋아한다는 것을 몰랐겠지요.

겨우 세 사람을 소개하였네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에는 모두 스물다섯 명의 흥미로운 인터뷰가 담겨 있습니다. 김제동의 표현처럼 '무늬와 색깔이 다르고 깊이와 넓이가 다른'사람의 재미, 의미, 흥미가 버무려진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김제동은 혼자듣기 아까운 이야기를 함께 듣고 싶어 풀어놓았다고 합니다. 같이 한 번 들어보시지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 10점
김제동 지음/위즈덤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