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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누가 뭐래도 DJ, YS는 민주화의 주연

by 이윤기 2011.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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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김대중 vs 김영삼>이라고 하는 책을 추천 받았을 때만 해도 좀 뻔한 책 제목과 이동형이라고 하는 알려지지 않은 저자 이름을 보고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을 추천받았지만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저자가 강준만이나 한홍구였다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저자 이동형은 강준만이나 한홍구에게 쉽게 써달라고 부탁하는 대신에 스스로 독자들이 부담없이 읽고 우리나라 정치와 얼룩진 근현대사를 이해 할 수 있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독자로서 처음 책을 펼쳐들었을 때는 저자 자신이 표현한 것처럼 3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모두 읽었을 때는 그가 결코 3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소개하였듯이 강준만, 한홍구와 달리 읽기 쉽고 명쾌하게 썼습니다.

30대 후반인 저자는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과 박정희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책은 인터넷에 연재하였던 글을 새로 다듬고 추가해서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연재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재미'였다고 합니다.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퍼져 있는 다양한 정보를 패러디하고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알려지지 않은 '야사'들을 중간마다 넣었다"고 합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쓴 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은어와 비속어' 짧고 직접적이며 간결한 인터넷 문법(?) 그리고 괄호 속에 담긴 특별한 암시적 표현들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저자의 의도대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537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에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양김의 대결을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노태우까지 일본 우파의 자문을 받았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라이벌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쓴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양김이 한국 정치에 등장하는 이승만 시대부터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 노태우 시대 그리고 김영삼 시대의 마지막인 김대중 당선까지의 현대사입니다.

저는 저자보다 10여 년 앞선 삶을 살았고 저자가 지적한 강준만, 한홍구가 쓴 책들도 꽤나 읽었습니다. 아울러 한국 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대를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 책에 담긴 현대사의 큰 흐름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곳곳에서 난생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도 적지 않게 만났습니다. 특히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은 주로 일본과 관련된 역사들입니다. 이를테면 '야쿠자와 한국정부의 밀월', '일본 내 친한파와 한국 내 친일파들의 커넥션' 글 들입니다.

우선 박정희가 관동군 장교 출신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을 때 가장 기뻐했던 집단이 일본 내 관동군 출신 장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치인들을 뒤에서 조정하고 야쿠자들을 거느리고 활동하는 흑막정치를 펼쳐다고 합니다.

"바로 기시 노브스케, 세지마 류조, 고다마 요시오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전후에 일본 수상까지 오르고 퇴임했으나 그의 막후정치는 계속되었다. (줄임) 그럼 이 세지마 류조가 누구냐? 박정희가 관동군에 있을 때 바로 그곳 만주에서 박정희의 상관이었던 자이다. 당시 직책은 관동군 참모 중령이었다. 그는 나카소네 수상의 스승이라고도 알려졌는데 박정희뿐만 아니라 전두환도 이 세지마 류조를존경하며 스승으로 모시고 보이지 않는 밀월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대동아전쟁 중, 도조 히데끼의 내각에서 승승장구한 인물로 만주국을 건설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다."

세지마 류조는 일본육사의 신화적인 존재였고 전후에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았지만, 흑막정치를 통해서 일본정부를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세지마상에게 가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편 고다마 요시오는 일본 야쿠자이지만 일본에서 정관계에 두루 걸쳐 있으며 실질적인 파워를 가진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야쿠자와 한국정부를 연결한 인물이 바로 '긴자의 호랑이' 정건영이라는 재일교포 야쿠자라는 것입니다.

기시 노부스케, 세지마 류조, 고다마 요시오 친한파 3인방

정인숙 사건이라고 하는 제3공화국 최대의 여성 스캔들 사건 당시 정인숙이 일본에 머무를 수 있도록 뒤를 봐준 자도 정건영이며, 국내 친일파들과 일본내 친한파들의 활약으로 한일협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정건영은 훗날 김대중 납치 사건의 사전준비와 수습에도 적지 않는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정건영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훈장을 수여받는다. 더 웃긴 것은 위에서 언급한 고다마 요시오도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당연히 받았다. 참 할 말이 없다."

일본 수상은 물론이고 한일 관계를 막후에서 연결한 일본 야쿠자들까지 대한민국 국가 훈장을 받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더욱 놀라운 사실도 있습니다. '88 올림픽 유치'가 바로 이들 일본 내 친한파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88올림픽은 세지마의 머리에서 나왔고, 세지마의 도움 없이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었다. 나카소네, 전두환 회담도 세지마가 만들었고, 전후 최초의 일왕 공식 사과도 세지마의 머리에서 나왔다."

저자는 신군부와 세지마의 관계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까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제기한다. 5·17비상계엄 확대 조치의 명분이 북한의 남침설이었는데, 그 명분을 일본의 JCIA가 다섯 번이나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유치에만 협력한 것이 아니라 이병철을 비롯한 한국 경제인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한국 전경련의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전두환이 백담사에 유배되었을 때는 선물을 보내 위로하였고, 노태우는 퇴임 후의 문제를 세지마에게 상의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자들이 한국 정부를 위하여 일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우익인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의 군사독재 정부와 손을 잡은 것뿐입니다. 세지마 류조가 후원하던 단체 중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단체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 일본 우파 정치인들이 권유?

이동형이 쓴 <김대중 VS 김영삼>을 읽으면서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일본 보수우익과 손잡은 정통성 없는 한국 군사독재 정권의 추악한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저자는 양김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을 반대하며 일관되게 민주화에 기여한 두 사람의 공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두 양반이 없었으면 민주화는 아직 오지 못했다에 내가 가진 돈 모두와 내 손모가지를 건다. 두 사람을 빼곤 한국의 정치문화를 얘기할 수 없다"고 장담합니다.

삼당 합당으로 민주화를 후퇴시킨 YS의 과오를 분명하게 비판하면서도 김영삼 정권 초기의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와 같은 개혁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합니다. 또 어떤 이유에서건 YS의 DJ비자금 사건 수사 중단 지시가 정권 교체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점을 확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YS의 DJ 비자금 수사 중단 지시에 대하여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YS의 수사 중단 지시가 결정적 요인이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유무를 떠나 폭로가 계속되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고 언론이 연일 지면과 방송으로 떠든다면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이때 YS가 검찰총장을 불러 김대중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유보하도록 지시하고 10월 21일 검찰총장이 수사 유보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 발표 바로 다음 날 이회창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신한국당 탈당을 요구하고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어 나타납니다.

10월 24일 김영삼은 야당후보 김대중과 1대 1 만남을 가지고, 이회창은 대통령과의 회동을 거부하고 3김 정치 청산을 주장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선거를 한 달 앞둔 11월 7일 김영삼은 신한국당을 탈당하게 되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후보에도 치우침 없이 대통령선거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국정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신한국당을 탈당하기로 했다. 어느 후보가 당선돼도 좋다.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국민이 선택한 후보를 적극 지지하겠다."

여당 소속 대통령이 엄정하고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하겠다는 것은 노골적인 DJ 지지는 아니지만 결국 공정한 선거관리만으로도 과거에 비하여 훨씬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하였습니다. 이회창과 김영삼의 갈등이 결과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대중 당선 일등공신은 김영삼이다?

군부재자 투표가 여당의 몰표로 이어지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김영삼이 김대중의 승리에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방해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며 선거에서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김대중에게는 이전 여러 선거에 비하여 유리한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김영삼이라고 하는 두 거물 정치인의 대결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흥미를 높이고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특히 YS, DJ , 박정희의 대결을 다루고 있는 제 3공화국의 주요 사건은 이미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박정희 VS 김대중의 대통령선거, 유신헌법, 김대중 납치사건, 육영수 암살사건, 장준하 선생 의문사, YH 사건, 김형욱 실종 사건과 박정희의 죽음에 이르는 사건의 현장을 자세하고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또 서울의 봄, 서울역 회군과 심재철 그리고 유시민, 삼청교육대 사건, 국제그룹 해체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월 민주항쟁, 칼기 폭파 사건 등 제 5공화국 당시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던 사건들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또 여소야대의 13대 국회의원 선거와 노태우의 3당 합당, 김영삼의 14대 대통령 당선 같은 주요 사건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울러 김영삼 시대의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1994년 전쟁위기, IMF 국가부도 사태와 김대중 당선에 이르는 한국현대사의 주요장면을 깊고 넓게 보여줍니다.

방대한 자료 뿐만 아니라 적절한 상황 묘사 그리고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까지 모아놓아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저자는 양김의 라이벌 정치와 경쟁이 한국 정치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지만, 그들의 경쟁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평가합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불평불만과 불신, 무관심을 벗어던지고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의도한대로 정말 강준만이나 한홍구가 쓴 책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고 명쾌합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 10점
이동형 지음/왕의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