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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하워드 진,"객관적인 역사는 없다."

by 이윤기 2008.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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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불복종의 이유>, 그리고 <미국민중사>를 쓴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졌으며, 흑인 민권운동부터 반전운동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운동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이자 활동가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D. 조이스가 쓴 <하워드 진>은 진에 대한 첫 번째 전기라고 할 만한 책이다.

그렇지만, 진의 사생활이나 사회운동가로서 삶의 궤적보다는 진이 쓴 많은 책을 중심으로 책이 쓰인 과정, 시대적 상황, 책에 대한 학계와 전문가들의 평가, 그리고 책이 그 당시 미국 사회와 미국 사회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일반적인 전기와 많이 다른, 수백 개의 주석이 붙어 있는 마치 학술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전문 느낌을 주는 책이다. 또 다른 특징은 이 책이 아직 살아 있는 하워드 진의 전기라는 점이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전기가 살아 있는 동안 쓰이는 일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하워드 진>은 저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객관적인 역사서술의 형태를 띠지 않았다. 데이비드 D. 조이스는 스스로 하워드 진이 쓴 <베트남 철군의 논리>, <미국민중사>와 같은 책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존경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데이비드 D. 조이스는 다분히 있을 법한 '객관성을 잃을 만한 우려'에 대하여, 진의 인터뷰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객관성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고, 모든 역사는 하나의 관점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언제나 수없이 많은 사실들 가운데 일정한 부분을 선택하며,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당사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객관성을 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저자 서문 중에서)

이 책은 하워드 진을 존경하는 데이비드 D. 조이스에 의하여 쓰였고, 서평 역시 하워드 진이 쓴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불복종의 이유>와 같은 책을 읽고 그의 역사적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쓰였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은 가능하지 않다

하워드 진은 1922년에 태어났으며, 양친은 모두 유럽에서 이주해온 유대인이었다. 수많은 직업을 전전한 가난한 부모를 둔 '진'은 배를 곯은 적은 없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짧은 대학생활을 그만두고, 해군 공창에서 노동자생활을 하다가 공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진은 공부를 계속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3년 동안 조선소와 막노동, 양조장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49년 뉴욕대학에 입학한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거쳐 역사학을 전공으로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진은 자신의 첫 인생 33년을 이렇게 썼다.

"실업과 열악한 일자리의 세계, 대부분의 시간을 비좁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면서 두 살, 세 살짜리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고 학교나 직장에 나가야 했고 아이들이 아파도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개인 의사에게 데려가지 못하고…… (중략)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조차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적절한 학위를 갖추고 나서 그 세계를 빠져나와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나는 결코 그 세계를 잊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계급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진은 1956년 흑인여자대학인 '스펠먼'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부터 흑인 민권운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고 참여하게 된다. 진은 "선생은 강의실 안에서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을 담아 <남부의 신비>라는 책을 쓰게 된다. 그리고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통하여, 민권운동이 인종 문제만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표현의 자유, 언론과 출판,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수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흑인 인권운동과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한 진은 마침내 1963년 스펠먼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소송을 제기하면서 스펠먼 대학과 싸움을 하지만, 인생을 속박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싸움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남부의 신비>, , <뉴딜단상>과 같은 책을 집필하게 된다.

진은 뉴딜정책의 성과를 "공황을 맞아 급격히 몰락해 가던 미국의 중산층을 살려냈고, 실업자의 절반가량을 구제했으며, 가장 밑바닥 계층에게 어렴풋한 희망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평가했다.

진의 평가에 따르면, 불황이 늪에서 빠져나오자 미국은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실업자들, 중산층의 그늘에 가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2000∼3000만명의 극빈자들, 지극히 무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설비가 남았지만, 그것은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기보다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시설만 남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촉구하는 지도자를 믿지 말라 

<달리기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진이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진은 객관적인 역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역사란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나도 나 자신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나는 세상을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민중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싶다." (본문 중에서)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은 곧 세상이 이미 특정한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략)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중립을 지킨다, 혹은 방관자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곧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부역한다는 의미다. 나는 부역자가 되고 싶지 않다." (본문 중에서)


그리고 진은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도 일관하게 유지하였다. 사회적 행동과 책을 통한 공부를 적절히 연결하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하워드 진은 <베트남 - 철군의 논리>를 통해 반전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난한 민중을 착취하는 소수의 부유층으로 구성된 독재정권조차 공산주의보다는 낫다"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정부의 논리에 진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호치민 치하의 통일 베트남이 월남의 독재정권보다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승리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그는 자시의 학생들과 미국인들을 향하여 "잘못은 전쟁 세력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동의 없이 군사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하고 정, 군사, 재계의 복합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못 박았다.

훗날 하워드 진은 베트남전의 교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무차별적인 살상무기로 대변되는 현대의 군사기술을 고려할 때, 모든 전쟁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에 불과하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전쟁일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전쟁을 촉구하는 정치 지도자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본문 중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두 번의 전쟁에서 수십만명의 어린이가 죽었으며,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서 수십만명의 어린이와 민간인이 피해를 봤을 뿐만 아니라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전쟁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

데이비드 D. 조이스는 자신이 쓴 책 <하워드 진>에서 하워드 진 저작 중에서 <불복종과 민주주의>, 그리고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는 <미국민중사>를 살펴보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불복종과 민주주의에서 진은 불복종운동과 관련된 아홉 가지 잘못된 비난과 오해에 대하여, 아홉 가지의 새로운 원칙을 제시한다.

불복종이란 "필수적인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법률을 위한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시민의 임무는 법과 양심을 세우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법과 양심의 간극을 메워가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하는 사람은 잘못된 법에 대하여 더 큰 시민 불복종으로 맞서야 한다. 정부는 국민과 동의어가 아니다. 필요할 경우에는 국민은 정부를 교체하기도 해야 한다와 같은 원칙들을 제시한다.

진은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 정의의 발전과 함께 해온 건강한 혼란으로, 거짓 질서를 지키는 자들과 맞서는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워드 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민중사>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일원서각에서 <미국민중저항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최근에 <미국민중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신화와 허울을 벗겨낸 미국 역사를 서술한 하워드 진의 관점은 <미국민중사>에 나오는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상당히 긴 인용문을 옮겨 본다.

"역사를 바라볼 때, 선택과 강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을 편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아라와크(인디어 부족)의 관점으로 본 미국, 노예의 관점에서 본 미국 헌법, 체로키 인디언의 눈에 비친 앤드류 잭슨, 뉴욕의 아일랜드인들이 바라본 남북전쟁, 스코트 부대 탈영병의 관점으로 본 멕시코전쟁, 로웰 직물공장의 젊은 여성노동자가 바라본 산업주의, 쿠바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스페인 - 미국전쟁, 루손의 흑인 군인들이 바라본 필리핀 점령, 남부의 농민들이 바라본 '도금시대', 사회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제1차 세계대전, 평화주의자들이 바라본 제2차 세계대전, 라틴아메리카 일용노동자들이 바라본 뉴딜정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신화와 허울'을 벗겨낸 미국 역사 <미국민중사>가 하워드 진에 의하여 쓰였다. 미국민중사는 인종주의, 제국주의, 성차별, 계급구조, 폭력성, 환경 파괴 등의 문제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민중사는 미국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중단의 실패, 계속되는 변화를 위한 희망

하워드 진은 1988년 은퇴를 결심하지만, 사회운동가로서 역사학자로서 활동은 '중단의 실패'로 말미암아 팔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7월 4일생>의 저자 론 코빅은 하워드 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희망과 힘을 주었고,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불의와 맞서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궁극적 승리를 거두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신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본문 중에서)

"나는 희망에 차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은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하워드 진은 여전히 희망을 품을 자격이 있다. '중단의 실패'로 여전히 희망에 차 있다. 진은 자신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를 남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남길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하워드 진> 데이비드 D. 조이스, 안종설 옮김 / 열대림 - 392쪽,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