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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시내버스와 걷기 여행은 찰떡궁합?

by 이윤기 201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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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김훤주가 쓴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걷기 여행의 기쁨과 즐거움이 알려지면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뒤이어 전국 고장마다 수많은 둘레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내노라 하는 명소가 된 이런 길을 걷기 위해서는 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마음먹고 떠나야 합니다만, 굳이 이런 이름 난 길이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많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경험담입니다.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큰마음 먹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떠나지 않아도 되고, 비행기나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걷기 여행을 오롯히 즐기려면 시내버스를 타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를 쓴 김훤주 기자는 걷기 여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교통수단은 자가용이 아니라 시내버스라고 합니다.

 

그가 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시내버스만 타고도 이런 곳을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동차 세워두고 시내버스 타고 한 번 떠나보라고 ‘설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은 2011년 한 해 동안 시내버스 타고 다닌 기행문이면서 동시에 경남도민일보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시내버스 타고 떠나는 걷기 여행을 소개하고 권유하는 안내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이 책에 나온 버스 시간표만 들고도 따라 나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기자는 서문에서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 보라고 합니다. “언제 돌아오지? 버스 배차는 어떻게 되지?” 하는 걱정은 내 버리고 물 한병 과자부스러기 정도만 넣고 길을 나서보라고 합니다.

 

저자의 권유처럼 그냥 마음 내킬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시내버스 타고 떠나는 걷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어디에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준비없이 떠나도 즐거운 시내버스 걷기여행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가나 혹은 늦은 밤까지 걷는 경우는 있었지만, 어디 좋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시내버스 타고 훌쩍 떠나는 걷기 여행이기 때문에 굳이 하룻밤을 묵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습니다. 2011년 봄 진행 속천~행암 바닷가 걷기에서 시작하여 그해 겨울 사천 종포~대포 바다가 걷기까지 49군데 걷기 여행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흔 아홉 곳을 다 소개할 수 없으니 유독 마음을 끄는 몇 곳만 함께 둘러보겠습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이 바라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이라 여겨집니다. 저자와 함께하는 블로거 모임을 비롯하여 여러 번 이곳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시간과 여건이 맞지 않아 결국 한 번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합천 영암사지 벚꽃 길은 영암사지와 가회마을을 잇는 길인데, 모산재와 영암사지라는 기운 넘치는 장소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영암사지를 일컬어 “여기 망한 절터는 오히려 당당”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모산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철 내뿜습니다. 영암사지는 모산재의 기운을 통째로 품어 안는 명당인 셈이지요...... 단정한 삼층석탑과 화려한 쌍사자 석등, 높게 쌓아올린 돌축대가 그런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영암사지는 찬찬히 살펴보면 두시간도 족히 걸리고 서두르듯이 둘러봐도 1시간은 잡아야 한다는군요.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둘레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날리고 소나무들 사이에 들어앉은 진달래는 가녀린 꽃을 흔듭니다.”

 

영암사지뿐만 아니라 가회로 내겨가는 7km남짓한 벚꽃 길도 한적하고 적막하면서 아름다운 길이라고 합니다. 진해나 화개장터 같은 복잡한 꽃구경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지요.

 

영암사지에는 나물전과 국수, 두부, 막걸리는 파는 포장마차도 알려줍니다. 근처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손수 기르거나 뜯은 채소와 나물로 안주와 반찬을 만드는 곳인데, 벚꽃이 지는 시기에 딱 맞추면 막걸리 잔에 꽃잎을 띄우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답니다.

 

이 책에 나오는 49곳 여행지 대부분에서 저자는 밥과 술 혹은 주전부리를 먹어 본대로 소개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점빵에서 라면과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걸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입안에 살살 녹는 돌장어 구이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합니다. 어느 한 곳도 맨입으로 지나치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만 타고 가는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시내버스가 시계를 넘어가기도 하기 때문에 코스만 잘 연결하면 전국 일주도 가능하다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김훤주 기자의 시내버스 여행이 경남을 벗어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여태 다녀온 곳은 모두 경남입니다. 어디를 가던 지 하루 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요.

 

내년 봄엔 안민고개 꼭 다시 가보리라

 

이 책에 소개된 곳 중엔 저도 더러 다녀 온 곳이 적지 않습니다. 밤 벚꽃길 안민고개, 창녕 우포늪, 귀산 바닷가, 주남저수지와 동판저수지, 하동화개면 십리벚꽃길, 해양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마산 바다길, 창원 지전면 골옥방, 창녕 옥천 골짜기, 함안 은행길과 고분길, 김해박물관들과 왕을, 저도 연륙교와 비치로드, 그리고 무학산 둘레길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많은 곳 중에서 온전히 걸어서 가본 곳은 무학산 둘레길 밖에는 없습니다. 걸어 다닌 여행은 차타고 다녀온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자가 ‘세 시간 발품이면 평생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장소로 꼽은 창원 안민고개 밤 벚꽃 길은 최근 자전거를 타느라 자주 다니는 길입니다. 어떤 날은 자전거 기어를 저단으로 놓고 여유롭게 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자전거 기어를 중간쯤으로 맞추고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날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느라 안민고개를 자주 찾지만 정작 군항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이 복잡한 곳에 갈 엄두조차 내지 않습니다. 김훤주기자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바로 지척에 있는 안민고개 밤 벚꽃 구경은 해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내년 봄에는 열일을 제쳐놓고 안민고개 밤 벚꽃을 보러 갈 작정입니다.

 

“봄철 안민고개의 으뜸가는 미덕은 이렇게 우거진 벚나무들이 뿜어내는 꽃들에 있습니다.(중략) 먼저 진해 시내에서 쳐다보면 연분홍 둥실한 띠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올라가는 장관이 저기가 안민고개임을 알려줍니다. 그 연분홍은 보는 순간 사람을 황홀하게 할 만큼 강력합니다.”

 

고갯길을 오르며 내려다보는 진해 시가지와 바다 풍경도 그리고 해가 지면 볼 수 있는 진해 시가지 야경도 멋지다고 하였는데, 이 풍경들은 벚꽃이 피지 않은 때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년 봄에는 잊지 않고 황홀한 연분홍에 취해볼 것입니다.

 

사실 이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 싶은 곳이 적지 않아 안민고개 밤 벚꽃 길 뿐만 아니라 이 책 여러 페이지를 접어 두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내버스에 대하 가지고 있던 선입견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시간을 다퉈 달리는 복잡한 도시의 시내버스의 불친절과 난폭운전이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는 군내버스에는 없습니다.

 

“시내버스는 이처럼 사람을 찾아 꼬불꼬불 다니지만, 자가용 자동차는 출발지와 목적지를 최대한 직선으로 이을 뿐이랍니다.”

 

날마다 버스를 타는 할머니를 태우기 위하여 배차 시간을 어기고,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어른들을 내려드리고, 기사와 승객이 그냥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가 아니라 대소사를 나누고 ‘농’을 건네기도 하는 시골버스의 넉넉함. 사람을 기다리고 배려하는 버스가 있습니다.

 

동행이 없는 여행이라 쓸쓸한 줄 알았더니...

 

김훤주 기자가 버스 타고 다닌 길은 인적이 드문 길이 아니라 마을이 있는 길이고,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입니다. 그가 쓴 글을 읽어보면 시간에 쫓기는 느낌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느릿느릿한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납니다. 시간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닭살이 돋을 즈음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눈으로만 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한 번도 동행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 혼자다니면서 심심했을 수도 있겠다는 하릴없는 걱정을 하였는데, 책 말미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종포에서 대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동행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하나는 갯벌이고 하나는 햇살입니다. 갯벌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앞에서 맞아주었고 햇살은 산너머로 질 때까지 줄곧 따라오며 오른쪽 어깨에다 잘게잘게 자신을 쪼개어 뿌려주었습니다.”

 

시를 읽는 듯한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싶었는데, 저자는 이미 시집을 낸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의 세심함을 엿 볼 수 있는 문장은 곳곳에 있습니다. 그가 쓴 글을 읽다보면 가볍게 설렁설렁 걷는 걸음이지만 오감을 열어놓고 걷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답니다.

 

“꽃은 금방 피었다 바로 지지만 잎은 한결같지요. 이에 더해 연두에서 신록으로 신록에서 녹음으로, 녹음에서 단풍으로 색깔을 바꾸는 섬세함과 과감함까지 갖췄습니다.”

 

“강물 따라 걷는 즐거움은 엇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병풍처럼 잇따라 펼쳐진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벼랑도 햇볕이 드느냐 마느냐에 따라 색깔과 느낌이 다릅니다. 같은 대숲이고 같은 소나무지만 앞에 강물이 놓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정감이 다르고 강물이 햇살을 튕겨내는 정도가 어떤가에 따라서도 그 맛은 달라집니다.”

 

저자는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해내는 섬세함을 갖추었고, 빛과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감수성을 발휘합니다. 시내버스만 타고 걷기여행에 나선다고 하여 누구나 이리 될 수는 없겠지요.

 

섬세함과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저 같은 사람들은 그냥 버스 노선만 보고 길을 떠난 후에 ‘막상 가보니 별거 없더라“ 하지 마시고 이 책을 먼저 읽고 가시던지 혹은 책을 들고 따라 걸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 10점
김훤주 지음, 경남도민일보 엮음/산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