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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제주에 한라산만 있는 줄 아시나요?

by 이윤기 2012.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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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신기, 문신희가 쓴 <제주오름 걷기여행>

 

제주여행, 말만 들어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지요? 대학 시절, 과도하게 시국을 걱정하느라 제주로 가는 졸업여행을 땡땡이 치고 학교에 남았었는데, 졸업 여행비는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맨 첫 번째 제주여행을 갔을 때는 다른 사람처럼 용두암, 정방폭포 그리고 또 다른 폭포와 동굴, 이름난 식물원을 둘러보면서 수학여행과 별로 다르지 않게 2박 3일을 보냈습니다.

 

그 뒤 두 번째 제주여행 때는 성산 일출봉, 무슨 목장, 민속마을을 둘러보았으며, 첫 번째 여행과 달리 현지인 동료의 추천을 받은 이른바 제주의 맛집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세 번째 여행은 가족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략 10년 쯤 전인데 자동차를 배에 싣고 제주까지 갔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7살 무렵이었는데, 몇 군데 테마파크를 들렀던 기억과 한라산 등산을 하였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비가 온 다음날 한라산을 올라갔었는데, 백록담에 올라갔을 때 파란 하늘이 활짝 열리며 백록담은 물론이고 하늘빛과 닮은 제주바다를 한 눈에 보는 행운을 경험하였습니다. 둘째 아이가 일곱 살 밖에 안 되었을 때라 한라산 정상을 다녀오는 내내 등산객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았던 특별한 경험을 하였지요.

 

오랫동안 벼르던 한라산 등반이었는데, 청명한 날씨까지 따라주는 행운 때문에 평생 잊기 어려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한라산을 다녀온 뒤에 아이들과 백두산도 함께 가자고 약속하였는데 여태 지키지 못하고 있네요.

 

그 뒤에는 제주도에 출장을 갔다가 잠깐씩 틈을 내어 '우도'에도 다녀오고, 무슨 해수욕장도 다녀왔구요. 4~5년 전에는 스무 명 남짓한 대학생들과 겨울 방학에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하고 한라산 겨울 등반을 하고 왔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친구들까지 있었던 그룹을 이끌고 3박 4일 동안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이른바 현지인이 소개하는 제주 맛집 순례를 하고, 육지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은 한라산 겨울 산행을 하였습니다.

 

자전거를 280여 km 타고, 자전거 길에 만나는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제주의 마을과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이 때 처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주 올레길이 처음 열리던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라산 겨울 산행 경험 역시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겨울에 눈 구경 한 번 하기 힘든 남쪽에 살다가 사방천지가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은 설국이었습니다. 허리 깊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라산 정상을 다녀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난 여름, 제주 오름에 반하다

 

한동안 제주 여행의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올 여름 끝무렵에 제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연수의 절반 이상은 구럼비 바위를 지키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강정마을과 연대하는 일정이었습니다만, 육지로 돌아오는 날은 제주여행 일정을 세웠습니다.

 

낚시를 좋아하지도 않고 유명한 관광지는 싫증나고, 한라산을 다녀오는 건 무리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던 차에 고민을 해결해준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바로 문신기·문신희가 쓴 <제주오름 걷기여행>(디스커버리미디어 펴냄)입니다.

 

 

 

마음속으로 '옳다, 바로 이거야' 하면서 이 책을 신청하고 조별로 나누는 연수 프로그램 중에서 오름을 다녀오는 일정에 참여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대개 낯선 경험을 시작할 때는 먼저 책부터 골라 공부를 시작하는 습관이 있어 제주로 떠나기 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문신기 형제가 쓴 <제주오름 걷기여행>은 제주에 있는 380여 개의 크고 작은 오름 중에서 저자가 고른 34곳의 오름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입니다. 제주에는 한라산만 홀로 우뚝 서 있는 줄 알았던 저는 380여 개나 되는 오름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자인 문신기 형제는 제주가 고향입니다. 대표저자인 문신기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한량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합니다. 독자들은 대부분 책을 읽는 동안 화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를 설명하는 듯한 묘사와 아름다운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 오름'을 소개하는 글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매끈한 풀밭이 오름을 덮고 있어 비단 치마를 두루고 있는 여인의 우아한 맵시를 연상시킨다… 높이 서 있는 모양새가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원추형 삼각뿔 같았다. 정상의 둥근 분화구에서 능선이 날씬하게 흩어져 있는 삼나무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겹고 아름답다." (본문 중에서)

 

"지상부터 정상까지 막힘없이 단숨에 쭉 뻗어 있었다. 거침없이 올라간 모습을 보자 얼핏 청춘의 단단한 팔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가갈수록 거대해지더니 이윽고 눈에 버거울 정도로 가득 찼다." (본문 중에서)

 

누구나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지요. 화가의 눈을 거쳤기 때문에 마치 그림을 설명해주는 듯한 이런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저자는 오름 꼭대기에 오르면 사방을 둘러보며 주변의 다른 오름들을 즐겨보라고 일러줍니다. 예컨대 다랑쉬오름에 오르면 아끈 다랑쉬, 용눈이, 손지오름, 백약이 오름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채우고, 멀리 성산일출봉과 한라산까지 담아가야 제대로 오름 여행을 하는 것이랍니다.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과 자연경관 간직한 오름들 

제주에서 돌아오는 날, 동료의 도움과 안내를 받아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만 탐방이 가능한 사려니 숲길과 사려니 오름을 다녀왔습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 숲에 들어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한 여름 더위에도 나무 사이로는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고, 거대한 나무들이 내뻗은 가지에 태양이 가려져 원시 자연의 느낌이었습니다.

 

삼나무에는 초록으로 뒤덮힌 이끼가 가득하고 흙과 벌레와 식물들이 하늘로 뻗은 큰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삼나무는 가지가 크고 뿌리가 얕은데도 강한 폭풍우와 거친 바람을 이겨내는데, 그 비밀은 군락을 이루며 뿌리를 한데 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삼나무는 가지가 크고 뿌리가 얕은데도
강한 폭풍우와 거친 바람에 끄떡도 하지 않는다.
비밀은 단순하다.
군락을 이루며 사는 삼나무는 얕은 뿌리를 한데 얽는다.
삼나무 한 그루의 뿌리는 모든 나무의 뿌리이다.
모든 나무의 뿌리가 땅속에 서로 얽혀 있어
아무리 강한 태풍이 지나가도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다. 
- 린다&리처드 에어의 <자연에서 배우는 행복의 기술> 중에서

 

사려니 숲에는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살아가고, 1933년에 인공으로 조림한 삼나무 박물관이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멋진 삼나무 숲이 바로 이곳이라더군요.

 

사려니 숲길 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사려니 오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려니 오름으로 가다보면 한라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독새기 쉼팡(쉼터)이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입니다.

 
사려니 오름에 오르면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 남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사려니 오름 전망데크에 서면 가까이는 올망졸망한 마을과 건물들이 그리고 크고 작은 숲과 감귤농장들이 보이고 좀 더 멀리로는 푸른 바다까지 시선이 이어집니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던 제주여행이 올레와 오름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렇게 빼어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풍광들 때문일 겁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제주 오름 여행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이 책에 나오는 34곳의 대표적인 제주 오름을 10개 코스로 나누어서 정리해두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오름들은 한 번에 몇 군데씩 들러볼 수 있도록 코스를 짠 것이지요.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오름들의 경우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과 자연경관을 감추고 있다고 합니다. 이쪽 오름에서 건너편 오름을 바라보는 모습과 저쪽 오름에서 이쪽 오름을 다시 바라보는 오름을 풍광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만나고 교감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제주 오름 여행이 딱 입니다. 제주 오름을 다니다보면 자연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제주 토박이 문신기 형제가 쓴 이 책을 한 권이면 위안과 치유의 제주 오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혹시 제주 여행을 갈 때마다 이름 난 관광지만 찾아다녔다면, 다음 제주 여행 때에는 적당한 코스를 정하여 제주의 속살을 경험할 수 있는 오름 여행에 나서보시길 권합니다.

 

 

제주오름 걷기여행 - 10점
문신기.문신희 지음/디스커버리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