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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휘발유값 20% 인하, 과연 좋기만 할까?

by 이윤기 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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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간 국제 원유가격이 5배나 인상되고 이른바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휘발유 소매 가격이 1리터당 2000대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 원유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면 국내 휘발유 값도 곧장 따라 오르지만, 국제 원유가격이 내려가도 국내 휘발유 값은 좀처럼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정유회사들이 담합으로 소비자들만 봉이 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최근 국민이 석유회사를 만들자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20%싼 값에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공급을 기치로 내걸고 설립준비를 하고 있는 이른바 ‘국민석유회사 설립’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국내 정유시장은 SK,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 등 4대 정유회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휘발유 가격을 비롯한 석유류의 가격과 공급을 조절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 인식이며, 실제로 작년만 하여도 4대 정유회사가 기름값 담합 행위가 적발되어 4,34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되었습니다.

 

또 정부가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의 소비자 가격을 낮추기 위하여 전국에 600여 곳의 알뜰 주유소를 설치하자 주변 주유소의 가격을 낮추어 알뜰주유소 정책을 무력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국민석유회사, 약일까? 독일까?

 

결국 이 같은 4대 정유회사의 독과점 구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부담이 되어왔습니다. 국민석유회사 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유산업은 1960 ~70년대 낡은 산업구조를 그대로 이어 온 탓에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비싼 기름값을 국민에게 부담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4대 정유회사는 1년에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남기고 있고, 정부는 유류세로 매년 26조원 이상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국민석유회사 설립 준비위원회는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소비자들이 국민주 방식으로 직접 석유회사를 설립하여 20% 저렴한 석유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들은 매년 배당금으로 외국 투자 자본들에게 빠져나가는 돈만 해도 수천억이고, 또 국내 정유회사들이 값비싼 중동산 원유를 들여오고 있어 고유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래서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면 외국 자본으로 빠져나가는 배당금이 사라지고, 중동산 원유에 비하여 훨씬 가격이 싼 캐나다산, 시베리아산 저유황 원유를 도입해 와서 가격을 20%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여 20% 싼 석유를 공급함으로써 가계 부담을 20조원 이상 경감시켜 내수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국산 촉매 기술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중소기업이 성장함으로써 10조원 이상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장미빛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또 국민석유회사를 사회적 기업 형태로 운영하여 5천개 이상의 착한 일자리를 만들고 중소기업과 상생함으로써 민생 경제를 살린다는 희망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 석유회사설립을 위하여 1차로 5000억원의 자본금을 모으고 있는데, 이미 약정 주식만 해도 617만 2550주에 이르고 약정액은 600억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국민석유 회사는 1차 목표로 10만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하여 국내 시장의 3.5%를 차지한 후 30만 배럴까지 생산량을 늘여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휘발유값 20% 인하, 과연 좋기만 할까?

 

언론보도를 보면 최근 경남지역에도 국민석유회사 경남준비위원회가 출범하여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였던 여러분들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20% 값싼 휘발유를 공급하기 위하여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는 일이 정말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기만 할까요? 저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유회사들의 폭리는 막아야 하겠지만 휘발유 가격을 낮추어 휘발유 소비를 늘이는 것은 환경 친화적인 대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석유전문가들과 환경, 생태학자들 그리고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석유자원의 고갈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원유 생산량은 이미 최고점을 찍었고 앞으로 더 이상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를 늘이는 특히나 화석 연료의 소비를 늘이는 것은 바람직한 국민투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단기적으로 보아도 석유 가격 인하고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석유회사라가 만들어져 기존정유회사들과 경쟁하면 일단 소비자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내려가면 휘발유 사용이 늘어나게 될 것이 뻔한데, 그렇게 되면 산업구조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생활도 석유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이 싸지면 대체에너지를 개발한다거나 풍력, 태양광 같은 친환경에너지를 개발이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고, 국민들도 가스차나 전기차 대신 휘발유를사용하는 가솔린 엔진 차를 계속 타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환경운동,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였던 분들이 석유가격 인하라는 한 측면에만 주목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국민 석유 회사를 통해 값싼 석유가 공급된다고 하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한 석유산업 그리고 연관 산업에 국고를 쏟아 부어야 하고, 상대적으로 친환경에너지,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국회가 휘발유 가격 못 낮출까? 

 

원유 가격 원가를 공개하는 일도, 정유회사들이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는 것도 대통령을 제대로 뽑고 국회와 정부가 제 역할을 하게 하면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국민주로 5000억 원을 모집하여 20~30년 후 사양 산업이 될게 뻔한 석유회사를 설립할 일이 아니라 풍력발전 회사를 설립하던지, 태양광 발전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친환경적인 미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국민석유회사를 만드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일까요? 최근 창원에서 시작한 햇빛발전소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미래를 위한 투자일까요? 

 

석유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국민들이 석유회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스마트폰으로 폭리를 취하는 삼성이나 애플을 견제하려면 국민 스마트폰 회사를 설립해야 하고, SK,  KT 같은 거대 통신사들이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걸 막으려면 국민 통신회사를 설립해야 할까요?

 

베네수엘라의 태통령 차베스는 이런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였지요. 꼭 차베스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정부가 제 역할만 한다면 국민석유회사를 세우지 않아도 20% 인하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석유회사 설립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까지 말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방향에서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