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의료계의 이단아, 응급구호의 카우보이, 국경없는 의사회

by 이윤기 2013. 1. 8.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1792년 프랑스혁명의 여명기에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일하던 도미니크 래리라는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부상병들을 재빨리 군병원으로 후송하고 이동 중에 처치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마차에 기본 처치 물자들, 의료팀과 보조원들 그리고 붕대를 나르는 북치기 소년을 싣고 전쟁터에 접근하였다.

 

그의 고안은 ‘앰뷸런스’가 되었고, 래리는 전쟁을 통해 응급의학 전문가가 되었다. 그는 전염병 병자들을 격리시키는 법을 알아내었으며, 수백 건의 사지 절단을 시술하여 오늘날도 그의 이름은 어깨 관절에서 팔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명’으로 쓰이고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브랜디를 마취제로 사용하고 천 조각을 입에 물리는 수술이 그에 의해서 고안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경없는 의사회’를 소개하는 데 그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은 이런 외과적 혁신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이 공평한 의료 시술을 하였다는 점이다.

 

“상처가 자해한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가려내는 것은 판사들이나 할 일이다. 의사는 환자의 친구여야 한다. 그는 죄가 있는 사람들과 죄 없는 사람들을 동시에 돌봐야 하며, 단지 상처만을 돌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머지는 그가 알 바가 아니다.” (본문 중에서)

 

도미니크 랠리가 전쟁터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해한 병사를 구해준 뒤에 남긴 글이라고 한다. 군의관이었던 그는 군복을 입은 군인이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으며, 심지어는 적대국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의사에게는 적군도 아군도 부상병은 똑같은 환자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부하들에게 래리가 부상자들을 모을 수 있도록 그가 있는 방향으로 총을 쏘지 말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래리는 총을 맞고 포로가 돼 처형의 위기를 맞았지만, 프러시아 최고사령관인 게브하르트 폰 브뤼쳐는 그가 전에 자기 아들이 전장에서 다쳤을 때 목숨을 구해준 의사라는 것을 알고는 프랑스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댄 보르토로티가 쓴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화이다. 그는 군의관이었다는 사실만 빼고 나면 200년 후 국경없는 의사회(MSF)에서 활동하는 의사들과 흡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200년 후 프랑스 의사들을 중심으로 MSF가 창립된 것도 순전히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댄 보르토로티가 쓴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단체 ‘국경없는 의사회’를 소개하는 책이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1971년 프랑스에서 창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자연재해, 전쟁, 기아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국경없는’ 인도주의 응급 의료 구호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단체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탄생

 

1968년 젊은 프랑스 의사 한 팀이 나이지리아 분리주의 지역인 비아프라의 적십자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인종 학살의 증인이 될 것을 결심한다. 분노한 그들은 적십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매에서 적십자 완장을 뜯어버리고 나이지리아 정부를 비판한다.

 

그들은 귀국하자마자 인종학살을 알리기 위한 단체를 구성하고 바로 응급의료단을 조직한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홍수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의사모임이 조직되며, 1971년 두 단체가 만나 ‘국경없는 의사회’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프랑스어로 Médecins Sans Frontiéres의 약자다. 오늘날 MSF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적 인도주의 의료 단체로 매년 80여 개 국으로 3000명 이상의 자원자들을 파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도주의 NGO’라고 불리고 있다. 노벨상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999년 국경없는 의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권위있는 상 중의 하나인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경 없는 의사회는 그들이 실제로 한 일보다 명성이 더 앞섰다는 것이 지은이의 평가다. 신문들은 겁없는 영웅 같은 의사들이 당나귀를 타고 소련 점령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간다든지, 신생독립국인 앙골라의 정글 속을 전진하고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인들에게 접근하는 사진을 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전쟁 지역에서 수술하는 장면과 안락한 생활을 버린 채 자원자로 일하는 성공한 전문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국경없는’이라는 용어는 배짱 두둑한 무단 침입자의 이미지로 소극적인 UN이나 적십자사의 지나친 중립성에 실망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본문 중에서)

 

정부와 싸울 수 있는 단체 MSF

 

1980년대에는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을 비판했으며, 에티오피아의 멘기스투 대령을 비판한 후 쫓겨나기도 했다. 많은 MSF 팀들이 비행기, 랜드 크루저, 카누, 오토바이를 타고 혹은 맨발로 지구상의 가장 위험하고 외딴 지역으로 들어가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료지원을 하면서 얻은 이미지이다. 오늘날 MSF는 여전히 어느 누구도 의료지원을 하지 않는 고립된 지역에서 일하며 위험한 지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제게는 최전선의 불안전한 지역에 들어가 의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의료를 펼치는 것이 MSF의 이미지입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외출을 삼가고 한밤중에 총성이 들리는 현장감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MSF죠. 우리는 아무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에서 일하거든요.” (본문 중에서)

 

MSF는 인도주의 구호를 받는 데는 국경선이나 정치적 상황 내지 동조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MSF는 사전 정치적 승인 여부와 무관하게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개입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고통을 돌보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 MSF 활동가는 다른 단체와 국경없는 의사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침팬지는 인간과 DNA 98퍼센트를 공유하지만 나머지 2퍼센트가 인간과 침팬지로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NGO들과 2퍼센트 차이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 말고도 ‘국경없는 의사회’가 강성 이미지를 얻고 유지하게 된 것과 ‘인도주의’라는 원칙을 기준으로 단체의 입장을 분명히 하며, 국제사회를 향하여 구호활동을 포기하고 ‘인종학살을 고발하는’ 단체로 인식된 것은 이 단체가 가진 독립성과 재정적 자립성으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많다.

 

세계 여러 구호단체들이 대중의 기부에 크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정부기관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한다고 한다. MSF는 UN이나 정부의 기부에 의존하는 것을 함정으로 보고 있다. UN이나 정부에 의존하는 구호단체들은 제도적이고 관료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이들을 비판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들과 싸울 수 있어요. 그러나 다른 기구들은 각 나라의 정부들로부터 너무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싸울 수가 없죠. 우리는 정부 기부자들이 기부를 그만둬도 좋다 이겁니다. 우리의 지원은 대중들로부터 오는 거고 이런 점은 다른 기구들에게는 없거나 중시하지 않는 점이죠.”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소련 점령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였던 것이나 9·11사건 이후에도 미국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나 UN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에 매달리지 않는 이 단체 대중적 후원에 기초한 재정구조로부터 기인한다고 진단하였다.

 

의사들이 MSF 자원 활동에 나서는 이유

 

국경없는 의사회를 통해 자원자로 나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왜 이런 일을 하세요?’라고 한다. 지은이가 인터뷰한 자원 의사는 자신을 위해 국경을 넘는 의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의료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지만, 저는 이 일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고 또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뿐이지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제가 세상을 돕고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에 가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국경없는 의사회 자원의사들은 앞서 소개한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도미니크 래리뿐만 아니라 앨버트 슈바이처 혹은 중국혁명 당시 활약했던 캐나다 의사 노먼 베순과 같은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웨이청은 이라는 MSF 자원의사는 “저랑 같은 세대인들은 아직도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하며, 노먼 베순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는 의사의 소명이란 단지 환자들을 보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계몽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든 그래야겠지만 특히 의사들은 자신의 시간 일부를 인도주의 활동을 하는데 써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본문 중에서)

 

쿠바 혁명기를 살아온 60대 중반 외과의사인 빈센트 에샤브의 인터뷰이다. 이처럼 열정적인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MSF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충분한 수의 의사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MSF는 의대생들을 비롯한 지원자들을 무조건 받지 않으며, 최소한 1~2년의 임상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에 신출내기 의사들은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장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22살짜리 구호 활동가가 갑자기 1만2000명 난민들에게 저기 가서 줄을 서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 거죠. 이것은 정말 권력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본문 중에서)

 

이처럼 MSF가 의사를 비롯한 자원활동가를 선발하는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구호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독실한 척하는 인간들과 최악질의 인간들이 자선이나 구호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란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인 댄 보르토로티가 쓴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은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뢰를 더해준다. 그가 쓴 책에는 이 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내부 구성원들간의 논쟁과 대표자들의 교체과정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아울러 MSF활동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의사들은 인종학살을 막지 못한다

 

이 책에 실린 MSF의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는 의사들로서는 대량학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의사들은 인종학살을 막지는 못합니다. 어떤 인도주의자도 전쟁을 저지를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인도주의자도 인종 청소를 막지는 못합니다. 또한 어떤 인도주의자도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도주의의 과제가 아닌 정치권의 과제입니다.” (본문 중에서)

 

그들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국경을 넘는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것들 가운데서 정상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질서에 대한 거창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 활동은 가장 가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개개인이 뻗치는 손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와 번역자 역시 ‘폭력과 파괴의 순환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소아과 전문의 고은영은 몇 안 되는 한국인 국경없는 의사회 회원으로 2005년 9월부터 니제르에서 자원 의사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번역하여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을 가감 없이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