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88만원 세대에게 이명박 정부는 희망이었나?

by 이윤기 2013. 2. 13.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88만원 세대에게 ‘이명박 정부’는 희망을 주었을까요? 노무현 정부보다 국민을 더 부자를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선택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세대 간 경쟁과 승자독식구도를 더욱 고착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20대 비정규직 평균 임금이 88만원 정도가 된다는데 착안하여 우석훈이 만들어낸 지금의 20대를 규정하는 신조어이다. 2007년 사회과학 분야 최고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88만원 세대>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800만의 시대를 규정하는 우리 시대 중요한 담론이 되어버렸다.

 

20대 젊은이들의 치열한 취업관문과 실업문제, 비정규직문제를 이야기 할 때, 88만원 세대라는 시대 담론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문제를 진단하는 여러 책들을 보았지만, 우석훈 박사가 주장하는 세대 간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쓴 책은 우울한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새롭고 신선하며 기발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가득하다.

 

10대를 지배하는 '굴레' 대학 등록금

 

<88만원 세대>는 눈길을 확 잡아끄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첫 경험의 경제학, 도대체 첫 경험에 무슨 경제 메커니즘이 작용한단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동거, 그리고 부모로부터 삶을 독립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첫 경험 시기는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OECD 국가들 중에서 18세에서 20세의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동거의 권리를 주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른바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16세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사교육에 묶여서 입시 지옥을 헤매고 있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준비를 시작한다는 것. 결국 한국 젊은이들은 적게는 6년에서 많게는 10년 이상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혹은 연인과 함께 살아갈 집이 없다는 것, 둘째는 다른 잘사는 나라들에 비하여 대학등록금이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는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주거 보조금을 받고, 저렴한 등록금으로 대학에 다니는 외국 젊은이들에 비하여, 한국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불안한 청년기를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생활비라는 관점에서 바라라면, 외국에 비하여 비정상적인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는 10대들의 아르바이트 시장 역시 젊은이들의 자립을 가로막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고 한다. <88만원 세대>를 쓴 지은이들은 10대에 동거를 시작할 수 있느냐 여부는 결국 젊은 세대의 독립적 삶이 가능한가를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여기에다 결혼에 따르는 과도한 주거와 혼수비용까지 덫 씌워져 혼인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자녀 양육비용과 대학까지의 교육비용 때문에 출산율은 급격하게 하락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인질로 붙잡힌 10대

 

10대를 겨냥한 소위 1318마케팅은 사치재 소비세대를 양산하고 있으며, 10대들의 정신세계만 황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10대들의 다양한 감수성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을 ‘과시적 소비’로 채워버렸다는 것이다.

 

“10대들을 아무런 방어 장치 없이 마케팅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는 현대 자본주의도 아니고 건전한 자본주의도 아니다. 그저 노동자 대신 10대를 노린 ‘세대 착취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1318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기간 동안 실제로 많은 수의 청소년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주로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하는 후불 결제 과정에서 지불 능력을 초과하여 소비한 청소년들이 신용불량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은이들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성장하면 잘산다”는 구호 아래에서라면 세대 착취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10대를 희생시키면서 장기적으로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0대보다 더 불행한 20대 =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과 박권일은 세대 착취의 인질로 붙잡힌 10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불행한 삶을 맞이하는 것이 지금의 20대라고 한다. 지금의 30대와 40대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웬만한 취직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큰 직장이 아니라도 소규모 사업체를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지만, IMF 이후 한국경제는 가혹하게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포디즘’ 시대는 한국경제에서 ‘연공서열제’를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승자 독식’의 사회구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현재 20대 승자 독식 게임이 가지는 특이한 점은 경쟁 자체가 문제일 뿐만 아니라 패자부활전과 같은 보완 장치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88만원 세대인 지금의 20대들이, 10대보다 더 불행한 세대인 이유는 훨씬 더 치열한 경쟁 구조 속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대들이 만나게 된 전면적인 경쟁은 세대 내 경쟁의 양상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경재’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90년대 이후 세계화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경쟁 놀리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하게 된다. 그야말로 전 지구적 경쟁이라는 조금 더 살벌한 개념이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88만원 세대>에는 20대 앞에 던져진 몇 가지 직업들을 연공서열제의 변화 양상, 그리고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태권도 국가대표선수단, 공무원, 국가정보원, 정부출연기관, 민간협회, 시민단체, 자영업 부문, 조직폭력단과 불법다단계, 그리고 협동조합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직업군들에서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왜 20대가 안정된 일자리인 정부출연기관이나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윗세대에 의해서 어떻게 진입장벽이 작용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니어서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 진출 역시 꽉 막혀 있으며,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시민단체에서도 3세대 활동가인 20대가 훨씬 더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지은이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20대를 환영하고 무료로 강의도 시켜주고, 집단 합숙도 시켜주는 경제조직은 불법 다단계 밖에 없다”고 한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조직폭력단과 불법다단계에 대한 비교 분석은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다.

 

“지금처럼 승자 독식 게임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제어나 균형 자치 없이 20대에게 불리한 세대 간 게임 양상은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경쟁에 패한 20대를 환영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곳은 불법 다단계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안타깝게도 지금의 20대에게는 협동조합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한다. 지은이는 작은 카페나 커피숍보다 스타벅스를 선호하는 20대는 “돕는다” 혹은 “같이 잘 산다” 등의 개념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대라고 한다.

 

원인은 무엇인가?

 

세대 내 경쟁을 넘어 세대 간 경쟁으로 치닫는 원인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포스트 포디즘으로의 생산양식의 변화에도, “정치적 의사결정자들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포디즘 정책을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제시하는 경제정책의 방향은 독점 강화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88만원 세대>에서 지금의 10대들이 지식경제 1세대로 등장하지 못하고 더 어려워진다면 국민 전체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성장과 집중 전략에 의한 불균형 성장전략이 세대 간 착취에 의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대두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결국에는 세대 착취로도 더 이상 경제성장을 진행할 수 있는 시점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만약 한국 경제가 지금의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세대 착취에 의한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현대 경제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실제로도 입증해 보이는 셈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엉뚱하다고? 그렇지만 대안은 있다

 

<88만원 세대>를 쓴 필자들은 한국 경제가 ‘정상적인’ 경제구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몇 가지 제안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의 20대와 그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줄 방안은 다음과 같은 획기적인 전환으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첫째, 국민경제 전체가 10대 중고생을 인질로 붙잡고 협박하고 하면서 부모들에게 월 50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지출을 강요하고 있는 ‘인질경제학’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 입시과목의 제한적 사교육금지, 사교육 종사자 업종전환 기회부여, 공교육교사로 채용하여 교사 숫자를 대폭 늘리고, 학생당 교사비율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 그리고 사립대를 국립대로 전환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둘째, 획일화 승자독식 문제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 유럽의 실업보험 강화 방식 또는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 노동자 재교육 예산, 창업기금 같은 것을 10배 이상 늘려서 경제 전체의 혁신율을 높이거나, 스웨덴과 같은 일자리 나누기 방식이 가능할 수 있다.

 

셋째, 적자생존과 공룡의 비극을 막을 수 있도록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지역 경제 기반과 중소 자영업기반을 파괴하는 프렌차이징에 맞설 수 있는 자영업자 협회를 지원할 수 있다.

 

넷째, 학교와 지자체가 청소년을 포함하는 알바 시장에 대하여 포괄적인 후견인 역할을 해주면서 아르바이트 시장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는 것. 아울러 20대가 알바 시장에 진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고용 안정을 높여야 한다는 것.

 

다섯째, 20대가 농업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농업 공무원 같은 제도를 신설해서 교육 공무원처럼 이들을 별정직으로 운용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한다. 20대 20만 명 정도가 농업 공무원이라는 안전한 직업을 갖게 되며, 재원은 건설업체와 지방토호들이 도로 건설 한다고 쓰는 농업예산 119조원 중 일부만 있어도 가능하다는 것.

 

기본적으로 농업회생, 중소기업과 중소 자영업 회생, 그리고 사교육 문제 해결과 같은 주장에 공감하기 때문에 난생처음 듣는 획기적인 대안들이지만 신선하게 다가온다. 10대를 인질로 잡는 사교육 경제를 해체하자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들은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고 한다. 하나는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와 같이 유럽의 ‘강소국’ 모델을 선택하거나 다른 하나는 작은 제국주의 국가로 국내 경제의 불균형을 해외부문에서 더 적극적으로 찾는 방법뿐이라고 한다.

 

결국 ‘88만원 세대’에게 닥쳐온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이 필자들의 결론이다. 88만원 세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쳐야 한다는 주장을 경제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세대 간 착취에 희생되는 10대와 20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세대 간 착취에 편승하여 살아가는 30대와 40대가 함께 읽고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지도’가 우석훈과 박권일이 쓴 <88만원 세대>에 숨겨져 있다.

 

저자 우석훈은 2012년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의 절판을 선언하였고, 공동 저자 박권일은 우석훈의 절판선언을 불편해 하는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서평 포스팅 <88만원 세대>는 2008년 1월에 쓴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88만원 세대 - 10점
우석훈.박권일 지음/레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