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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면허증도 없이 랜드로버를 운전하는 아이들 !

by 이윤기 201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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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영화에는 어른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어린이들이 나옵니다. 독수리 5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마징카 제트나 로봇 태권V 역시 이들을 조종하는 주인공은 모두 어린이들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쥘베른이 쓴<15소년 표류기>역시 실수로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이 집도 짓고, 식량을 구하고 맹수와 맞서며 로빈손 크로소 못지 않는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혹은 어른 못지않은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나약하게 자라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15소년 표류기>와 같은 일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초원과 밀림에서 16살, 14살, 12살, 6살 아이들이 면허증도 없이 랜드로버를 운전할 뿐만 아니라, 펑크 난 타이어를 수리 하고, 늪에 빠진 자동차를 끌어내며 산불에 맞서기도 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쓴 트래버스, 앵거스, 메이지 그리고 오클리가 바로 그들입니다.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는 1995년 5월 어느 날,  영국에서 태어나 살던 네 명의 아이들이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는 엄마 케이트와 함께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가서 살아온 경험을 기록한 책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바로 북쪽에 접해 있는 나라입니다. 이 책은 1999년부터 5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살아온 아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직접 책으로 엮었다고 합니다.

 

오카방고 삼각주 저지대에 있는 '마운'이라는 마을에 살던 케이트 가족은 이 책을 쓰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본격적인 사자연구를 위하여 피터아저씨의 밀림 속 캠프로 들어가 천막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직접 겪은 밀림생활 기록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홈스쿨링이라고 할 수 있는 '숲속학교'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12살에 '랜드로버'를 몰고 다니는 아이들

아이들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2살 아이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여행이 아닌 이사를 갈 만큼 씩씩한 엄마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정규학교를 그만두고 밀림 숲속학교에서 홈스쿨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엄마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딸 아이 혼자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모험을 지지해주는 엄마이면서, 그 자신이 배우생활을 하다가 30대 후반에 진화생물학자라는 새로운 길을 나설 수 있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습니다.

 

이제 케이트와 그녀의 네 아이들이 겪은 아프리카 생활의 일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다음은 이 책을 쓴 형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6살 트래버스가 7월 어느 토요일을 보내며 겪은 이야기입니다.

 

"주말 아침에는 보통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지만, 오늘은 혼자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차 타고 가서 조용히 생각을 좀 하고 싶었다 … 초록색 랜드로버에 올라탄 나는 쌍안경이 있는지 확인한 후 캠프를 빠져나왔다. 나는 지금 열여섯 살이고 운전을 한 지는 올 해로 5년째다. 운전은 엄마한테 배웠다. … 그날 아침에는 동물들이 무척 많았다. 임파라, 얼룩말, 코끼리, 그리고 기린도 몇 마리 보였다. 흰개미집 쪽으로 가자 어린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 타이어 수리는 내 전문 분야다."(본문 중에서)

 

열여섯 살 소년이 보내는 주말 모습이라고 느껴지는가요? 트래버스의 여동생인 메이지도 12살 밖에 안 되었지만 직접 차를 몰고 다닙니다.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씩씩하고 용감할 수 있는가, 혹은 아이들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또한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깨닫게 된답니다.

 

아이들은 처음 아프리카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들이 변해오는 과정을 온전하게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자연을 만나서 눈 뜨는 과정도 고스란히 책에 담겨있습니다. 처음 아프리카 생활을 시작할 때, 엄마 케이트는 아이들에게 딱 1년만 살아보고 가족 중에 누구라도 적응하지 못하면 영국으로 돌아가자는 약속을 했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동물들이 드나드는 캠프생활

 

이들 가족이 아프리카 숲속을 드나들기 시작할 때, 마을 사람들로부터 제정신이 아니라는 취급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숲으로 가는 길이 언제나 아름답고 신비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숲을 돌아다녀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숲에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눈이 밝아지고 주변 환경에 민감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숲에 다니면서 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하늘을 나는 수리를 관찰했다. 수리가 땅으로 내려오는 것은 가까이에 죽은 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운이 좋을 때는 맹수를 볼 수 있다.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치타나 조그만 재칼 등. '메이지'의 눈은 정말 신기하다. 별로 애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숲속이나 나무에 숨어 있는 표범을 찾아낸다."(본문 중에서)

 

동물원 우리 속이나 사파리 공원이 아닌 밀림과 초원에서, 아이들은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와 같은 짐승들을 자신들의 눈과 감각기관으로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눈은 밝아지고 주변 환경에 민감해졌다는 뜻이지요. 당시 두 살 밖에 안 되었던 '오클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축 이름은 모르면서 야생동물의 이름은 잘 알았다고 합니다. 숲을 제 집처럼 드나들다가 마침내 아이들은 숲을 집 삼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에 나오는 것과 같이 텐트를 치고 온 가족이 모여서 살았다고 합니다. 천으로 된 물주머니 아래에 샤워기를 달아서 몸을 씻고, '풍덩 구멍'이라고 하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였으며, 하마 골반뼈를 변기로 사용했답니다. 그들이 살던 캠프가 얼마나 실감나는 아프리카 숲이었는지 한 번 볼까요?

 

"우리 캠프에는 울타리가 없어서 숲이 우리의 거대한 뒤뜰이나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동물들이 캠프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어떤 때에는 한밤중에 사자가 텐트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코끼리가 바로 옆에 있는 나뭇잎을 뜯어 먹기도 했다. 나는 다른 식구들 보다 숲에 적응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숲속에 살고 있는 것들은, 개미와 버섯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관찰하고 직접 먹어 보고 가장 맛있는 요리 방법을 알아내기도 합니다. 숲에서 살게 되면서 아이들은 엄마인 케이트 그리고 나중에 새 아빠가 되는 피터와 함께 사자 연구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합니다.

 

살아있는 자연에서 배우는 숲속학교

 

아이들이 하루 종일, 혹은 밤새도록 꼼짝도 않고 사자를 지켜보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는지요? 놀랍게도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듯이 보이는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몰입은 아이들이 사자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 하였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심심할 때를 대비해 주사위나 체커 게임 도구를 가지고 간다. 그래도 사자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사자의 행동뿐만 아니라 어떤 사자가 어떤 사자랑 어울리는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다른 사자와 관계는 어떤지 살피는 것 역시 재미있다. 자기 짝을 속이고 이웃 사자와 짝짓기를 하는 암사자를, 사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본문 중에서)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쓴 네 아이들에게 사자는 그냥 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자 한 마리, 한 마리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보르도'라고 하는 사자를 만나고 그가 어떻게 친구랑 어울리는지, 누구랑 짝짓기를 하는지를 흥미롭게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숲에서 살고 있는 300 마리가 넘는 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흥미로운 내용은 이 책을 쓴 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 엄마 케이트가 세운 숲속학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는 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탁월한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엄마는 자연에서 수학을 발견하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하루는 엄마가 캠프 주변에서 나선형, 피보나치수열, 프랙탈, 대칭, 동위각과 엇각 등 온갖 수학적 형태를 찾아보라고 했다. 우리는 늘 보던 풀, 나무, 곤충, 새, 모래밭에 난 구멍 등에서 감춰진 형상을 찾으며 눈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느꼈다."(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눈이 닿는 곳 끝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호수가 말라붙어 염전이 된 '막가디가디'에서 100만년 전에 시작된 석기시대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지질학과 진화에 대하여 공부하였다고 '앵거스'가 전하고 있습니다.

 

한 밤중에 아무도 없는 염전에서 모닥불 불빛조차 가물가물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를 각자 마음껏 달려가서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는지요? '앵거스'는 그때의 느낌을 "우주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분도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읽고 나서 도저심 참을 수 없는 유혹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유학(?)을 다녀와서 책을 냈더군요. 그 분과 함께 아프리카로 유학(?)을 갔던 가족은 아예 그곳에서 눌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세 명 중 한 명은 HIV 감염자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체면역 결핍 바이러스인 'HIV' 문제입니다. 14살 앵거스가 쓴 글에는 HIV로 죽어가는 '보츠와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담겨 있습니다.

 

"HIV로 아이들뿐 아니라 노동력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또 충격적인 사실은 보츠와나 대학생의 80퍼센트가 HIV 양성이라는 점이다. 법률가, 정치가, 과학자, 교사, 야생동물 관리인, 의사, 간호사 등으로 미래의 중요한 직책을 맡아 보츠와나의 발전을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10년 안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본문 중에서)

 

보트와나는 세계에서 가장 HIV 감염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세 사람중 한 명이 감여되어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같이 웃고,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가지고 있고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난해서 증상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약을 살 수 없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이 책은 전해줍니다. 5년 전 영국에서 살 때는 HIV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과 모국인 영국을 비롯한 지구촌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오카방고의 숲속학교>에는 책을 쓴 형제들과 그들 가족이 찍은 진귀한 사진, 그들이 직접 그린 예쁜 그림과 곤충,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린 세밀화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타잔> 영화로만 기억하는 아프리카와 사람들과 동물이 공존하고 있는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자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사자가 더 신비로운 동물이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고 합니다.

 

막연한 동경의 대상을 넘어서 아프리카를 가까이 만나보고 싶은 독자들과 꽉 짜여진 입시교유의 틀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많은 '영감'을 안겨줄 만한 책입니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담담하게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덤'입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아프리카 숲에서 얼마나 잘 배우고, 잘 자랐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 10점
메이지, 앵거스, 트래비스 남매 지음, 홍한별 옮김/갈라파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