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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민주주의 2.0, 친환경농업 꿈꾸던 대통령...

by 이윤기 201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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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지나간 시간이 남아있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4년도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를 맞으면서 매년 서거 일에 즈음해 대통령과 관련 있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겠다고 혼자 다짐했는데, 벌써 4주기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방식으로 책 읽고 서평 쓰기를 선택한 것은 노 대통령이 워낙 책읽기를 좋아하신 분이었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과 관련된 책이 특별히 많기도 하지만, 사실은 퇴임 후 봉하에서 가까이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참석하지 않은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 탓입니다.

 

2008년 가을쯤 대통령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한미FTA를 비롯한 재임시절에 있었던 실망스런 모습들 때문에 일부러 핑계를 대고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떠난 후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됐지요.

 

후회의 마음을 담아 대통령 서거 일을 딱 맞추지는 못하였지만 4주기를 보내면서 늦게라도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면서 읽은 책의 서평을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2012년에는 정철이 쓴 <노무현입니다>, 2011년에는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2010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회고록 <성공과 좌절>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4주기를 맞으며 고른 추모 책읽기는 대통령의 숨결과 땀 냄새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봉하일기>입니다. <봉하일기>는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로 함께 가서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던 김경수 비서관이 엮은 책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 사는 세상 누리집에 쓴 글, 봉하마을 방문객들에게 했던 연설문 등을 모은 '노짱의 편지'와 김경수 비서관을 비롯한 11명의 참여정부 홍보수석실 비서진들이 돌아가면 쓴 16회 분 일기를 엮은 책입니다.

 

시기적으로는 2008년 2월부터 10월말 봉하 오리쌀 추수 소식을 전하는 글이 마지막인 불과 8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의 기록입니다. 대통령 서거 후 3년간 잠들어 있던 일기들이 2012년 1월에 책으로 엮어진 것입니다.

 

대통령이 남긴 편지, 참모들의 일기 엮은 책

 

이 책엔 정치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고 퇴임 후 봉하에 내려와서 대통령이 앞장서서 진행했던 '살기 좋은 농촌 마을 만들기' 활동을 정리한 일기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대통령이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첫 번째 글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로 시작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 누리집이 열린 뒤 1만 개가 넘는 글을 보고 난 뒤에서 쓴 답장 형식의 글입니다. 봉하로 이사 후 바쁜 생활과 3개월 후에 민주주의 2.0을 시작하겠다는 소식을 전하는 짧은 글입니다.

 

이어지는 봉하일기는 2008년 3월 12일 김경수 비서관이 쓴 '봉하마을에 전입신고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일기입니다. 봉하로 내려온 대통령 내외와 비서진들의 하루 일상, 마을회관 개관식 참석, 민주주의 2.0 누리집 개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짧은 일기지만 참모들에게 맡기지 않고 앞장서서 민주주의 2.0 누리집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대통령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3월 3일에 쓴 봉하에서 띄우는 대통령의 두 번째 편지에는 봉하 사진관을 열게 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은 방문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진을 전해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만든 해결책이었지요.

 

"사진을 찍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일일이 주소를 적을 수도 없고 적는다고 다 보내 주는 일도 쉽지 않아서 그렇게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중략) 우리 사진기로 찍고 나중에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로 했습니다."(본문 중에서)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봉하사진관을 열어 누리집에 올린 사진을 받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나서 크게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 무렵 화포천 살리기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편지에는 화포천을 비롯한 농촌의 환경오염을 안타까워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어린 시절 하늘이 새까맣게 철새가 날아들든 화포천이 쓰레기로 가득한 것을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더군요.

 

퇴임 대통령의 관심... 친환경 농업 그리고 생태 하천 살리기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 '화포천 살리기'가 시작돼 지금은 옛 모습을 많이 회복한 생태습지로 바뀌어 있습니다. 지난 5월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까지 다녀왔습니다. 화포천을 따라가면 4대강 자전거길 낙동강 구간과 만납니다. 화포천 자전거길과 4대강 자전거길만 봐도 두 전직 대통령이 얼마나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일기는 양정철 비서관이 쓴 일기입니다. 봉하마을 귀향 3주 만에 7만 명이나 되는 방문객이 다녀간 사연, 그리고 이분들을 맞이하느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내려놓은 대통령의 힘겹고(?) 즐거운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아직 촛불 집회가 시작되기 전인 이때가 퇴임 이후 가장 마음 편하게 지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일기에는 당시 '노간지'로 유명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동네 아저씨 패션을 담은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속 대통령은 웃음을 가득 머금은 특유의 하회탈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세 번째 노짱의 편지에는 퇴임 이후에도 재임 시절 못지않게 바쁘게 보내야 하는 비서관들의 고단한 일상이 담겨있습니다. 이분들은 피해갈 수 없는 바쁜 팔자를 타고 났지 싶습니다. 대통령이 떠나신 후에도 여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업무를 해보니 모두들 용량초과입니다. 업무 환경 체계 잡고, 홈피 관리하고, 일정 관리하고, 손님맞이 하고, 이런 일상적인 일들도 벅찬데 벌써 며칠째 동네 청소하고, 장군차나무 심고, 장군차 시범 마을 다녀오고, 동네 사람들과 친환경 농업에 관해 토론하고, 이런 일까지 하자니 정신들이 없나봅니다."(본문 중에서)

 

홍길동이 분신술을 쓴 것처럼, 분신과 다름없는 비서관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대통령의 편지에는 매번 '민주주의 2.0'에 대한 소식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 만큼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는 뜻이겠지요.

<봉하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해 2월부터 10월까지 쓴 일기와 편지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있습니다. 특히 '노무현표 오리쌀' 농사를 성공시키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지금 봉하마을이나 바보주막에서 마실 수 있는 봉하 쌀막걸리가 탄생하게 된 것도 모두 이 시기에 시작된 친환경 오리농법으로부터 비롯됐지요.

 

 

화포천 살리기, 친환경 오리농법 같은 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에 대하여 알고 보니 살아있었다면 '4대강 사업' 을 하도록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운명'을 건 승부는 이명박이 대통령에 출마할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퇴임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존경 받았던 대통령, 퇴임 후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대통령, 퇴임 후 가장 많은 국민들이 만나고 싶어했던 대통령. 최근 퇴임한 대통령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대통령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쓴 이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습니다. 가지마다 애틋한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들인데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모두 '가슴 아픈'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노무현의 비서관들이 전하는 그분이 마지막으로 보냈던 행복한 시절 이야기입니다. 빙그레 웃음 짓게 되는 대목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명박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분들, '사람' 노무현의 소탈한 일상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합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봉하일기 - 10점
노무현 외 지음, 김경수 엮음, 노무현재단 기획/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