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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

아들이 군대 입대하던 날

by 이윤기 201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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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5월에 원치 않는 군 입대를 해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데 벌써 세월이 바람처럼 흘러 어제 아들이 공군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민주화의 운동과 변혁 운동의 물줄기를 지켜보면서 늦어도 30년 쯤 후에는 군대를 가지 않는(징집->모병) 세상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기대보다 훨씬 더딘 것 같습니다. 50년 전, 100년 전과 비교하면 세상이 참 많이 달리진 것 같으면서도 본질적인 사회 구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 6년을 되돌아 보면 마치  커다란 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한 절망감이 엄습해올 때도 있습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 군생활을 돌아볼 때 좋은 추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입버릇처럼 군대에 가지 마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만약 아들 녀석이 스스로 선택하여 '병역거부자'가 되었다면 얼마든지 환영하고 지지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이 문제로 아내와 다툰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화를 많이 내더군요. 아마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선택하며서 겪어야 하는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떠올리기도 하였을 것이고, 아들 녀석이 깊은 고민없이 겉멋만 드는 것을 경계하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아들 녀석은 병역거부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병역 거부를 선택할 만큼 인권과 사회의식이 투철하거나 종교적 신념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에 입학 한 후에 법을 어기지 않고 병역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듯 하더니 기회가 워낙 적어 그마저도 일찍 포기해버더군요.

 

결국 별 준비없이 대학 생활 2년이 지나갔고, 아들 녀석은 남자 친구들과 학과 선후배들이 다 군대로 떠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입대를 선택하였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도 비교적 차분하게 기다리던 아들 녀석은 입대를 일주일쯤 앞두고는 좀 초조해하더군요. 제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2년이라는 긴 시간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기 시작하더군요.

 

아들 녀석의 기대와 달리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어제 오후 2시 진주에 있는 공군훈련소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28년 전 제가 입대하던 시절과는 참 많이 바뀌었더군요. 1600명이 입대를 하는데, 장병 숫자의 3~4는 되는 가족들이 입영 장병들을 격려하러 왔더군요.

 

부대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1시 20분쯤 부대에 들어갔는데, 이미 연병장엔 입영장병들과 가족들로 가득하더군요. 요즘은 입대식도 하더군요. 훈련병들을 맞이하는 훈련단장은 부모들에게 "이제 더 이상 군대는 썩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하고 "부모님들이 입대하던 시절과는 먹고, 자고, 입고 하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요즘 군대는 정말 좋아졌을까요?

 

1985년에 비하면 GDP가 무려 6배나 증가했으니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것이 바뀐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세상이 다 변하는데 군대만 안 바뀌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부대장의 자랑과 달리 첨단 무기 도입과 직업 군인들의 처우 개선에 비하여 일반 사병들의 삶의 질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더군요.

 

마침 아들을 입대시키고 온 날, 아이엠피터가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 (30년 간 군대가 못한 일, 사병 출신 젊은 초선의원이)을 보니 군 장병들이 사용하는 수통을 30년 만에 바꾸었더군요.

 

제 생각엔 밥이 잘 나오고, 보급품이 좋아지고, 숙소가 현대식으로 바뀌고, 월급이 오르는 것으로 대한민국 군대가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겉 모습만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대한민국 군대가 바뀐다는 건 남북간 평화 공존 체제가 자리를 잡고,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뀌어야 군대가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영식엔 입영장병의 부모 대표 그리고 애인 대표가 나와서 격려사와 인사말도 하고, 훈련을 담당하는 지휘관들도 나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20여 분간 진행된 입영식이 끝나자 입영 장병들은 연병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하였습니다.

 

가족과 헤어질 땐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던 아들 녀석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걸어갈 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지켜보고 있는 제 엄마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지 싶습니다. 사진 속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녀석이 아들입니다.

 

평소엔 벼게에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데 간밤에 쉬이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낯선 곳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있을 아들 녀석이 생각나더군요. 앞으로 여러 날 동안 비겁하지 않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해야 할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글로 다 옮길 수 없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었습니다.

 

30년이 다 지난 지금도 군대에 대한 기억이 치떨리게 싫은 것은 당장 몸과 마음이 편하려면 순간순간 비겁한 삶을 선택해야만 했던 씁쓸한 경험들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으니, 깊이 고민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