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1%의 자유

아빠가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불행한 시대...

by 이윤기 2014. 7. 11.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 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이 남편에게 가장 바라는 일은 무엇일까요? 돈을 많이 벌어 오는 것, 일찍 귀가하는 것, 집안 일을 돕는 것 그리고 아이들과 놀아달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중에서 아빠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아이와 놀아 주는 것'입니다. 엄마들이 아빠들에게 아이와 놀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육아를 분담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아기 때부터 육아를 분담해 온 아빠들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놀아 주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젊은 아빠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하소연 중 하나는 아이와 놀아보면 아빠들의 체력이 달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에너자이저'여서 기운이 펄펄 넘치는 직장 일에 지친 아빠의 기운이 아이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쉬고 싶은 아빠와 놀고 싶은 아이가 만났으니 궁합이 잘 맞을 일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21세기는 역사 이래 가장 힘든 아버지들의 시대입니다. 맞벌이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들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서 벗아난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가계 소득을 메꾸기 위해 부부가 함께 일을 하게 된 것 뿐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 일을 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열심히 일은 하지만 가급적 일찍 귀가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야 하며, 주말에는 집안 일도 나누어서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아빠들의 몫입니다. 한 때 워킹맘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오늘날 워킹 파파 역시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이래 가장 힘든 아버지들의 시대


아 이런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엄마, 아빠가 다 일을 하러 가는 맞벌이 아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놀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주택가 동네에는 친구들이 없습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들은 대체로 아파트에 더 많이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놀아달라고 조릅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엔 힘이 딸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고 텔레비젼을 켜주는 것이 유일한 대책(?)입니다. 제 조카도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칠순을 훌쩍 넘긴 제 아버지가 가장 친한 동무입니다. 


자 그럼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다른 건 몰라도 '아빠가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동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위험한)놀이터에 나가도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학원으로 간 탓도 있지만 엄마들이 아이만 혼자 놀이터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엄마들이 아빠들에게 '아이와 놀아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실은 놀이터에 따라 나가서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위험을 사전에 막아주라는 의미도 있고, 아이가 얻어 맞고 들어오는 일도 없게 하라는 의미도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의 어떤 엄마도 아빠에게 '아이와 놀아주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30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의 어떤 아이도 '엄마'나 '아빠'와 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동무'들과 놀았습니다. 


30년 전엔 아무도 아빠와 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세상에 가장 재미없는 것이 엄마나 아빠와 노는 것이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밥 먹으러 오라고 엄마가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도 "조금만 더 놀고 갈께"라고 답하던 시절이었지요.


마침내 기다리다 못한 엄마가 달려나와 손을 잡아 끌어야 겨우 집으로 들어갔지요. 그러고도 저녁을 후딱 먹고 나면 다시 골목길로 뛰쳐나와 밤 늦도록 동무들과 뛰어 놀던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는 이 불행한 시대를 마감하려면 아이들에게 동무들을 되찾아줘야 합니다. 또래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들도 아빠들 끼리 자기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엄마들은 이런 모임에 익숙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육아 정보도 교환하는 일이 익숙합니다.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에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아버지들은 이런 만남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색해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동안은 아빠 친구들이 모으는 곳에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면, 앞으로는 아이 친구들이 모이는 곳에서 아빠들도 만나 친구가 되어보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같은 반 아빠들이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같은 반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나면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빠와 아이들이 서로 만나면 아이는 아이끼리 놀고 아빠는 아빠끼리 모여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아를 노동이나 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놀이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또래의 아이를 둔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젠 친구도 아이 아빠들과 사귀어야 하냐며 우스개를 하더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이들은 놀이 시간이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놀이 결핍으로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동무를 되찾아주는 쉬운 길이 바로 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