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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오바마’는 미국을 바꿀 수 있을까?

by 이윤기 2009.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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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 중동의 깡패 국가는 이스라엘, 지구상에는 두 개의 불량 국가가 있다.

하나는 끊임없이 국경선을 넓혀가며 닥치는 대로 이웃나라들을 침략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유엔 헌장을 깡그리 위반하는 불량 국가 미국이다.

2006년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한 공식설명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쪽으로 월경하여 여덟 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을 사살하고 두 명을 납치한 데 대해 자위책으로 공격을 감행” 한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는’ 촘스키 견해는 다르다.

“꼭 지적해야 할 점은 미국과 이스라엘도 그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헤즈볼라의 병사들을 납치했다는 것 입니다.......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민간인들을 납치해왔어요.......미국과 이스라엘은 과거 3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지금도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외교적 해결책을 끊임없이 저지하고 방해한다.”(본문 중에서)

더군다나, 촘스키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레바논 침략이나 최근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 침략 같은 전쟁은 모두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제트기, 미사일, 기타 군수품들은 모두 여기 미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은 그런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대량으로 공급하고 공격행위를 허용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인 것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유엔의 휴전요청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몇 주 동안이나 휴전을 지연시켰습니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레바논 침략에 직접개입한 당사자라는 것이다. 촘스키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어쩌면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전략을 수행하는 ‘얼굴마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중동 전쟁, 진짜 침략자는 미국이다.

미국과 함께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은 만행은 그칠 줄을 모른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한 번도 자국의 국경선을 확정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매우 조직적으로 국경선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확장된 국경선에 합법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어이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팔레스타인과 아랍인들에게 이스라엘이 강요하는 ‘합법적인 국경선’이라는 요구가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가를 밝히고 있다.

“세계의 모든 국경선은 정복의 결과입니다. 국경선은 인정될 수 있어도 정복의 결과로 생긴 국경선의 합법성을 인정하라고, 특히 자기 나라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국가는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이루어진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촘스키 인터뷰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지역 분쟁에 관한 인터뷰가 유난히 많다. 한때 미국의 절친한 동맹 국가였던, 이라크나 이란 같은 나라들이 어떻게 미국의 적이 되었는지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이란의 역사는 반세기 이상 미국에게 끊임없이 고문당하고 괴롭힘 당한 역사입니다. 1953년 미 중앙정보국과 영국은 쿠데타를 공모해 이란의 내각을 전복시키고 사악한 독재자 팔라비를 집권시켰습니다.”(본문 중에서)

이란에서 미국이 원하는 팔라비 독재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미국은 핵발전소 건설과 핵무기 기술을 이전하는 계획을 실제로 진행하였다고 한다.

“1974년에 아마도 미국 정부의 제안에 따라 MIT는 이란의 국왕과 거래를 했어요. 핵공학 부서의 많은 부분을 실질적으로 이란에 빌려주고, 이란의 많은 핵 기술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와서 그들이 핵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본문 중에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MIT에서는 엄청난 데모가 일어나고, 학생 총회에서는 80% 이상의 학생들이 이란과의 거래에 반대하였지만, MIT와 이란간 핵 거래는 이란 국왕이 쫓겨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럼스펠드, 체니, 울포위츠와 같은 미국정치인들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중동지역은 물론이고, 세계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 이라크 핵무기 개발 지원했다.

미국의 침략으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이 사라지고 난 후, 이란과 북한만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대표적인 불량국가로 낙인찍히고 있는 것이다.

“1979년 이란 정부가 전복되자, 레이건 정부는 이웃의 사담 후세인에게 눈길을 돌려 그로 하여금 이란을 침공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위해 레이건 정부는 이라크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켰고, 사담 후세인에게는 엄청난 지원을 합니다. 게다가 1989년에 이란과의 긴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이라크의 핵무기 기술자들을 워싱턴으로 초대해 핵무기 개발법을 가르치기 위한 훈련을 시켰어요.”(본문 중에서)

미국은 유엔은 물론이고, 자국민과 전 세계를 상대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거짓선전을 강요하면서 이라크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촘스키에 따르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라크에 핵기술을 지원한 것은 워싱턴 당국이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비롯한 핵을 보유한 몇몇 나라들은 미국으로부터 핵무기 제조 기술을 이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핵무기 개발이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 대전이후에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한다면 하는 나라’ 미국의 뜻이 관철되지 못한 경우는 호치민의 베트남, 카스트로의 쿠바, 김일성의 북한 그리고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한결 같이 미국 언론에 의해서는 ‘더러운 독재자’로 지칭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관련보도에서 차베스는 가장 대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촘스키는 이러한 언론 보도는 모두 미국의 국가 이익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에서 국민투표를 거쳐 당선되었고, 아무런 강압적 조치 없이 선거에서 연속으로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미국에 반대하면 독재국가(?)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역시 미국으로부터 독재자, 권위주의자로 비난 받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자국민의 95퍼센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모랄레스가 독재자로 낙인찍힌 것은 그가 독재자여서가 아니라 자국의 자원들을 국유화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미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특별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민주주의란 말은 ‘미국이 시키는대로 하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게 하는 나라는 민주적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비민주적인 것입니다. 어떤 국가가 자국의 국민이 원하는 것을 행한다면 그 나라는 민주적이 아닙니다.”(본문 중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나라들을 보면 이러한 촘스키의 지적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박정희와 그의 뒤를 이은 군사정권 당시의 한국, 팔라비 집권하의 이란, 후세인 집권 초기의 이라크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독재정권이 들어섰던 모든 나라들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권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전형적인 인권침해 국가들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엘살바도르, 1990년대 클린턴의 지원을 받은 터키의 쿠르드족 침략, 그리고 1999년에는 콜롬비아로 바뀌었다는 것.

촘스키는 이런 세계전략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국은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정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은 대부분 국민여론과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연방 정부 예산은 복지와 사회보장 대신에 군사비 지출을 증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원칙

그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심하게 붕괴되고 있는 미국은 실패한 국가이며, 이러한 실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대안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권을 받아들여라.
▲ 교토의정서에 조인하고 이를 수행하라.
▲ 유엔이 국제분쟁을 조정하도록 하다.
▲ 테러를 방지하는데 있어 군사적 조치보다는 외교적 조치를 사용하라.
▲ 유엔헌장의 전통적 의미를 받아들여라
▲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포기하라
▲ 자기방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
▲ 군사비 지출을 과감하게 삭감하고 사회보장 지출을 확대하라

아울러, ‘실패한 국가’ 미국을 ‘보통 국가’로 만드는 미국인의 희망, 활동가들의 희망은 결국 ‘대중운동’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노동조합과 같은 집단적 협력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노동자들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교육센터, 문화센터, 문화이벤트, 신문 등을 통해서 노동자와 대중을 교육하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집단적 노력에 의해서 대중교육을 재건하는 노력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의 시민권 운동은, 대중운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고, 린드 존슨의 인권운동 역시 대중운동의 거대한 파도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촘스키, “지식인 = 특권층, 대중운동이 희망이다.”

그는 뿔뿔이 흩어진 미국의 대중운동을 묶어세우고, 지식인들이 책을 저술하고, 강연하고, 인터뷰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대중교육을 실천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촘스키는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특히 미국에서 지식인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특권층이기 때문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미국을 바로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인이라 불립니다. 그들은 특권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영리하거나 남보다 많이 알아서가 아닙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더 영리하지만 특권이 없기 때문에 지식인이라 불리지 못합니다.”(본문 중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불리는 촘스키는 지식인은 그 자체로 특권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미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고 누릴 수 있는 자원과 기회를 가진 그들에게는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국가는 그들을 억누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이 특권을 포기하는 일도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보통 국가로 만드는 힘은 특권을 포기하는 지식인들과 노동조합과 같은 집단적 협력을 이루어낼 수 있는 대중운동, 대중교육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촘스키의 결론이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길목에서 촘스키의 진단대로라면 그에게도 거는 희망이 열매를 맺는 일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오바마에게도 촘스키가 제안한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한 원칙들을 실현시키는 일이 간단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이루어진 이 인터뷰에서, 촘스키는 오바마 역시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입장’이나 ‘이슈’에 따라 선출된 것이 아니라 ‘호의적’, ‘열광적’, ‘희망’과 같은 이미지와 프레임에 의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는 모두 8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인터뷰를 날짜 순으로 정리하였기 때문에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지는 않다. 따라서 중복되거나 반복되는 내용들이 많은 것은 흠이 있지만, 촘스키를 통해 ‘변화의 길목에서 선 미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핵심을 이끌어내는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인터뷰와 지식인의 책무에 충실한 촘스키가 내놓는 미국을 고발하는 ‘물증’ 그리고 뛰어난 영어 학자 장영준의 번역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또한 촘스키의 인터뷰를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한겨레 그림판 작가 장봉군이 그린 삽화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