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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군주가 여색을 탐하면 환관이 판을 친다

by 이윤기 200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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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구주모가 쓴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

연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조선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사상가였던, 연암의 글쓰기 비법을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다.

연암과 더불어 조선후기를 이끌었던, 당대의 실용적 지식인들을 통해 글쓰기라는 딱딱한 주제를 소설속의 소설로 풀어낸 독특한 책이다.

연암이 강조하는 글쓰기의 기본은 읽기다. 좋은 글을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아주 정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한다.

아울러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연암이 전해주는 좋은 글쓰기의 첫째 원칙과 둘째 원칙에 해당된다.

요약해보면, 좋은 글을 쓸려면, 좋은 글을 읽어야 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할 뿐 아니라,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암이 강조한 이런 글쓰기 원칙에 아주 근접해 보이는 책을 만났다.

바로 구주모가 쓴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다. 그가 쓴 책은 정사 <삼국지>와 <자치통감>을 기본 줄거리로 중국 25사(史)의 원조인 <사기>를 비롯한 역사서, <논어>를 위시한 경전, <세설신어>를 중심으로 한 필기류 등을 주제에 맞게 추출하여 엮은 결코 가볍지 않은 수필집이다.

저자는 <논어> <노자> <장자>를 비롯한 子자 돌림 책들을 비롯하여 100권이 넘는 중국 역사서적을 인용하였다고 참고도서 목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는 흔히 소설 삼국지로 잘 알려진 중국 삼국시대 역사를 중심으로 모두 36개의 다양한 주제를 재구성하여 쓴 책이다.

그는,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었까?

서른여섯 편의 글 중에서 아무 글이나 한편만 읽어보아도, 저자가 보통 독자들이 많이 읽는 <삼국지연의>뿐만 아니라 정사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을 얼마나 ‘정밀하게’ 읽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연암’이 강조한 것처럼, 얼마나 ‘넓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을 거쳤는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틈만 나면 어울리던 소중한 친구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읽던 월탄 박종화의 번역본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을 뿐만 아니라 또래들을 모아 놓고 이것저것 아는 체를 하며 변사 티를 내기도 하였단다.

세월이 흘러 20여년 이상을 신문기자로 살아왔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연의>를 잊고 지낸적이 없으며, 소설적 감동에 머무르지 않고, 삼국시대를 형성한 ‘역사적 진실’을 더듬는 ‘정밀한 독서’를 해왔다는 것. <연의>에서 출발한 관심을 토대로 여러 고전을 헤집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엮는 독서를 ‘넓고’, ‘깊게’ 해왔다는 것이다.

정밀할 뿐만 아니라 넓고, 깊은 독서를 통해, 오랜 세월 동양 고전을 접하면서 뇌리에 새긴 ‘고인들의 자취와 향기’를 <삼국지>와 연계하여,‘흥미와 교훈’을 담는 새로운 고전해석을 시도하여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라는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모두 6장 36편으로 구성된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중 흥미로운 이야기 두 편을 소개해 본다. 독자들은 자세히 읽기, 넓고 깊게 읽기가 고전 읽기를 위한 새로운 결과물로 빚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36편중 한 꼭지로 ‘저주 받은 환관들’이야기가 있다.

환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거세당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지연의>가 널리 알린 ‘십상시’로 대표되는 국정을 농단하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한나라 말기 장양, 단규, 조충를 비롯한 10명의 우두머리 내시가 작당해 백성을 못살게 굴고 권력을 독점하여 ‘십상시’로 불렸다는 것이다.

국정농단의 책임을 환관들이 뒤집어 쓴 까닭?

후한의 영제가 ‘십상시’에 휘둘리다 말년에 가장 나이 많은 장양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을 탄식하는 대목은 <삼국지연의>에도 나오지만, <자치통감>에도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황제가 “장상시(장양)은 나의 부친이고, 조상시(조충)은 나의 모친”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후한서>에도 환관을 통렬이 비난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손으로 왕의 작위를 거머쥐고, 입으론 하늘의 법을 머금어 그들의 뜻에 따라 모든 형벌과 상이 결정되었다. 황제의 명을 왜곡해 삼족이 영예를 누렸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종실을 멸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 기강은 크게 어지러워졌다.”(본문 중에서)

한나라 순제때 ‘장강’이란 암행어사 지방관리의 부패를 감찰하는 임무를 맞으면서,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고 섰는데, 어찌 여우와 살쾡이를 따지고 있을 것인가”하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바로 승냥이와 이리 같은 환관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데, 피라미 같은 지방관리를 감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환관에 대한 부정적인 또 다른 부정적인 평가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데, 바로 원소가 보낸 조조토벌 격문에 ‘환관 양자가 남긴 더러운 자취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글귀가 있다고 한다. 조조 아비 조숭이 환관 양자로 들어간 것을 빗대 조조를 비하하는 대목인 데, 환관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얼마나 나빴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를 쓴 구주모는 환관들이 온갖 악행을 일삼고 국정을 농단한 것은 결국 어리석고 부패하고 무능한 황제들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한나라 말기 황제들은 간신들을 싸고돌았을 뿐만 아니라 매관매직을 일삼았으므로 환관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환관이 많았던 것은 궁녀가 많았기 때문

환관이 판을 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으로는 군주의 과도한 ‘여탐’ 때문이라는 견해가 <명이대방록>에 전한다고 한다. “궁실을 거대하게 지어놓으면 여궁들로 채우지 않을 수 없고, 여궁들이 많아지면 환관을 시켜 그들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청나라 학자 고염무 또한 “궁중에 비빈과 궁녀들이 너무 많아 환관이 득세하지 않을 수 없다. 환관의 발호를 막을 유일한 방도는 군주가 여색을 멀리하는 길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울러, 환관이 기승을 부린 세 번째 이유는 심한 정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유생들 사이의 격렬한 자리다툼과 파벌 확대가 결국 환관이 득세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생들이 기록한 역사에는 ‘황제들이 어둡고 욕심이 많았으며, 사대부들 간에 정쟁이 심했다는’ 근본 원인은 제쳐두고, 거세당한 환관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관에게 씌워진 불명예를 100% 그들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구주모가 쓴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삼국시대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른 고전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정사 삼국지>를 중심으로 <삼국지연의>는 물론이고, 다양한 고전에서 ‘환관’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내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책에 나오는 ‘만두의 유래와 칠종칠금’ 고사에 얽힌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삼국지연의>의 백미 중 한 대목으로 작자의 상상력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엮였다는 것이다.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49명의 사람과 여러 짐승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제갈량이 만두를 빚어 제사를 올림으로써 원혼을 달래고 무사히 돌아오는 이야기가 바로 절정에 해당된다는 것.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 긴 이야기로 엮어진 남만정벌이 실상 <한진춘추> <화양국지>에는 ‘제갈량이 일곱 번 사로잡아 일곱 번 풀어주었다’고 불과 서너줄 언급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증에 따르면 ‘칠종칠금’ 이야기는 정사 <삼국지>에는 언급조차 없고, <통감집람>에는 시간적으로 제갈량은 일곱 번 풀어줄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는 것이다.


 '중화의식'에서 비롯된 '칠종칠금' 고사

 반면에 <제갈량 평전>을 쓴 여명협은 <화양국지> <한진춘추> <양양기>와 <자치통감>등에 나와있는 자료들에 근거하여, 일곱 번은 과장되었지만, ‘맹획’을 풀어주고 잡은 일은 믿을 만하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저자 구주모가 여러 고전을 살펴 <삼국지연의>의 허구성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칠종칠금’ 고사가 사실이던, 아니던 관계없이 적어도 ‘양과 돼지고기를 섞고 밀가루 반죽으로 싸서 사람 머리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냈으며, 사람을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진 ‘활인음식’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울러, 칠종칠금 고사에는 중화의식이 배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철저하게 야만족 취급을 하였기 때문에 ‘칠종칠금’과 같은 고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칠종칠금 고사 뿐 아니라, 당나라 대문장가 한유는 ‘원인’이라는 글에서 중국인이 사람이면 오랑캐는 짐승이라고 말하였으며, 유가의 대표적 경전인 <논어>에도 “동이나 북적에 임금이 있다 해도 중국에 임금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구절이 나온다는 것이다.

민족차별 인종차별, <논어>에도 있다

결국 칠종칠금 고사가 널리 읽히고 민중들에게 찬양된 것은 이런 ‘중화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며, 오늘에 이르러서도 소수민족들에게 복속만이 살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가 자세히 읽기, 넓고 깊게 읽기라는 연암의 글쓰기 원칙을 빼닮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저자는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삼국지연의>에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서 뽑아 낸 다양한 에피소드에 넓고 깊게 여러 고전을 인용하여 이야기로 풀어낸다.

내가 아는바, 우리 시대 최고의 책벌레는 일본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이다. 그는 수 만권의 책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까봐 개인도서관을 세웠으며, 194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8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읽기와 쓰기의 달인이라 할 만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읽기와 쓰기 비율은 대략 100대 1이 적합하다고 한다. 즉, 좋은 책 100권을 읽으면 괜찮은 책 1권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기준에 따르면, 저자 구주모는 읽기와 쓰기의 황금 비율을 잘 맞춘 셈이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100여권의 고전을 읽고 되새겨, 일반 독자들이 좀 더 쉽게 고전에 다가설 수 있도록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를 엮어냈으니 말이다.

독자들은 저자 구주모의 정밀한 독서, 넓고 깊은 책 읽기로 새로 엮인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를 통해 씨줄과 날줄로 얽힌 <삼국지연의>와 정사<삼국지>를 비롯한 100여권이 넘는 고서에 담긴 옛사람들의 자취와 향기를 만날 수 있다. 깊은 역사의 심연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어내는 것은 ‘독자’들 몫이다.

▶ 역사와 함게 길을 걸으며, 저자 구주모 
'역사와 인간'은 저자가 철들 때부터 쥐고 있던 화두였다고 한다. 20년 기자생활을 한 그는 현재 도민주주신문인 <경남도민일보> 상무이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