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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아들의 생애 첫 운전 함께 하기 ①

by 이윤기 2016.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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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틀 동안 갓 운전 면허를 딴 둘째 아들의 생애 첫 운전에 동행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미룬채 세상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면허> 취득이었습니다. 1종 보통 면허를 땄는데 이론 시험 1번, 도로 주행 2번만에 합격하고 면허증을 받아왔더군요. 


면허만 따면 연수는 시켜주겠다고 했었는데, 제가 요즘 일이 좀 바빠 시간을 못냈더니 면허 딴지 한 달이 지나자  아들이 먼저  "장롱 면허 안 되도록 운전 연수 좀 시켜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지난 주말에 다른 일정이 없어 이틀 동안 새벽에 일어나 아들의 운전 연습에 동행하였습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경험해 보셨겠지만 생 초보의 운전 연습에 동행 하려면 각별한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첫 날은 국도를 따라 창녕까지 다녀오고 둘째 날은 마산 양덕동을 출발하여 진해 - 창원 - 신마산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차들이 많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도 집으로 돌아올 때는 차들이 많더군요.




토요일 아침에 창녕을 갔다올 때는 집을 1km 정도 남겨 둔 회성동까지 와서 제가 운전을 해야 했습니다. 회성동 고속도로 부근에서 사방에서 끼어들기 하는 차들 때문에 불안해서 더 이상 운전대를 맡겨 놓을 수가 없더군요. 


둘째 날인 일요일 아침은 차도 적고 아들도 훨씬 자신감이 붙어 양덕동을 출발하여 봉양로를 따라 봉암교를 건너 진해로 갔습니다. 진해에서도 여좌동과 시내를 한 바퀴 돌고 경화역 부근을 지나 안민터널을 통해 창원으로 왔습니다. 


국도 25호선을 따라 도청 부근으로 내려와서 명곡로터리를 거쳐 마산 해안도로를 따라 신마산까지 갔습니다. 마산 해안도로를 지나면서부터 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지만, 이틀 만에 아들도 자신감이 많이 붙었는지 신마산까지 잘 가더군요. 


신마산 번개시장 근처는 불법 주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복잡한 차선을 잘 피해서 시장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추차를 하고 할매 죽집에서 죽을 사서 해안도로와 어시장 앞 길을 따라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차가 빼곡하게 서 있으니 주차하는 걸 어려워했지만, 차에서 내려 앞뒤를 살펴주면서 주차 연습을 시켰습니다. 첫 날 아들의 운전을 지켜볼 때는 혼자 다리와 손에 힘을 주며 긴장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가급적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수동 기어인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따서 소형 오토 차량으로 연습을 했기 때문에 시험 칠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고는 합디다만, 그래도 빠른 속도와 옆을 쌩쌩 달리는 다른 차들 때문에 많이 긴장된다고 하더군요. 


창녕을 갔다 올 때도 시내 구간에 들어오니 바짝 긴장하고 특히 도로 가장자리에 불법 주정차된 차들과 버스 정류장을 드나드는 시내버스들 때문에 어려워하더군요. 아직 차선 변경이 익숙치 않고 사이드 미러를 통해 뒷차와의 거리 판단이 쉽지 않은 듯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경험이 쌓이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라,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운전 연습하는 시간은 늘여가자고 약속하였습니다. 둘째 날만 해도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도 훨씬 긴장이 풀리더군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만큼 아들이 운전에 익숙해지더군요.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고 가는데, 30여 년 전 제가 처음 운전을 배울 때가 생각나더군요. 아들이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서 잠시 혼자 옛 생각에 잠겼습니다. 


군대를 다녀와 곧장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땄지만 저희 집에는 차가 없었고, 가까운 친척 중에도 차를 빌려줄 만한 분들이 없었습니다. 


마침 마산YMCA에 낡은 봉고차가 있었는데, 당시 이영환 총무님 말고는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지, 저에게 차를 빌려주면서 연습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다 제대하고 복학한 선배에게 부탁해서 YMCA봉고차로 운전을 배웠습니다. 


수동 기어였기 때문에 오르막 출발 연습을 집중해서 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몇 차례 봉고차를 빌려서 운전을 익히고 나니 바쁜 총무님 대신에 운전을 자주 시키더군요. 허드래일로 차를 쓰야 할 때마다 단골로 불려다녔고, 총무님은 승용차가 있었기 때문에 봉고차는 업무 시간이 아닐 때도 제가 편하게 타고 다니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친구들보다 일찍 운전을 배웠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YMCA 활동을 시작하면서 수영교실, 방학 특강 등의 프로그램을 할 때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습니다. 나중에 실무자가 된 후에는 몇 년 동안 사회개발부 간사를 하면서 아기스포츠단 차량 기사를 겸하기도 했었답니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아들에게 물었더니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도 아빠가 가르쳐줬었다"고 하더군요. 아들의 중요한 생애 첫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 참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