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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야쿠시마 조몬스기

산속 오두막...야마오 산세이의 흔적을 찾아가다

by 이윤기 2016.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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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 여행기② 야마오 산세이 생가 방문


지난 5월 중순(13~16일)에 다녀온 야쿠시마 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작년 4월에 이어 두 번째 야쿠시마 여행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짜면서 준비를 맡은 여행사 측에 여러 차례 야마오 산세이 생가 방문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행사측에서 사전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야마오 하루미 여사와 만나는 일정 같은 것은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행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준비해 줄것이라고 믿었던 제탓이지요. 


아무튼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아도 야마오 산세이가 살던 집이라도 보고 싶다고 부탁하였지만, 섬 일주 여행과 바다 거북 산란 관찰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그마저도 무산되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쓴 책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책에 수없이 자주 등장하는 그가 살던 오막살이 집을 직접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상상했던 그의 집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면 책을 다시 읽을 때 그 느낌이 온전히 살아날 수 있으리가 기대하였던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꼭 들러리라 다짐했었답니다. 


셋째 날 밤 바다거북 산란 관찰을 하고 '안보'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면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소식이 가이드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야쿠시마는 작은 공항이라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유도전파를 발사하여 착륙을 유도하는 '계기착륙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착륙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더군요. 


만약 야쿠시마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야말로 낭패인 것이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일정을 연장하면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항공편이 예정대로 운항되어도 아침 시간에 3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야마오 산세이 생가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일본에는 앞좌석에 두 명이 탈 수 있는 택시가 있어 모두 다섯 명이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집에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여행 전에 추천한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었던 두 사람과 호기심 많은 한 사람 그리고 일본어를 잘 하는 한 분이 저와 동행을 해주었습니다. 


숙소에서 야마오 산세이 생가까지는 지도상으로 약 30km 거리인데 택시로 1시간 가량 걸렸습니다. 야쿠시마는 편도 1차선도로이고, 제한 속도가 60km이기 때문에 거리가 길지 않은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었습니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출퇴근 시간 차량 정체가 없으면 약 30분 정도 야마오 산세이 생가를 둘러보고 야쿠시마 공항에서 일행들과 만날 수 있겠더군요. 


다행히 야마오 산세이 생가에 갈 때는 택시가 예상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덕분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택시는 다시 공항까지 타고 가기로 하였기 때문에 택시 기사와 함께 야마오 산세이 선생의 집을 살펴보았습니다. 



택시 기사에 따르면 "하루미 여사는 나이가 많아 산 아래 잇소 마을에서 산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집을 둘러보니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뚜렷하였습니다. 처마 밑에 빨래건조대에는 옷이 널려 있었고, 안채에는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여러 번 읽었던 목욕탕 물을 데우는 아궁이를 직접 본 것도 반가웠고, 야마오 산세이가 공부하고 기도하고 사색하던 서재을 살펴본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서재가 있는 별채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유난히 아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서재 입구에 앉아서 그가 쓴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 책 표지에 있는 사진과 똑같은 포즈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책을 읽은 일행들도, 책을 읽지 않은 일행들도 그 책을 들고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루미 여사를 만났으면 싸인이라도 받고 싶어 책을 가져 갔었는데 아쉽게도 그녀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서재에는 여전히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주인이 없는 빈집이라 방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벽에는 시가 쓰인 액자가 걸려있고 플라스틱 상자에는 분류된 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배우 박용우가 나오는 <시간의 숲>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국 배우 박용우와 일본 여배우 타카키 리나가 야마오 하루미 여사가를 만나 생전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이 작은 오두막을 중심으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쓰며 무려 여덟 명의 아들딸을 키워냈다. 그는 직접 지게를 지고 가족들의 똥을 실어 나르며 천연의 퇴비를 만들고, 찻잎 하나하나를 덖어 최고의 녹차를 만들고, 이웃 사람들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아들과 바다낚시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하였습니다. 




작은 오두막에서 여덟 명의 아들딸을 키워낸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인데, 그중에는 죽은 친구의 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오두막이 있는 곳은 지금도 오지인데,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폐촌에서 자연에 기대어 아이들을 키워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밤에 홀로 글을 썼고, 그 글들은 자연과 공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지은 작은 오두막집 별채에서 그는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과 회귀하는 시간에 관해 사유하였고, 그의 사유는 책으로 강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인간은 본래 물과 빛, 흙과 공기에 속해 있는 생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지금 와서 분명해진 것은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라는 것이다." - 여기에 사는 즐거운 중에서 



예컨대 야쿠시마의 깊은 숲 속에 조몬시대로부터 시작해서 7200년을 살아온 삼나무 '조몬스기'와 비교해보면 제아무리 잘난 인간도 오히려 삼나무 한 그루보다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자연을 대하는 삶의 자세, 마음가짐은 세상 만물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는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를 '가미'라고 부릅니다. 그는 신을 천국에만 가둬 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다 가미다. 왜냐하면 가미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진심으로 좋았다고 느끼는 것을 통틀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실제로 야마오 산세이는 야쿠시마의 숲과 바다에서 만나는 풀, 나무, 바위, 돌, 이끼, 곤충들에게서 가미를 찾아냅니다. 풀과 나무와 바위와 돌과 곤충들에게 가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과도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공부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던 오두막집을 둘러보면서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읽었던 인간의 시간에 대해 쓴 글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시간을 직선의 시간, 회귀의 시간 그리고 무의 시간으로 구분하면서 사람들은 주로 직선의 시간에만 주목하며 회귀의 시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합니다. 


"그 하나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곧바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결코 뒤로 돌아설 수 없는, 불가역적인 '직선의 시간'으로 우리 문명의 시간은 이 시간에 지배되고 있다. 문명 특히 과학 기술 문명이 결코 뒤로 돌아가는 일 없이 앞으로 진보해 가는 것은 문명이란 처음부터 진보하는 것을 숙명으로 하는 직진하는 시간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렇게  직진하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그 존재를 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바로 회귀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밤낮이 바뀌듯이 계절이 바뀌듯이 회귀하는 시간들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지구의 자전에 따라, 아침과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지구의 공전에 따라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일 년이 된다. 아침과 낮과 밤으로 회귀하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로 회귀하는 시간은 태양계가 안정돼 있는 한 영원히 반복될 자연 시간으로 우리 개개인의 생명이나 가족이라는 집단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순환을 한다는 점에서 이 회귀하는 시간 안에 있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예컨대 인간의 삶을 놓고 보면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해 가는 혹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는 직선의 시간이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아버지의 삶이 아들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삶이 딸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세대를 이어가며 마치 아침과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회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마오 하루미 여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여전히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만, 짧은 시간동안이나마 야마오 산세가 살던 오두막을 둘러 본 것은 큰 기쁨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가 쓴 책을 읽을 때마다 직접 눈으로 보고왔던 집과 마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쿠시마에 가려거든 꼭 야마오 산세이가 쓴 책들을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