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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대원군 졸개의 딸...이토 밀정으로 맹활약

by 이윤기 2016.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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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선안나가 쓴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광복을 염원하며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친일을 선택했던 다수에게도 500년 봉건왕조 조선이 일본에 강탈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점을 틈타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적극적 친일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었지요.


우리 역사교육이 고대사에서 근대 이전 역사까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사건과 이름 그리고 연대 외우기를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현대사에 꽤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야 장준하, 김마리아, 이육사, 이회영과 같은 이름들을 기억하거나 혹은 그들이 걸었던 고난의 독립운동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백선엽, 김활란, 방응모, 현영섭, 배정자, 김갑순, 이근택 같은 자들의 친일 행적을 알지 못할 겁니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친일청산 실패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저 같은 이도 김갑순, 이근택 같은 자들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친일 매판자본가 김갑순, 이완용 가문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친일 가문 이근택 가문과 그 자들의 친일 행각을 알게 된 것은 선안나가 쓴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을 읽은 덕분입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국민들이 책 한 권 읽는다고 당장 친일 청산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 과정이 이른바 '기억 투쟁'인 것처럼, 광복 이후 친일파들이 권력을 잡은 이 나라에서는 친일청산 역시 '기억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친일 인명 사전을 만든 것도 이런 책을 쓰는 것도 모두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청산, 잊지 말아야 할 '기억 투쟁'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항일 투사도 매국노도 역사책에 존재하는 추상적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알고",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 책 속 인물들의 일상에 육화된 역사적 배경 및 사건들과 자연스레 맞닿으면서 한층 생생하고 풍성해 질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을 펼쳐들고 저자 서문을 읽다가 "항일 투사도 매국노도 역사책에 존재하는 추상적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구나 항일 투사가 될 수도 있었고, 매국노가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삶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 집안이 항일 투쟁의 외길을 걸었던 명문가로는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 후 여섯 형제가 모두 만주로 떠나 독립군을 양성했던 이회영 가문이 있어서 끝내 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면, 일제 강점이 36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귀족이 6명이나 나온 을사오적의 친일 가문 이근택 집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에 의한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자 이회영 가문은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만주 땅으로 망명합니다. 당시 돈으로 40만 원 요즘 시세로 600억 원이 훨씬 넘는 거금을 몽땅 독립운동에 털어 넣었습니다. 구한 말 최고의 부자 가문이었던 이회영 가문은 항일투쟁에 전 재산을 바치고 자신은 물론이고 후손들까지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뤼순감옥에서 생애를 마칠 때까지 전 재산과 생애를 항일 투쟁에 바치며 싸웠던 이회영 선생은 모진 고문을 당해 순국하였고, 함께 만주로 떠난 형제들도 이시영 선생만 빼고 모두 끼니를 걱정하며 살다가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습니다. 반 만년 역사를 통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에 딱 어울리는 가문이 바로 이회영 선생 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 만년 역사 통틀어 가장 훌륭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반면 독자들은 잘 모르지만 애국지사 이회영 가문에 필적할 만한 대표적인 매국노 가문이 있었으니 바로 이근택 집안입니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근택은 이완용과 함께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대체로 많은 독자들이 대표적인 친일파로 이완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그의 친일행각은 이완용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더군요.


임오군란으로 위기를 맞은 명성황후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 끝에 벼슬살이를 시작한 이근택은 우여곡절 끝에 중앙정부의 관료로 진출하고, 독립협회를 해산시킨 공(!)으로 한성부 판윤에 오르게 됩니다. 일본 자객에게 암살당한 명성황후의 피묻은 허리띠를 거금 6만냥에 사서 고종에게 바친 공(!)으로 환심을 사 고위관료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자 일제의 신임을 얻기 위해 똑같이 노력하였고, 그 결과 권력과 부를 동시에 거머쥐게 됩니다. 흔히 이완용, 이근택 같은 을사오적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이 자들이 돈을 받고 나라를 일제에 넘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강제 병합에 공로가 많은 조선인 76명에게는 일본 작위와 605만 엔의 은사금(현재 가치 6000억원)을 하사했습니다....... 이근택은 거액의 합방 은사금을 받고 조선총독부 고문으로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침략을 돕는 온갖 조직과 단체의 장을 맡으며 친일의 선봉에 섰습니다."(본문 중에서)


단순히 일제 강점에 정치적 협력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막대한 뇌물과 돈을 받고 기밀정보를 넘기고 강제적인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였다는 것이지요. 대한제국의 고위관료라는 자들이 막대한 개인적 치부를 위해 주권을 팔아 먹었다는 겁니다.


강제병합에 앞장선 공로로 은사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형제와 후손들까지 6명이 일제의 귀족 작위를 받았으며, 엄청난 재산을 끌어모아 청계천 일대의 땅을 몽땅 사들여 '오만석꾼'으로 불리었답니다.



나라 구하려다 알거지, 나라 팔아 배불린 매국노


이회영 가문의 형제와 후손들이 만주와 중국땅을 떠돌며 풍찬노숙으로 항일 투쟁을 벌일 때, 일본 천황의 은사금을 받아 동족의 고혈을 빨아 들이며 재산을 끌어모은 것이지요. 이근택과 그들의 후손들은 자신 혹은 집안의 친일행각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기나 할까요?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은 이회영 선생과 이근택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것처럼 대표적인 독립군 장준하 선생과 토벌대 백선엽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또 개화기의 대표적인 여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와 매국 여성 지식인 김활란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주기도 합니다.


친일매국 언론인 방응모, 친일 매국 작가 현영섭, 이토오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된 배정자, 노비 출신으로 중추원참의를 지낸 대표적인 친일매국노 자산가 김갑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기가막힌 친일인사들의 삶을 일제의 탄압을 가장 많이 받은 언론인 안재홍, 민족시인 이육사,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막대한 독립자금을 부담했던 안희제 선생의 삶과 대비시켜 클로즈업 합니다.


친일 매국노들의 공통점은 나라를 팔아먹는 과정에서 막대한 개인적 치부에 성공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일본인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친일행각으로 조선 총독 혹은 총독부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얻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 대표적인 여성 친일매국노 중 한 명이 이 책에 등장하는 배정자입니다.


배정자의 아버지는 대원군의 졸개로 몰려 처형되었고, 역적 딸이 되어버린 그녀는 밀양관아기생으로, 통도사에서는 어린 승려로 부초처럼 떠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을 거쳐 이토 히로부미에게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배정자를 데려가 자신의 별장인 창랑각에 살면서 경찰학교에 다니게 했습니다. 수영, 승마, 자전거, 사격술, 변장술 등 고급 밀정 활동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고, 일본에 충성을 다하도록 기르기 위해 정신교육은 더욱 철저히 했습니다."(본문 중에서)


다야마 데이코라는 일본 이름을 얻은 배정자는 이토오 히로부미의 밀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스파이로 맹활약을 하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이 되었을 때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고종 퇴위에도 깊이 관여 하였다고 합니다.


합방이 되었을 때는 만세를 불렀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위안부 알선에도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기자가 친일 활동을 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지금 아무 기억도 없어요. 다 어리석고 나이가 어렸던 까닭에 어쩔 수 없었던 거지요."


저자는 반민특위가 출범하였을 때 가장 먼저 체포된 여성 반민족행위자였고, 반민법에 밀정 항목이 따로 만들어진 것도 모두 배정자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외모를 무기로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며, 어린 여성들을 일본 군대의 성노예로 보낸 대가로 부를 축적하였다는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배정자...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이런 배정자의 삶과 정반대의 다른 삶을 살았던 항일 독립운동가로 '남자현'을 소개합니다. 남자현은 최근 영화 <암살>의 전지현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의병투쟁으로 남편을 잃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서로군정서에 정식 입대하여 독립군부대의 정식 여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항일 독립운동 진영이 분열할 때마다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서 화합과 단결을 호소하여, '세손가락 여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젊은 독립군을 돌봤다고 합니다. 54살이 되던 해에 '사이코 마코토 조선 총독 처단에 나섰고, 61세에는 만주 최고 권력자인 '부토 노부유시'처단에 나섰습니다.


"더 나이들면 투쟁도 힘들어질 것이다. 기운이 남아 있는 한 싸우다 죽는 것이야말로 조선 독립군이 걸어갈 길이요, 나의 운명이다."


여자 안중근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이 육십의 노구를 이끌고 암살 투쟁에 나서게 하였습니다만, 밀정의 밀고로 실패하고 고문을 당하던 끝에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남자현은 249원 80전을 아들에게 내놓으며, 해방이 되는 날 축하금으로 200원을 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더군요.


"200원은 조선이 독립되는 날 정부에 독립축하금으로 바쳐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네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하도록 해라. 나머지 돈은 손자를 대학까지 공부시켜 내 뜻을 알게 하고, 친정의 손자를 찾아 교육 시키도록 해라."


그녀가 남긴 돈은 실제로 해방 후 삼일절 기념식 때 임시정부요인에게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어머니에 대단한 후손들이지요. 수많은 독립운동이 실패하였습니다만, 마침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암살에 나오는 전지현의 대사처럼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알려줬던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나라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나쁜놈이라는 주장을 뛰어넘어 친일 세력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에 어떻게 찬물을 끼얹었는지, 어떻게 사리사욕을 채웠는지 드러내 보여줍니다. 항일투사의 삶과 친일 매국노의 삶이 역사적 선택의 귀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당신들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칫하면 매국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환기 시키기도 합니다. 이 책은 청소년부터 어른들까지 우리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라고 합니다.


친일 매국노와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여러 책들이 있습니다만,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대표적인 항일 투사와 대표적인 매국노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삶을 함께 드러내 보여주는 날카로운 기획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10점
선안나 지음/피플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