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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농부 고시보는 독일, 백남기 죽음 상상도 못해...

by 이윤기 2016.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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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만성적 반영구적으로 가난한 귀농인"이 유럽 여행을 다녀와 쓴 책입니다. 2014년 봄에는 유럽 농촌 마을 공동체를 둘러보고 2015년 겨울에는 유럽의 도시 지역을 살펴보고 왔다 하더군요. 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유럽의 마을공동체 및 지역사회 일상생활 체험연수' 보고서입니다.


유럽을 다녀 온 저자의 느낌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하마터면 지상낙원으로 착시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와 비교하면 모든 것이 경이롭고 당황스러웠으며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창조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저자를 반겨주는 한국은 정반대에 가까운 사회였지요. 독자들이 잘 아시는대로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며,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도지사를 내쫓기 위한 주민소환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지요. 아버지가 청와대 민정수석인 어느 청년은 코너링을 잘해 이른바 꽃보직을 받아 군대 생활을 하고, 그의 외가 재산은 재벌 회사가 비싸게 사줬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유명 정치인의 사위는 스폰서 검사로 수사를 받고 있고, 여기저기서 법조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여인과 그 딸이 연루된 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고 있지요.


한국인의 눈에 비친 유럽 복지 국가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빈부 격차는 자꾸만 커지고 있고, 출산율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떠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려 하는 그야말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험사회 한국, 절망사회 한국, 불행사회 한국에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당신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에서 내내 살다 결국 한국에서 죽어가야 할 운명을 지닌 재수 없고 불행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본문 중에서)


이른바 복지 국가 유럽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면 우리가 얼마나 암울하고 불행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한국에 태어난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이 나라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정기석도 그 중 한 사람이지요.


저자는 더 살기 좋은 농촌을 꿈꾸며 오랫동안 연구자로 살아왔고, 자신이 쓴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태생적으로, 그리고 필시 반영구적으로 가난한 귀농인"으로 살다가 유럽은 어떻게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사회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후회 없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겁니다.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명소와 관광지, 여행객들이 돈을 쓰러 오는 명품샵이나 면세점은 피했다. 물론 그럴 생각도, 그럴만한 돈도, 시간도 없었다. 단지 사람이 행복한 공화국, 사람이 먼저인 공동체, 유럽의 진면목을 더, 가깝게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연수와 여행의 동선을 정했다."(본문 중에서)


그렇게 짜여진 영국, 체코,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5개국 여행과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농촌 공동체 연수 경험을 담아 유럽 7개 나라 일상생활 체험과 시민사회를 관찰하고 온 여행기가 바로 책 <행복사회유럽>입니다. 예컨대 이름난 유명 관광지를 피해서 만난 유럽 시민사회와 농촌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와 쓴 여행기입니다. 


국민이 행복한 유럽 7개국 일상 생활 체험


그런데 저자의 유럽 생활체험은 첫날부터 꼬이기 시작하였더군요. 왜냐하면 한국에서 앓던 통풍이 1년 만에 재발하여 낯선 땅에서 병원과 약국을 전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전 지식으로 영국 의료보험에 대한 괴담(?)을 기억하고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의사와 약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저자가 직접 체험한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무상 진료(한국에 돌아가면 50파운드 환급)가 이뤄지더라는 것입니다. 영국 병원은 모두 국영이고, 의사는 공무원이고 치료비는 무료였지만 한국에서 들었던 괴담(?)은 경험할 수 없었고, 한국인 여행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유럽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만, 저자의 영국 여행기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런던의 교통시스템이었습니다. 복잡한 도심에 들어가려면 고액의 혼잡세를 내야하고, 물리적으로 차량 속도를 조절해 교통량을 감소시키는 '교통 진정기법'이라는 생소한 시스템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영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교통사고 사망률이 가장 낮은 거라고 하더군요.


저자가 런던에서 부러워했던 또 하나는 바로 공원입니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평화로운 공원과 자연스러운 광장에서 느끼는 활기찬 기운을 경험하였다는 것입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관광객들과 런더너들이 적당히 뒤섞인 런던의 공원과 광장은 산책, 휴식, 만남, 토론 심지어 시위 등 여가생활의 장으로서 공유지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본문 중에서)


런던의 녹지 면적은 도시의 25%, 서울은 28%인데 서울의 공원녹지는 70% 이상이 도시 외곽에 몰려 있다는 겁니다. 저 역시 짧은 시간 동안 영국의 하이드파크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몇몇 공원을 둘러보면서, 내가 사는 옛 마산이 얼마나 삭막한 도시인지 깊이 깨달은 경험이 있습니다.


산책, 휴식, 만남, 토론, 시위가 있는 영국 공원


옛 마산의 경우도 통계 지표상 공원 면적은 넓지만,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당시 통계에 표시된 공원의 30% 이상은 공원 묘지였습니다. 통계에 잡힌 공원들은 대부분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가짜 공원이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이라고 해서 행복한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관광도시 베니스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심각하더군요. 당일치기 관광객이 늘어나니 식당이나 숙박업소가 어려움을 겪게 되어 호객 행위가 이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더라는 겁니다.


"어느 인구학자는 2030년경이면 상주인구는 전혀 없이 관광객만 들락거리는 유원지 같은 도시가 되리라는 비극적 전망까지 내놓을 정도다. 이렇게 원주민이 밀려나고 도심 공동화가 심화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본문 중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시에 자본이 몰리면 결국 임대료나 집값이 올라 원주민들이 쫓겨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결국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건물만 남다 보니 마을, 골목, 주민이 없는 유령도시가 되어가더라는 겁니다. 베니스에선 지속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저자의 여행지 중 가장 흥미로운 도시는 취리히였습니다. 저자는 취리히의 협동조합에 대하여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취리히를 비롯한 스위스의 소매시장은 미그로와 코프라는 두 협동조합이 장악하고 있답니다.

"소매유통시장 업계 1위는 미그로다. 스위스 인구 800만 명 중 250만 명이 미그로 조합원이다. 연간 매출액은 30조원이 넘는다. 상시 고용인력만 8만 명이 넘어 스위스 최대의 일자리 창출기업이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 미그로는 세계에서 7번째로 큰 협동조합이지만, 1925년 창업 당시에는 협동조합이 아닌 개인기업이었다고 합니다. 1941년 창업자인 고트리브 두트바일러가 개인 소유였던 주식 대부분을 출자금으로 전환하면서 협동조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취리히 사람들은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으로 미그로를 만든 고트리브 두트바일러를 꼽는다고 합니다.


유럽 행복 사회, 행복한 농촌의 기반은 협동조합


스위스 소매 유통업계 2위인 코프도 협동조합인데, 5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매출액은 30조원, 조합원은 200만 명이나 된다합니다. 심지어 세계적인 대형마트 까르푸가 철수한 매장 12곳을 코프가 인수하였다는군요. 스위스 협동조합들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값싸게 공급한다'는 단순하지만 상식적인 전략으로 대규모 상업자본과 경쟁하여 당당히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지금까지 소개한 이런 심각한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년 동안 건축한 프라하성도 찾아가고, 로마에서는 판테온 신전이나 바티칸도 둘러봅니다. 파리에서는 오르세 미술관이나 퐁피두센터 같은 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산악열차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에도 올라갔더군요.


독일에서는 수필가 전혜린, 축구선수 차범근의 흔적을 찾아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인상적인 장소는 뮌헨의 마리엔 광장 근처에 있는 세계 최대의 맥줏집 호프브로이 하우스 이야기였습니다.


무려 1589년에 개장한 바이에른 왕실의 전용 양조장이었던 곳이 세계 최대의 맥줏집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을 찾았던 유명인사들 명단 때문에 더욱 놀랍습니다. 바로 모차르트, 레닌, 히틀러 같은 유명인사들이 다녔던 술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일개 맥줏집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인 셈이지요.


물론 맥줏집 이야기보다 훨씬 더 인상 깊었던 여행기는 저자가 독일 농업 현장을 방문했던 기록들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총생산 대비 농민 총생산은 3%인데, 독일의 경우도 국민총생산 대비 농민 총생산 비중은 고작 1%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독일에서는 농업이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국민적 합의로 농업, 농촌, 농민을 위해 농민수익사업을 지원하고 있어요. 국가가, 국민이 농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해주는 거지요. 그래서 농부는 영광스러운 자리로 대접받아요. 아무나 농부가 될 수 없고, 아무나 농사 지을 수 없어요." (본문 중에서)


독일은 기업농이나 대농을 지원하지 않고 농업전문 직업교육을 받은 소농, 가족농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한다더군요. 예컨대 농사를 지어 못 먹고 사는 농민들도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세금을 지원하여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지요.


백남기 농민 같은 죽음은 독일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독일은 농촌에 최소한 유지 되어야 하는 인구 밀도가 헌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각종 정책으로 뒷받침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독일 농업정책의 첫 번째 원칙이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삶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이런 수준 높은 원칙이 지켜지는 대신 아무나 농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농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겁니다.


"농부가 되려면 정식으로 농업전문학교를 입학해 졸업해야 한다. 그러고도 농업현장에서 수년간 실습을 마친 후 농부고시에 합격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독일에서는 농부고시(?)를 패스하고 농민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국민의 생명을 결정하는 먹을거리를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65세로 정년이 되면 농사일을 그만두고 연금으로 편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답니다. 우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들이지요.


그렇다면 저자가 둘러 본 유럽이 우리사회에 비해 한 차원 높은 행복사회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저자 정기석은 <행복사회 유럽>의 비결은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리고 확정적으로 단언하자면, 오늘날의 유럽을 행복사회로 이끈 동력은 사회적 자본과 사회 안전망의 힘이다." (본문 중에서)


유럽의 정치인과 시민들이 법이나 제도보다 먼저 사회적 자본과 사회 안전망을 갖추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삶이 보장될 수 있었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가능하였다는 것이지요. OECD가입한 부자나라라고 하면서도 국민의 행복 수준은 개발도상국보다 못한 이유를 정확히 찾아냈더군요.


이미 100년 이상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방정부가 나서서 '청년수당'같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도 구축하려는 노력에서 우리도 희망을 찾아야하겠지요. 우리 젊은이들이 이 땅을 포기하고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더 부자나라가 못 되더라도 더 많은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행복사회 유럽>을 따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사회 유럽 - 10점
정기석 지음/피플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