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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아마도 이번 생엔 가기 힘든 최고의 여행지

by 이윤기 2017.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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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니 꽤 자주 남들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편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을 읽으면서 왜 여행 이야기책을 읽는 건지, 주로 어떤 때 여행 이야기책을 읽어 왔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되짚어 생각해보니 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웬만큼 재미있는 책을 쥐어도 집중이 되지 않을 때, 지금 당장 부닥친 고민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때 여행 이야기책을 읽었더군요. 아무래도 여행책 읽기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때 대리만족을 위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듯 합니다. 


지난 겨울부터 올 여름 사이도 그런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 여행 이야기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 중 한 권이 경영 컨설턴트이자 경영학자인 오마에 겐이치가 쓴 <내 생애 최고의 여행>입니다. 


기업가로 기업가 육성 전문가로 그리고 여러 권이 경영학과 경영컨설팅 분야의 저자로 명성을 얻고 있으면서, 전공분야와 상관없는 자신의 여행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 냈더군요.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아직 대학생 신분이었던 열아홉부터 스물넷까지 약 6년 간 나는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일본교통공사 JTB의 관광통역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여행 가이드를 하려면 반드시 운수성 관할의 통역안내업 자격증을 따야 했는데, 운 좋게도 자격시험에서 최연소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본문 중에서)


오마에 겐이치가 여행에 관심과 흥미를 가진 것은 바로 '통역안내업 자격증'을 소지하고 6년간 관광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던 남다른 이력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 우연히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행 스타일을 갖게 되었으며 여행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남으로써 이제까지 갖고 있던 자신의 생각이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좀 더 명확해진다." (본문 중에서)


예컨대 여행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유명 명소나 유적지를 둘러보고 유명상점에 들러 쇼핑으로 마무리하는 여행으로는 풍요로운 여행이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행에서의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자는 "지금도 버스나 열차, 그리고 로컬비행기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꼭 말을 건다"고 합니다 .


여행은 새로운 만남과 인연으로 시작된다


<내 생애 최고의 여행>에는 이런 여행 철학을 가진 오마에 겐이치가 엄선한 15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앞서 인용한 문장들에서 짐작하였겠지만 파리, 밀라노, 뉴욕 같은 곳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장소를 엄선하였다고 자평하였지만, 서민들은 좀처럼 시도하기 어려운 장소들임엔 분명합니다. 


그가 엄선한 여행지는 모두 가 본 적도 없고 들어 이름조차 낯선 장소였습니다. 유일하게 이름이라도 들어 본 곳이 브라질에 있다는 이과수폭포뿐이더군요.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이 익숙한 독자라면 분명 여행 경험이 남다른 사람들이거나 부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 북이탈리아에 있는 호텔 다니엘리, 북프랑스 노르망디의 퐁타방과 몽생미셀, 남프랑스의 앙티브, 핀란드와 스웨덴을 잇는 실리아 라인, 두바이, 푸켓 타이의 아만푸리, 도미니카의 카사 데 캄포, 하와이의 코나 빌리지 리조트, 팔라우, 오스트레일리아의 노스 스트래드브로크 섬, 캐나다의 휘슬러, 스코트랜드의 글렌이글스, 체코의 프라하가 바로 추천 여행지들입니다.



그 중 몇 군데를 소개해보겠습니다. 먼저 태국 방콕에서 푸껫까지 거리는 1시간 20분, 아시아에 있는 곳이라 그나마 한 번 가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아만푸리>는 푸켓 국제공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최고급 리조트입니다. 저자는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이곳'이라고 극찬을 하였지요. 


"파도소리, 해풍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 스치는 소리, 작은 새들이 지저귐이 귀를 간질인다. 여기에 로비, 풀, 바다가 수평으로 일직선을 이룬 광경은 그야말로 낙원의 표상이라 불리기에 한 치의 모자람이 없다. 대개는 이 정도만으로도 완전히 빠지게 된다." (본문 중에서)


"스태프는 게스트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 레스토랑 등에서 일일이 영수증에 사인할 필요가 없다. 풀에서 수영을 하고 올라오면 절묘한 타이밍에 타월을 건네준다......의자를 편안한 위치로 옮겨두면 스태프는 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부터는 고객의 취향에 따라 배치해둔다."(본문 중에서)


문제는 지불 능력입니다. <아만푸리>는 가장 저렴한 방이 700달러나 하고, 식사나 스파 등이 더해지면... 아무나 선택하기 힘든 곳이 분명합니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지만 자유여행 패키지 상품도 250만 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그나마 <아만푸리>는 저자가 소개하는 '지상최고의 여행지' 중에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편에 속합니다. 


지구상 열 다섯 곳 지상 낙원, 이번 생엔 쉽지 않겠지만


한 군데만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가 가장 끌리는 여행지였는데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노스 스트래드브로크섬>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모래섬이라고 하더군요. 


"끝에서 끝까지 족히 30km는 됨직한 하양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정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깊은 산림지대가 공존한다. 바다에서 고래와 돌고래를 비롯해 만타레이와 바다거북 등을 만날 수 있어 마치 오스트레일리아의 매력을 한자리에 응축시킨 듯한 대자연의 보고다."(본문 중에서)


"바다라고 하는 엄청나게 거대한 물과 역시 광활한 모래로 된 대지가 뒤엉켜 일체가 된 '지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장애물은 물론 차선조차 없이 전신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하얗게 비우고 넓은 모래를 질주하는 쾌감에 한번 빠지면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본문 중에서)


모래사장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으니 특별한 운전 기술도 필요없기 때문에 자동차만 운전할 수 있으면 쉽게 중독 증상을 보이게 된다는군요. 저자의 경우 세계 각지의 좋은 곳을 섭렵하였지만 10년 이상 연초 휴가 때마다 이곳을 방문하고 있답니다. 지구를 질주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극찬합니다. 참 대단한 곳이지요. 




30km 모래 해변을 사륜구동으로 달리는 짜릿함


오마에 겐이치가 소개하는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장소들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도 있어야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돈도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큼 가치 있는 장소와 경험만을 엄선하였다고 하지만, 저의 경우 가치 있는 장소과 경험이라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선뜻 독자들에게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생애 최고의 여행'지이기는 하지만 남은 이번 생애 이곳들을 여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아니 매우매우 희박합니다. 어떤 독자들은 '그림의 떡'이라고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추천하는 까닭은 어떤 분들은 저자가 소개하는 열다섯 곳 중에서 한두 곳이라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충분한 시간과 상응하는 충분한 돈이 없으면 쫓아가기 힘든 여행지만 소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자가 체험한 여행 노하우를 읽은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여행 출발점은 초등학교 시절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54년, 요코하마에서 기타큐슈 모지까지 난생처음 혼자서 기차여행을 떠났는데, 기차표를 사주는 조건으로 아버지에게서 두 가지 숙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요코하마에서 모지까지 가는 급행열차 정차 역을 모두 외울 것, 산과 강 등 역주변의 지리, 신사와 불당 성 등의 유적까지도 조사하여 차창 너머로 어떻게 보이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저자는 자신이 여행의 재미에 빠져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었던 유년 시절의 경험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코하마에서 모지까지 22시간의 기차여행을 통해 자연과 마을과 도시 그리고 사람과 그들의 노동을 관찰하는 여행자의 시선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행은 기억이 아니라 기록으로 완성된다


어린 시절 이미 유명 관광지와 명소를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찍는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울러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중, 고등학교 시절 소년의 모험적인 여행 경험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고분에 들어가 노숙을 경험한 무용담이더군요. 


한 가지 더 소개하고 싶은 인상적인 저자의 노하우는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에 겐이치는 여행은 '기억만이 아니라 기록'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이 간 자취, 그곳에서 체험한 것, 느낀 것, 만난 사람들을 세세하게 써놓고 사진은 물론이고 항공권과 차표, 영수증 등 여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붙이고 일러스트로 그려두기까지 한다더군요.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여행 노트만 들추면 여행 당시의 기억 속으로 확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기억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야 여행의 경험을 평생 가져갈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오마에 겐이치가 소개하는 '생애 최고의 여행'을 아무나 쫓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른 이에게 자랑할 수 있는 '생애 최고의 여행지'는 있기 마련입니다. 아울러 그 생애 최고의 여행지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소개하거나 자랑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생애 최고라는 것은 모두에게 매우 주관적인 경험의 결과물입니다. '너무 비싸다'는 핑계로 인생을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오마에 겐이치의 생애 최고의 여행을 대신할 수 있는 자신만의 '생애 최고 여행지'를 찾아 나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면 결코 늦지 않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여행 - 10점
오마에 겐이치 지음, 송수영 옮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