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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자전거 국토순례

보성 녹차밭 봇재...걸어가도 타고가도 결국 넘어야

by 이윤기 2017.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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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⑤ ] 장흥에서 순천시 청소년수련관까지 100km


다섯 째 날은 장흥을 출발하여 순천까지 가는 약 100km 구간을 달리는 날입니다. 참가자들은 자전거 라이딩에 익숙해져 한결 패달링이 경쾌합니다. 기어 변속조차 서툴렀던 아이들도 오르막과 내리막에 맞춰 척척 기어를 바꿀만큼 익숙해졌습니다.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단 전체의 라이딩 속도도 매일매일 조금씩 빨라지고 대열을 잘 갖워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날쯤 되면 지켜보는 진행팀 실무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무심코 지켜보던 시민들도 청소년들의 라이딩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날 오전에 올해 국토순례 구간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봇재’ 고개를 넘었습니다. 봇재는 해발 223미터 높이의 보성 녹차밭을 지나가는 고갯길입니다. 봇재를 넘기 위해서는 평지 구간에서부터 약 7km 구간의 업힐 코스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전날 묵었던 숙소를 출발하여 보성군 회천면 군학마을 해변에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하루 라이딩 거리가 100km나 되고,  '봇재'를 넘어야 하는 날이라 아침 식사 전에 15km 정도를 먼저 달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여 약 6km를 달리자 오르막 구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밤고개삼거리를 거쳐 봇재 휴게소까지는 6.9km. 강원도의 미시령이나 지리산 성삼재나 정령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청소년 참가자들에겐 가장 길고 힘든 오르막 구간이었습니다. 



봇재...걸어가도 타고가도 결국 넘어야 한다


"가장 힘든 오르막 구간"이라는 말만 듣고도 의욕을 잃은 아이들도 보입니다. 업힐 구간이 시작되자마자 아예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참가자들도 보입니다. 진행 실무자들이 구령을 부치면서 힘을 내라고 응원하지만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납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엔 힘으로 오를 수 있지만 긴 오르막은 힘으로만 올라갈 수 없습니다. 업힐 시간이 길어지면 페달링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대신 허벅지와 종아리엔 통증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은 실력과 체력이 모두 제 각각입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을 견뎌내면서 오르는 아이들도 있고,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고갯길을 오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긴 오르막 구간은 다리만 아픈 것도 아닙니다. 


오르막 길을 올라가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는 만큼 엉덩이에도 힘을 주기 때문에 엉덩이 통증도 더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국토순례를 통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 자신과의 싸움을 가장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곳이 바로 이런 고갯길을 넘을 때입니다. 



승부는 결국 오르막에서...자신과의 승부도 오르막에서


진행팀 실무자들과 홍보팀 실무자들이 흥겨운 음악도 틀어주고, 중간 중간 물도 나눠주며 응원하지만 어떤 응원도 오르막의 길이를 줄여줄 수는 없습니다. 힘겨운 페달링을 반복하는 아이들에겐 길고 힘든 오르막길일 뿐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페달링이 가벼운 선두 그룹이 가분한 모습으로 봇재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선두 그룹으로 올라 온 아이들의 표정엔 자신감과 기쁨이 넘쳐납니다. 가장 힘든 구간을 한 번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그것도 선두에 서서 올라왔다는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조금 뒤에는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페달링을 하던 두 번째 그룹 참가자들이 봇재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선두 그룹보다는 뒤쳐졌지만, 역시 한 번도 걸지 않고 페달을 밟아 정상까지 올라왔다는 기쁨이 넘쳐납니다. 힘들어 하던 아이들 기진맥진하던 아이들도 정상에 올라서면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후미로 도착하는 참가자들도 비록 선두에 비해 속도는 느려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업힐 구간을 올라온 기쁨은 선두 참가자에 뒤지지 않습니다. 진행팀 실무자들과 먼저 온 친구들이 후미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합니다. 

맨 끝에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하며 올라오는 참가자들이 있습니다. 체력의 한계와 속상한 마음이 뒤죽박죽된 채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아이들도 최선을 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체력은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핸들을 끌고 걸어서라도 완주를 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봇재 업힐...무용담과 전설의 주인공이 될 것

이런 힘든 고갯길을 넘고나면 아이들에겐 오랫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과 무용담이 생깁니다. 실제로 순천 숙소에 도착한 아이들은 낮에 넘었던 봇재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됩니다. 스스로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런 힘든 경험을 함께 한 아이들은 앞 다투어 각자 쏟아내는 무용담만큼 친구들과의 우정도 길어지게 됩니다. 고생을 함께 한 경험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더 가까운 친구로 만들어주게 되지요. 


힘들게 봇재 정상에 오른 아이들은 맨 후미 친구들이 올 때까지 물도 마시고 다리 쉼도 한 후에 순천시를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힘든 오르막을 올라왔지만 내려 가는 길도 시원하게 달릴 수는 없습니다. 단체 라이딩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15~6km 속도를 유지하면서 안전한 다운힐을 해야하지요. 


보성군 득량면과 벌교읍을 거쳐 순천만 습지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갈대밭과 낙조로 유명한 순천만 습지 공원이지만, 아이들에겐 그냥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지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순천만 갈대밭을 보러 가겠다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물과 간식을 받은 아이들은 순천만 습지 공원 나무 데크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하루 종일 라이딩에 지친 몸을 쉬고 싶어하더군요. 휴식 시간에도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도 있지만 데크에 벌렁 드러누워 쪽잠을 청하는 아이들이 여럿입니다. 아직 숙박지까지는 20km나 남았기 때문이겠죠. 



국내 최고 순천만 생태공원? 우리에겐 그냥 휴식지일뿐


마지막 20km 구간엔 순천시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침 퇴근 시간까지 겹쳤습니다. 교통경찰과 협의하여 일부 구간은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여 우회하면서 퇴근 시간과 겹친 복잡한 순천 시내 도심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였습니다. 


순천시 청소년수련관은 도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시가지를 벗아나 한적한 시골마을을 지나서도 한참을 산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청소년수련관 약 1.2km 전방부터는 본격적인 오르막 구간이 시작됩니다. 


아침부터 100km 가까운 라이딩에 지친 아이들은 '봇재'를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들어 합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1.2km 구간에만 오르막이 연속으로 두 개가 이어집니다. 청소년 수련관이 해발 200여미터나 되는 산속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여러 아이들이 묻더군요. "선생님 청소년수련관은 왜 전부 산 속에 있어요"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청소년자전거 국토순례단이 묵었던 많은 청소년 수련시설이 산속에 있거나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것은 예산 때문이었을겁니다. 땅값이 싼 한 적한 곳이라야 청소년기 아이들이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장소를 정한 탓이겠지요. 


봇재를 끄떡없이 넘었던 아이들 중에도 수련관으로 올라오는 두 번째 오르막이 너무 힘들어 끌바로 올라올 수 밖에 없어다며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닷새 간의 라이딩 중 가장 힘든 날로 기억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