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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400년전, 그들이 한류 원조 !

by 이윤기 2009.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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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선통신사길 문화사업회가 엮은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3>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전자여권 도입에 대한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IC칩이 내장된 전자여권이 도입되었습니다.

전자여권에는 여권 유형, 발행국, 성명, 여권번호, 국적, 생년월일, 발행일, 만료일, 성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와 같은 신원정보와 얼굴정보와 지문정보 등 바이오인식정보를 전자적으로 수록된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아직 사진이 발명되기 전인 400여 년 전에는 여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3권에는 400년 전에 만들어진 검문소 통행증(여행증명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진없던 옛날엔 여권 어떻게 만들었나?

조선통신사들이 여권을 가지고 일본 여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통신사들이 가는 길에 있는 일본내의 검문소를 살펴보는 대목에서 당시 일본에서 내국인 여행객을 엄격히 통제하던 여행제도에 관한이야기가 소개되어있습니다.

“특히, 여성에 대한 검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했다고 한다. 세키쇼(검문소)를 통과하는 반드시 ‘세키쇼 통행증’을 가져와야 통과할 수 있었으며, 그 증서에는 여성의 신원부터 여행의 목적, 행선지, 머리 모양, 얼굴과 손발의 특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성에 대한 검색은 ‘히토미온나’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담당했는데, 심지어 여성의 음부를 검색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400년 전에도 오늘날 여권과 같은 문서를 만들어서 여행객들을 철저하게 검문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에 대한 검문이 철저하였던 것은 에도에 인질로 거주하고 있던 영주의 부인이 허락없이 영지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더욱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국가기밀 누출이나 막부에 대한 모반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는군요.

400년 전에도 국가는 통행세를 걷고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여권과 같은 신분증명서를 소지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3>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진 조선통신사의 일본 행로를 따라가는 답사기입니다. 한 번 사행은 대체로 11,470리 정도의 먼 길을 육로와 해로, 강로, 다시 육로를 거쳐서 다녀오는 먼 길 이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조선에서 출발한 300~400여명에 이르는 통신사 일행뿐만 아니라 쓰시마 번에서 차출된 호위무사와 안내인, 일꾼을 포함하면 2000여명에 이르는 행렬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당시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여정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조선통신사 여정을 쫓아가는 3번째 답사기인데,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1, 2권이 먼저 간행되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3권은 3년 계획으로 진행된 세 번째 조선통신사 옛길 답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제 3권에는 여정은 나고야에서 시작하여, 당시 막부가 있던 에도(도쿄)를 지나서 닛코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책은 조선통신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며, 아울러 조선통신사가 지나는 곳마다 경험하였던 그곳 일본인들의 옛 모습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악명 높은 아라이 세키쇼(검문소), 하코네 세키쇼를 비롯한 악명높은 일본내 검문소를 그냥 통과한 사람은 에도 막부와 조선통신사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다이묘나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도 가마의 문을 열고 모자를 벗은 채 지나가야 할 만큼 엄중한 세키쇼를 검문없이 지나갔다고 하는 것은 당시 조선통신사들이 ‘국빈’의 예우를 받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인간 둑을 쌓아 건너는 '오이강'

나고야에서 에도로 가는 길에는 ‘오이강’이라고 하는 유속이 빠른 강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균수심 70cm, 폭 2km의 얕은 하천이지만 평균 강수량이 3,000mm에 이르기 때문에 물 흐름이 빨라 건너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당시에는 수위가 3척 5촌(약 104cm)이면 말로 건너는 것이 금지되고, 4천 5촌(135cm)을 넘으면 도강 자체가 금지되었으며, 도강 인원도 350명으로 제한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통신사도 오이강 도강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불어난 물 때문에 1711년에는 나가에에서 하루, 1748년에는 카케가와에서 이틀을 더 묵어야 했고, 1636년에는 강을 건너던 쓰시마 번주의 짐을 실은 말 5마리가 떠내려가서 2마리가 죽기까지 했다”

이 책에는 1748년 조선통신사에 참여했던 이성린이 그린 ‘오이강을 건너며’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과 조명채가 쓴 <봉사일본시문견록>에 도강 모습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림과 글에는 사신행차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수백 명의 인부가 몰려나와서 강물의 흐름을 늦추기 위하여 손을 맞잡고 인간둑을 쌓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인부들은 사행에 참가한 사람들의 직책에 따라서 50여명이 1사람을 받침대에 태우고 강을 건너기도 하고, 한 사람씩 목말을 태워 강을 건너기도 합니다. 수 백명의 인부가 일제히 들것에 사람들을 떠 매고 ‘물노래’를 부르며 강을 건너는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 겨울에도 ‘가와고시’라고 불리는 이 인부들이 없으면 강을 건널 수 없었기 때문에 철망처럼 얽은 대나무 바자 울타리에 이들을 가두어두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 강에 배를 띄우거나 다리를 놓지 않는 것은 에도 바위를 위한 전략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권력자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강제노역의 고통을 당한 셈입니다. ‘가와고시’라는 인부들이 강을 건너 주는 오이강 도강은 메이지 시대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400년 전, 일본 사회를 뒤흔든 한류 원조

또한 조선통신사 길을 따라가는 여정에는 수많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로 참여하였던, 조선 관리들이 빼어난 경관을 보고 지은 시와 수려한 자연을 담은 그림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통신사 일행은 오늘날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특히, 이 책에는 후지산이 바라다 보이는 에도의 관문인 하코네 지역을 지나면서 남긴 여러 편의 시문과 글씨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코네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박남간이 쓴 ‘금탕산조운선사십경’이라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쌍유봉은 웅대한 호숫가를 눌렀고
남병산 아래는 속진을 피할 만하네
온천궁은 옛날 자취인데 장차 달을 맞을 만하고
비설암은 높아서 봄을 기다릴 만하다네
멀리 사봉을 가리키되 뜻을 두기 어렵고
가까이에서 대통으로 구기질을 하니
족히 목믕 용납할 만하네
금탕산의 형승은 모두 감상할 만하여
독목교 가에서 바라보니 눈이 새로워지네

이 외에도 신유한, 조엄, 강홍중, 임광 등이 남긴 여러편의 시문이 하코네의 절경을 노래하는 글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통신사 여정을 따라가는 길에는 조선에서 전해 준 여러 가지 기념물들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특히, 린노지 삼불당에는 효종이 쓴 친필이 귀하게 남아있고, 인조 때 만들어 보내 준 범종도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전해준 여러 가지 기념품들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 교류는 국가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도 참가하는 대규모 사회문화 교류 행사로 에도 시대 270여년 동안 한일 양국 평화의 초석이 되었다는 하는 것이 필자들의 평가입니다.

에도는 물론이고 일본 전국의 민중에 이르기까지 큰 환영을 받았던 조선통신사 열풍은 그 후 각 지역의 마쓰리(축제) 문화 속으로 스며들어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책을 쓴 ‘조선통신사 탐방단’은 불행했던 역사적 고난 시대를 뛰어 넘어 한일 양국간에 친선과 우호의 시기를 찾아내기 위하여 통신사 교류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3>은 4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지는 통신사 파견을 통해 이루어진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의 흔적을 차분하게 쫓아가고 있습니다.

부록에는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가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이들을 위한 교통편, 연락처 간략한 소개와 입장료, 각각의 시설 개관시간과 같은 여행정보들도 담겨있습니다. <조선통신사>라고 하는 역사 속 길을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일본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좋은 기회를 열어주는 특별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