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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우리말로 하면?

by 이윤기 2009.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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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315아트센타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이 있었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2009 마산 공연은  뮤지컬 배우 이경미, 전수경, 최정원이 출연하였습니다. 저는 뮤지컬을 잘 모르는데, 사람들 말로 세 사람다 뛰어난, 그리고 인기있는 배우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신문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고, 기회가 있으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마산에서 공연이 있어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시인, 사회운동가, 시나리오 작가인 이브 엔슬러의 히트 연극을 국내 상황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브 엔슬러가  200명이 넘는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써내려 간 원작이야기를 모놀로그 연극으로 작품화하였다고 하더군요. 


세계 24개국에 번역 출판된 원작은 연극을 보고 난 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원작이야기는 국내에도 2001년에 책으로 번역되어있었습니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버자이너 Vagina'란 여성의 성기로 '질' 또는 '보지'를 뜻합니다. 연극을 통해 대부분 사람들이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거기' 내지는 '아래'로 지칭하는 여성 생식기가 드디어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원작자는 이 작품에서 남근 중심 문화 속에서 금지되고 모욕당해왔던 수치심 가득한 여성의 성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연극은 남편에게 존중 받지 못하는 여성 생식기, 강제로 성폭행당한 여성의 절규,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여성의 자위행위, 여성의 성을 찾아내는 워크샵, 그리고 여성의 출산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7살 난 어린 아이부터 70세의 할머니까지의 시시각각 다른 얼굴과 다른 목소리, 다른 영혼이 3인의 배우를 통해 무대에 재현되어 짜릿한 감동으로 전해옵니다. 배우란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더군요.

여성의 성기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굉장히 솔직하지만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아니 많은 여성관객들은 유쾌, 상쾌, 통쾌하게 듣고 즐기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관람도 흥미있고 즐거웠지만, 객석에 함께 있었던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씩씩한 독백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극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버자이너 모놀로그 도입부에 이 극을 이끌어가는 전수경이 관객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여러분 극적되시지요? 언제쯤 그 단어가 나올까? 은근히 기대하시는 분도 있으실거구요?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오신분들은 많이 당황하실 수도 있을거예요"

뭐~ 이런 이야기로 관객들과 마음트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배우들과 스텦들 사이에서는 올 해부터 이 연극 제목을 '우리말'로 했으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러면서, 극장 현수막에 커다랗게 한글 제목이 붙었을 때, 남자 친구에게 이 연극을 보러가자고 말 할 때, 창구에서 티켓을 구입할 때, 우리말 제목을 사용하면 참 난감해질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객석을 향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이 연극 제목을 우리말로 말 할 수 있는 분 있으세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분 있어세요."

예, 대본대로면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모두 아무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수경씨가,

"네, 그렇습니다. 알아도 모르지요. 누구도 쉽게 말하기 어렵지요"

뭐 이렇게 말하면서 다음 장면으로 너머 가야 하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제가 봤던 공연에서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객석 한 쪽에서 "예, 저요"하고 소리치는 씩씩한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배우도 객석에서 일어난 의외의 반응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고, 관객들도 모두 흠칫하였습니다. 함께 객석에 있는 저는 마치 제가 대답해야 하는 것 처럼 난감하더군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씩씩함에 반하다.

잠시 침묵과 긴장이 흐른 후, 전수경씨가 그녀에게 "네 그럼 큰 소리로 우리말 제목을 말씀해 주세요"하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역시 잠깐의 침묵과 긴장이 흐른 후에........

"보지의 독백"

객석 한 켠으로부터 아까 그 여성분의 큰 외침이 공연장에 울려퍼집니다. 노련한 배우 전수경은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너머 가기 위하여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연극의 한국말 제목은 '보지의 독백'입니다. 어디서 온 누구시지요?"

"저는 창원에서 온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고등학교 2학년 OOO입니다"

아까 그 여성이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더군요. 그녀가 자기를 밝히자 무대 위에 있는 전수경, 최정원, 이경미 세 명의 배우와 객석에 있던 관람객들이 모두 큰 박수로 그녀를 격려하였습니다.

전수경은 "저런 멋진 후배가 있어 뮤지컬 하는 선배 배우로서 힘이 납니다."하고 씩씩한 그녀를 격려해주더군요. 오랜 만에 멋진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자기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용기있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젊은 친구를 만난 기쁨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서, 아들 녀석들이 조금 더 자라면 꼭 이 연극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제목 때문이었는지, 객석에는 90%이상이 여성 관객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성 성기가 쏟아내는 거침없는 외침을 들어야 할 사람은 여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마산 공연의 또 다른 매력은, 내노라하는 뮤직컬 배우 세 사람이 출연한 이 연극 입장료가 무지하게 저렴하였다는 것 입니다. 315아트센터 기획공연인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R석 20,000원, S석 10,000원으로 다른 지역 공연 관람료의 1/2, 혹은 1/3 가격으로 멋진 연극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