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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어린이도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

by 이윤기 2009.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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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 동화집 <우리집 가출쟁이>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제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 한 곳은 바로 일본의 '오키나와'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오키나와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된 것도 바로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때문입니다.
17년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한 후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많은 작품이 오키나와, 그리고 아와지섬을 배경으로 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좋아요를 비롯하여 <태양의 아이>, <내가 만난 아이들>, <하늘의 눈동자> 그리고 <하이나티 겐지로의 시골이야기>(전 5권) 시리즈 비롯한 40여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미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쓴 여러 작품을 읽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서평'을 써서 사람들에게 소개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하이타니 겐지로 동화집 <우리집 가출쟁이>는 최근에 나온 신간입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책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양철북에서 나왔구요, 번역은 햇살과 나무꾼이 맡았습니다. 햇살과 나무꾼은 양철북 출판사와 함께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작품 대부분을 번역한 어린이 책 전문 기획실이라고 합니다.

제가 읽어보니 <우리집 가출쟁이>는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 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시기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 책 이기도 하고, 또 그 시기 아이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는 어른에 비하여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어린이도 어른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저 마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어린이들도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집 가출쟁이>에는 '우리집 가출쟁이'를 비롯한 모두 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모두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실제로 경험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어진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야기 주인공들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실제로 가르쳤던 어린이거나 '태양의 아이' 유치원 아이들 이라고 하네요.

첫 번째 이야기인 '공중 제비로 날이 저물고'에도 마음 따뜻한 선생님 이야기가 한 장면 나옵니다. 유치원 입학식이 열리는 날, 초임 교사인 유코 선생님은 무심코 아이들에게 입학 선물은 모두 뒤쪽에 서 있는 엄마에게 맡기라고 말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 유키만 선물을 안고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왜 그러니, 유키?"
아니! 유코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유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니?"
"나...... 나......"
"응 그래, 말해 봐요."
"나, 엄마 없어"
유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
유코 선생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느 교실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입니다. 어느 교사나 할 수 있는 실수이지요.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별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실은 함께 온 어른에게 맡기라고 했어야 하는거지요. 바로 이런 장면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것 때문에 저는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작품을 좋아합니다.

'도코의 요트'에도 어린이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대목이 있습니다. 주인공 도코네 집은 시장안에 있는 꽃 가게입니다. 사람들은 도코에게 늘 집에 항상 꽃이 있으니까 좋겠다고 말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도코의 속 마음은 다릅니다.

"도코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은 생선 가게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요. 도코가 좋아하는 참치가 있기 때문이에요. 과일 가게가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도코가 좋아하는 멜론이 있거든요. 또 고구마 조림이 있는 반찬 가게가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져보았을 것 입니다. 이를 닦을 때마다 각각 다른 향기를 상상하고, 친구들과 수업을 하다가도 혼자서 머릿 속에 있는 수 많은 원숭이와 뛰어노는 일, 아이들만 가능한 일이지요. 이런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말썽꾸러기 혹은 엉뚱한 아이 취급을 하게 됩니다.

친구 레이코가 죽은 카나리아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보고 온 도코는 이웃집 닭 가게에서 수 십개의 닭머리를 들고 나와 동네 공터에서 장례를 치르 줍니다. 닭머리를 한 구덩이에 넣지 않고 수 십개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흰카네이션을 심어 둡니다. 모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도코는 유괴를 당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무사히 풀려나옵니다. 저는 '태양의 집 유치원'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도코의 요트와 같은 작품으로 승화시킨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을 떠 올려봅니다. 아마 모두 한 아이의 이야기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교사들에게 전해들은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를 묶어 '도코'라는 귀여운 주인공을 상상해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표제인 '우리집 가출쟁이'에서도 재미있는 한 대목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마사토는 유치원 시절부터 속상한 일이 있으면 집을 나가 혼자서 여러 생각을 하고 돌아옵니다. 이른바 가출입니다. 마사토 엄마는 아이가 집을 나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두는 참 대단한 엄마입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던 날, 반대말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반대말이 뭐냐고 묻냐 한 참을 생각하던 마사토는 손을 들고 발표를 합니다.

"마사토사마"


1학년인 마사코는 반대말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 것 입니다. 어느 교실에서나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나지요. 그리고, 마사토는 지겨운 수업을 견딜 수 없어 오줌을 누러 화장실로 가 버립니다. 이 일로 마사토와 엄마는 크게 다투게 되지요.

또 다시 집을 나온 마사토는 친구 덜렁이를 만나서 선생님 놀이를 합니다. 학생이 모자라 냉이, 빈깡통, 달팽이껍데기, 마른 지렁이, 볼펜 뚜껑을 모두 학생으로 삼습니다. 그리고는 반대말 수업을 합니다.

마사토 선생님이 가슴을 쭉 펴고 말했습니다.
"반대말 공부를 합니다."
마사토 선생님이 지렁이를 가리켰습니다.
"지렁이."
지렁이가 대답했습니다.
"마사토사마"
마사토사마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좋아요."
이번에는 볼펜 뚜껑을 가리켰습니다. 볼펜 뚜껑도
"마사토사마"
하고 말했습니다.
"좋아 좋아"
마사토 선생님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냉이도 빈 깡통도 달팽이도 모두 마사토사마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사토 선생님이 또 다른 반대말을 물어보자 지렁이는 "이렁지", 뚜겅은 "껑뚜", 냉이는 "이냉"하고 대답합니다. 반대말을 처음 공부하는 아이들 중에는 이런 기발한(?) 대답을 하는 아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있는 다른 이야기들도 모두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어른들의 마음(바다에 있는 건 내일 뿐)과 귀신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들의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력(겐의 귀신)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쓴 책은 대부분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 어린이의 세계에서 상냥함의 원류를 찾고 싶은 어른들, 크고 작은 상처를 딛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린이 날이 있는 5월에 나온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새 책 <우리집 가출쟁이>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멋진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쓴 이 책을 소개하는 글 입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수 있는 글 입니다.



어린이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자신의 영혼을 힘껏 밖으로 향하려 합니다
어린이들의 마음은 부드럽고 섬세합니다.
때로는 상처 받고 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꺽이지 않고, 동물이 촉수를 움직이듯
밖으로 밖으로 크게 뻗어 나가려고 합니다.
어린이가 지닌 활기찬 생명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린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생명의 사랑스러움을 느낌니다.
어린이는 많은 생명을 끌어안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소망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린이의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 써 보았습니다.
- 하이타니 겐지로 -




우리 집 가출쟁이 - 10점
하이타니 겐지로 글, 김고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