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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내가 간직한 빛 바랜 신문 속 노무현 대통령

by 이윤기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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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당선 되던 날, 대통령 취임하던 날, 그리고 서거 한 날

2002년 12월 20일(금) 신문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기념하고 싶어 간직한 신문

2002년 12월 19일, 월드컵 4강 신화가 이루어진 그 해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도 신화가 씌어졌습니다. 광주에서 시작된 국민경선에서 시작된 신화는 서울에서 마무리되었고, 온갖 우여곡절을 끝에 마침내 노현현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 된 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수 많은 국민들이 기쁨에 잠을 설쳤겠지요 ! 저는 이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는 머릿 글자가 선명한 이 날 신문을 따로 보관하였습니다.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오래된 신문도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지만, 내용을 읽는 것 이상으로 이 날의 기쁨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낡고 빛 바랜 종이 신문을 가끔씩 꺼내 보면서 이 기쁜 날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진으로 보시는 낡은 신문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02년 12월 20일(금) 신문입니다.


▲ 2003년 2월 25일(화) 신문

두 번째, 신문은 2003년 2월 25일(화) 신문입니다. 그가 제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 신문입니다. 어렵사리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무사히 대통령에 취임할 수 있을지하는 걱정을 하면서 그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이 두 신문을 간간히 꺼내 보았습니다. 언제 보았냐구요? 처음 신문을 꺼내 본 것은 탄핵을 받아 대통령 직무가 중지 된 때입니다. 그때도 참 비통한 마음으로 신문을 꺼내 보았지요. 그 때는 지금 처럼 신문의 빛이 바래지는 않았습니다. 탄핵 정국을 돌파하기 위하여 나름 촛불집회를 조직하면서 싸웠고, 그는 대통령 직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그 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모아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간간히 신문을 꺼내 보았습니다. 대체로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 였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 한미 FTA를 소신으로 밀어 붙일 때, 국가보안법 폐지에 실패하였을 때 조금씩 빛 바래 가는 신문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조금씩 빛이 바래갔습니다.

5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던 국민들 중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를 외면하였고, 이명박이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저는 어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 2009년 5월 24일(일) 신문

비통한 죽음을 알리는 신문과 함께 보게 되는 안타까움
'고통' 큰 줄 알았지만, 다시 일어서리라 믿었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던 날, 그리고 취임하던 날 신문과 함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서거 소식이 담긴 신문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빛바랜 이 낡은 신문을 다시 꺼내보며,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비통해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안타깝게 지켜보며, '고통' 큰 줄은 알았지만, 분명 다시 일어서리라 믿었습니다. 첫 번째, 신문 속 사진에서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날, 두 번째 신문 속 사진에 그는 듬직하고 자신감에 찬 표정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 된 날부터 퇴임하는 날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스스로 목숨을 거둔 날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신문 속 그의 뒷 모습을 오래도록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 사십여년을 사는 동안 꼭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그 기적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던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저에게 늘 희망의 밑천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