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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그림책 읽기로 장애 극복한 ‘쿠슐라’

by 이윤기 2009.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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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로시 버틀러가 쓴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의 주인공 쿠슐라 요먼은 염색체 이상으로 육체와 정신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입니다.

보지도, 만지지도, 입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모든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아이로 태어났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그림책 읽어주기 라는 새로운 치료 방법으로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이지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1997년 스물다섯 살이 된 쿠슐라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육체적, 지적으로 능력이 완전한 ‘정상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쿠슐라의 지적 능력이 완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삶에 대한 충족감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쿠슐라는 잘 읽고 잘 쓰며, 컴퓨터로 능숙하게 글을 쓰기도 한다. 편지를 잘 쓰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지금은 목공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손을 자유로이 쓰기가 어려워서 섬세한 손동작이 필요한 일은 하지 못한다.”(본문 중에서)

스물다섯 살이 된 그녀는 다른 장애인 네 명과 함께 생활하고, 대부분의 집안일을 자신들의 힘으로 꾸려가며, 정원을 가꾸고 지역사회를 돕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도서관, 극장, 교회, 바닷가와 수영장에 가는 걸 즐기며,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쿠슐라 스스로, 그리고 그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이 그녀가 가진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입니다. 마치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이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장애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쿠슐라가 태어났을 때 두 손에 손가락이 하나씩 더 달려있었고, 뇌혈종으로 인하여 심한 활달에 걸렸으며 호흡이 고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주일 후에 퇴원하였으나 끊임없이 보채고 숨쉬기를 힘들어하였으며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시각과 청각에 이상이 있었고, 이따금 발작성 경련을 일으켰으며 몸무게가 제대로 늘지 않고 귀와 목이 반복적으로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병원 진단 결과 심장에 구멍이 나서 천식이 생겼고 습진성 발진도 생겼으며 콧구멍이 좁아 호흡장애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심각한 장애 있었지만 그림책을 좋아했다.

3개월이 되었을 때 팔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였으며, 머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물건에 초점도 맞추지 못하였습니다. 정상아보다 발육이 훨씬 뒤떨어졌고, 등과 다리는 흐늘거렸으며 자주 비정상적인 경련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쿠슐라의 부모는 누가 봐도 심각한 장애를 가진 어린 쿠슐라에게 4개월째부터 책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쿠슐라가 얼굴 가까이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시기다. 밤낮으로 깨어 있는 아기와 기나긴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던 끝에 책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사실 절망에 빠져 아무것이나 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쿠슐라는 책을 보려고 했고 귀 기울여 들었다.”(본문 중에서)

이후 쿠슐라는 요도감염과 신장 수신증, 뇌파이상으로 10주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됩니다.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들은 쿠슐라가 그림과 기호에 흥미를 나타내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입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뒤부터 깨어있는 긴 시간 동안 그림책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쿠슐라의 어머니는 밤낮 없이 책을 읽어주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9개월 된 아기에게 규칙적으로 책을 보여주는 일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쿠슐라가 다른 정상아들과 같은 활동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 주는 동안 쿠슐라는 어른 무릎에 앉아 등을 기댄 채 읽어 주는 책에서 가장 알맞은 거리에 눈을 두었다. 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었고, 한 장 한 장씩 책을 쿠슐라의 눈에 가까이 보여 주었다.”(본문 중에서)

<쿠슐라의 그림책 이야기>는 이후 쿠슐라가 3년 9개월이 될 때까지 매시기 신체적, 정신적 발달과정과 그 시기에 읽은 그림책의 종류, 그리고 각각의 그림책에 쿠슐라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어떤 책을 더 좋아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정상적 발달을 보이는 아이와는 어떤 점이 달랐는지를 비교하여 깜짝 놀랄 만큼 자세히 관찰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아이가 자라는 것, 날마다 작은 기적을 경험하는 것

 

쿠슐라의 외할머니이기도 지은이 도로시 버틀러가 기록한 쿠슐라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어보면, 독자들은 아이가 자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 조금씩 자라면서 몸을 뒤집는 것, 배밀이를 하는 것, 기는 것, 서는 것, 걷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사건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누구나 다 겪는 이런 과정을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늦게 경험하는 쿠슐라 가족들에게는 훨씬 더 경이로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회복하면서 장애 있는 아이의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였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14개월이면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걷고, 24개월이면 온몸을 조정하여 잘 걷고 달리기도하며 잘 넘어지지 않는데, 쿠슐라는 24개월쯤 되어 뒤뚱거리며 걷게 되었고, 30개월쯤 되어 어색하지만 무난하게 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걷는 모습은 특이했다. 몸은 약간 뒤로 기우뚱하고, 팔은 구부러진 채 뒤로 흔들거렸고, 머리는 균형을 잡기 위해 앞으로 내밀었다. 넘어질 때 팔을 쓰지 못하고 자세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났다.”(본문 중에서)

어쨌든 다행스러운 것은 쿠슐라가 보통 아이들보다 늦기는 하였지만, 보통 아이들과 비슷한 발달과정을 꾸준히 쫓아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쿠슐라는 똥오줌을 가리는 일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늦었습니다.

근육이 약하고 병에 자주 걸리며 방광염에 걸리기 쉬웠으며 신장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쿠슈라에게 배변훈련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33개월쯤에 쿠슐라가 똥오줌을 누는 간격이 길어지자 이제 훈련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사실 쿠슐라는 똥오줌을 조절하는 걸 일주일 만에 다 배웠다.”(본문 중에서)

쿠슐라는 보면, 아이들 성장과정에 있어서 보통이나 평균이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통 아이들 보다 늦다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일이지요. 쿠슐라는 조금 늦게 배웠지만, 겨우 일주일 만에 똥오줌을 가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쿠슐라 사례는 아이들에게는 저 마다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때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첫돌이 지나자마자 아이들에게 배변훈련을 시키는 부모들이 있고, 친구나 이웃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발달이 뒤처지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부모들에게 쿠슐라 사례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은 무조건 빠를수록 좋다는 오류에 빠져있습니다. 따라서 일찍 피는 꽃만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늦게 피는 꽃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쿠슐라는 보통 아이들에 비하여 모든 것이 늦었지만, 결국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쿠슐라는 늦게 피는 꽃이었지만, 일찍 피는 꽃들과는 다른 아름다운을 지닌 꽃으로 피어난 것 입니다.

<쿠슐라의 그림책 이야기>는 그림책이 아이의 언어 발달과 지능 발달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를 주로 설명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림책이 아이의 삶을 넓혀주고 또한 풍요롭게 해주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방법은 평범해 보입니다. 보지도, 만지지도, 입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모든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단순히 책을 읽어주었다는 평범한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쿠슐라를 키운 간단하고 평범한 방법을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쿠슐라에게 일어난 일은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사실, <쿠슐아의 그림책 이야기>는 장애아를 위한 이론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모든 아이들에게 소중한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다는 차원을 넘어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 타고난 재능과 장점에 주목하고 장점을 발달시키는데 주목할 것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한국의 많은 엄마들이 ‘영어 조기 교육’ 만큼이나 공을 들이는 조기교육이 바로 ‘독서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책을 읽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쿠슐라에게는 지적장애를 극복하고 평범한 삶으로 나아가는데, 그림책이 좋은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쿠슐아에게 육체적인 장애가 없었다면, 그리고 쿠슐라가 신체활동에 더 흥미를 보였다면, 쿠슐라 부모는 아이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쿠슐라는 정신없이 뛰어노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실제로 쿠슐라 부모는 아이가 2년 6월 때부터 꾸준히 수영을 가르쳤고, 쿠슐라가 수영을 잘 배우고 또 즐거워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는 것 입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그녀는 수영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부모는 그림책이던, 수영이던 중요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휩쓴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극복하기 위하여 수영을 시작하였는데, 물에 얼굴을 담그지 못하여 ‘배영’부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자유형 - 배영 - 평형 - 접영과 같은 일반적인 순서만 고집하였다면, 세계적인 수영 영웅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무조건 그림책을 읽어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타고 난 특성과 발달에 맞는,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활동을 선택하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다만, 쿠슐라에게는 그것이 그림책이었던 것뿐이지요.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 10점
도로시 버틀러 지음, 김중철 옮김/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