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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교육

독서인증제, 교사부터 시키면 어떨까요?

by 이윤기 200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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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한 경남교육감 블로거 간담회에 다녀왔습니다. 권정호 교육감은 2008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교육감 선거 때, 같은 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과는 교육철학이 다른 분 일 것 이라는 기대감으로 기꺼이 한 표를 보탰던 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블로그 간담회가 끝 난지 일주일이 훌쩍 지나도록 기사작성을 미루어왔습니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합리성, 일관성을 가진 보수주의자였지만, 권교육감을 만난 후에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저의 기대가 상당 부분 무너졌기 때문에 글을 어떻게 쓰야 할 지 쉽게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책은 강제로라도 읽혀야 한다"
"교육은 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제가 아니면 교육은 없다"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종아리라도 때려야 한다"

경남교육 수장인 권정호 교육감의 이런 교육 철학을 들으며 나름 대안교육에 발 한쪽을 담그고 있는 저는 마음과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교육'에 대한 교육감과 서로 다른 생각을 그대로 작성하여 포스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블로그들이 교육감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 바로 ‘독서인증제’였습니다. 교육감께서는 ‘독서인증제’가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통장’ 같은 것을 만들어서 책읽기를 권장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것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책 읽기를 평가하는 순간 부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센티브가 생기면 당연히 책을 읽지 않아도 ‘독서통장’에 대출 기록을 늘이는 시도가 생길 것 입니다. 아울러, 독서 결과를 평가하는 것 역시 읽은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것 입니다.

저는 저희 단체 회원들과 매월 같은 책을 일고 독서토론을 하면서 똑같은 책을 읽고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놀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은 결과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옳은일 혹은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요?

자발적이지 않은 아이들의 책 읽기를 학교가 나서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평가하는 독서인증제가 생기면 책 읽기를 취미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책 읽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 공부 중 하나가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권정호 교육감께서 오랜 교사 경험을 통해 가지고 계신 독서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은 ‘좋은 책은 강제로라도 읽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책은 강제라도 다 읽혀야 합니다. 오랫동안 국어선생을 해봐서 아는데 초등학생들 앉혀놓아도 잘 읽는 애들 많지 않습니다. 10명 중 자율적 독서는 1-2명이고 나머지 8-9명은 교사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억지로라도 읽혀야 다 읽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스스로 읽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도 강제로 읽히면 그 강제성이 결국 책을 싫어하는 아이로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도 강제로 읽으면 독이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1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을까요? 독서인증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책을 많이 읽으실까요? 아니면 늘 일에 바빠서 1달에 1권도 못 읽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그 좋은 책을 왜 어른에게는 강제로 못 읽힐까요? 교육감님 생각이 옳다면, 좋은 책은 교사들부터 강제로 읽혀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들이 필독서를 정해 좋은 책 읽는 모습을 늘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교육감께 ‘독서인증’을 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점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교사들이 앞 다투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교육감께 평가 받기 위한 독서이기는 하지만) 분명 아이들은 교사들 본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서인증제를 교사들만 해서 되겠습니까? 학부모들에게도 한 번 시켜보시면 어떨까요? 그런다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책을 읽겠냐구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책 많이 읽는 교사에게 인사고과에 인센티브를 주고 부모가 책을 많이 읽으면 그 자녀에게 인센티브를 주면 쉽게 해결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책 읽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가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사와 부모들에게 먼저 ‘독서인증제’를 도입해서 필독서를 정해주고 ‘강제로라도’ 읽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교육감께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것은 강제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저와 가장 다릅니다. “몸에 좋기 때문에 우유는 강제 급식을 해도 된다” 그동안 많은 교육 관계자들이 이렇게 생각해왔고, 아직도 많은 일선학교에서 이런 관행이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블로그 간담회에서 권정호 교육감께서는 “우유 강제 급식은 옳지 않다”는 소신을 밝혀주셔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른에게 강제 못 하는 책 읽기, 왜 아이들에겐 된다고 생각할까?

그런데, '우유는 강제로 먹이면 안 되는데, 책은 강제로 읽혀도 된다'는 논리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몸에 좋은 음식도 강제로 먹일 수 없는 것처럼, 지혜를 기르고 정신 건강에 밑거름이 되는 책도 강제로 읽힐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교육적인 행위도 강제로 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그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대부분 어른들은 책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많은 어른들이 책 읽기를 싫어합니다. 이런 어른들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만찬가지 입니다. 어떤 강제적인 교육활동으로도 결코 모든 아이들이 책읽기를 좋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만 보고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사회의 어른들이 책읽기를 좋아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아이들도 책읽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학교와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아이들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에 교사들이 자신이 감명 깊게 혹은 재미있게 읽은 책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주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교사가 틈 날 때마다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감명 깊은 구절을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는 선생님이 있다면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요? 독서교육은 부모와 교사에 의해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요?

TV와 컴퓨터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에게 책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미디어’ 중의 하나일 뿐 입니다. 자극적인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그냥 책만 읽으라고 해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 책 보다 재미 + 유익한 일 얼마나 많은데?

매년 1차례씩 일주일간 YMCA 회원들과 ‘TV 끄기 운동’을 하고 있는 저는 “집에 TV를 없애고 나니 아이들이 책을 읽기 시작 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거실을 도서관으로 만들자’는 캠페인을 하는 신문에도 그런 기사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아울러,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도 반대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지나친 어린이 독서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국민 전체의 독서량은 선진국에 비하여 현저히 낮지만, 모르긴 해도 어린이 독서량은 선진국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즘 책 많이 읽기 열풍이 엄마들 사이에 대단해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몇 천 권을 읽히겠다는 계획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어떤 학습지 회사에서는 이런 목록을 학부모들에게 제공하기도 한 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책 읽기가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책 읽기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 보다 아이들에게 직접 경험 세계를 넓혀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의 발달과 아이에게 맞는 때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엉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몇 살 때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한다, 몇 학 년까지 몇 권을 읽어야 한다는 획일적 기준으로는 올바른 독서지도가 불가능 하다는 것 입니다.

어떤 이는 책 한 권만 읽어도 인생이 바뀌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읽지 않아도 이타적이고 훌륭한 삶을 살아갑니다. 책읽기는 모든 아이에게 좋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각각의 아이가 가진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책 보다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하고 그것이 그 아이의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블로그가 다루는 주요한 주제 중 하나는 '책 읽기'입니다.
100권 이상 책을 읽고 50편 이상의 서평을 공개된 매체에 쓰는 것이 올 해 목표입니다. 늘 다른 사람에게 책 읽기를 권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어린이 독서지도에 대한 권정호 교육감의 생각에는 도저히 공감 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