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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제주 자전거 여행

[제주 자전거 일주6]한라산에서 '눈'이 부시도록 실컷 '눈'을 보다

by 이윤기 2008.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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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28일까지 나흘 동안 제주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29일 아침 일찍 한라산 등반에 나섰습니다.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따라 240km를 달린 무거운 몸을 새벽 5시에 깨워 아침 6시 '성판악'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시외버스는 하루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인 중산간도로를 따라 해발 800m에 있는 성팍악 휴게소까지 40분 만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며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각자 준비해 온 아이젠을 착용하고, 하루 종일 눈이 내릴 거라는 대피소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1회용 비닐 우의를 구입하였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한라산에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면서, "진달래 대피소에서 우리 직원이 백록담 등산을 통제하면 바로 하산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난생 처음 겨울 산행에 나선 대학생들 대부분이 아이젠 착용이 서툴러 20여 분을 허비한 후에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슬라이드로 보시는 사진이 바로 진달래 대피소를 거쳐서 백록담(한라산 동쪽 정상)까지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겨울 내내 녹지 않는 눈위에 하루 전날부터 내린 눈이 쌓여서 더 아름다운 동화 속 같은 숲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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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한라산 등반을 시작하자, 나흘 동안 자전거를 타며 지쳤던 아이들은 어느새 몸이 다 회복되었는지 가뿐하게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도저히 자전거를 못 타겠다고 세화 - 제주시 구간을 자동차로 이동했던 여학생도 한라산 등반은 꼭 해내겠다며 씩씩하게 산을 올랐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참가한 우리 부자만 남기고 금세 앞서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녀석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진달래 대피소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대학생, 예비 대학생 참가자들은 2시간 30분 만에 대피소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더군요. 컵라면과 준비해 온 김밥으로 요기를 한 후 10시쯤 백록담으로 향한다고 '무전기'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자는 아들과 함께 10시 30분에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들은 힘들어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더군요. 이미 7살 때 걸어서 한라산 백록담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마 자전거 일주에 이어진 산행이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 것이 훨씬 힘들었기 때문이지 싶었습니다.
 
아들은 대피소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면서 기다리기로 하고, 저는 서둘러 백록담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15명이 백록담까지 등반에 나섰는데, 결국 10명만 정상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많은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이어서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대피소에서 백록담까지는 일기가 좋지 않으면 안전을 위하여 자주 통제하는 구간이어서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걷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1800m를 지나면서 나오는 계단 길에는 심한 눈 보라가 몰아쳐서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백록담 등반에 나섰던 일행 중에서 맨 후미에 쳐져있던 5명은 계단 길 입구까지 같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하루 종일 눈이 내리는 날씨였지만 숲이 없는 백록담 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눈이 부셔'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답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장갑을 벗는 것이 무진장 귀찮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꺼내써야만 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평생 동안 보아 온 '눈'보다 더 많은 눈을 질리도록 구경하였다고 합니다.
 
하산 길은 훨씬 즐거웠습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은 대부분 땅만 보면서 정상을 향해 걸었지만 내려오는 길에는 눈 구경을 실컷할 수 있었습니다. 경사가 적당한 길을 만나면 우의를 엉덩이에 깔고 썰매를 타면서 내려오는 재미는 덤이었지요.
 
참가자 대부분은 1년에 눈이 한 번 올까 말까하는, 가끔 눈이 와도 하얗게 쌓이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정도로 따뜻한 '마산'에서 왔기 때문에 난생 처음 보는 '눈'을 보면서 참 즐거워하였습니다. 
 
날씨가 더 나빴다면 백록담까지 오를 수 없었을텐데, 참 운도 좋았습니다. 여러번 한라산에 가서도 일기 때문에 백록담까지 못가봤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저희는 단 한 번에 백록담까지 다녀올 수 있었으니까요.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하면서 다져진 팀웍 덕분에 참가자들은 서로 격려하며 손을 잡아 끌어주면 다녀왔습니다. 오후 3시쯤 성판악 휴게소에 다 도착했을 때, 추위에 지쳤지만 한결같이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한라산을 다녀온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재수를 해야할지 모르는 친구에게도, 취업 걱정을 하고 있는 4학년이 되는 친구들에게도, 군입대를 앞둔 남자 친구들에게도 한라산을 다녀온 '감격'이 인생을 살아가는 '밑천'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 이 글은 2008년1월 25~29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