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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산 길 걷기

아이는 교실대신 길에서 세상을 배웠습니다

by 이윤기 2009.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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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길 걷기⑥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따뜻했다
지리산 둘레 길 800리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숲속 오솔길을 따로 고개를 넘어
마을과 사람을 만나는 길
들녘을 따라 삶을 배우고
강 건너 물결에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자기를 만나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

남원 인월면에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에 있는 걸려있는 국내첫 장거리 도보여행길, 지리산길 안내 글 입니다. 한편의 시를 읽는 듯한 이 길을 직접 걸어보면 안내 글 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 만나게 됩니다.

2008년부터 길을 찾아 연결하고 있는 '지리산길'은 약 800리(300km)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 길 입니다. 2009년 현재까지 남원 주천에서, 함양 마천을 거쳐 산청 수철에 이르는 약 70km 구간이 개통되었습니다.

여름휴가 삼아 둘째 아이와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지리산길 걷기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남원 주천에서 산청 수철에 이르는 70km 구간을 모두 걸어 볼 계획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떠나는 길이라 운봉에서 벽송사까지 31.6km를 2박 3일 일정으로 나누어 여유롭게 걸었습니다.

마을길, 숲길, 오솔길, 옛길, 들판길, 강변길, 둑길, 고갯길, 논둑길, 밭길, 산길을 천천히 걷는 여행이 참 아름답고 즐거웠습니다. 마을마다 이야기가 있고, 아름다운 길과 나무와 숲과 산이 있어 행복한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 정겨웠던 것은 길 위에 만난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들과 지리산 둘레길 걷기,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따뜻했다



운봉에서 길을 나서 황산대첩비가 있는 비전마을에서 만난 부부는 아이스팩에 담아 온 시원한 참외를 뚝 잘라 절반을 저희 부자에게 나눠주고 그동안 걸었던 지리산길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어디서 먹고, 어디서 자고, 어디서 아름다운 숲과 나무를 만날 수 있는지 친절하게 들려주더군요.

흥부골 휴양림 골짜기에서 만난 피서객들은 단 둘이 여행하는 부자가 측은해보였는지, 아이를 불러 옥수수도 나눠주고 막 해온 쑥떡도 나눠주더군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이것저것 얻어먹은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아빠 지리산길 사람들은 인심도 좋네요.”하더군요.

월평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는 소나기를 피해 들어 간 길손을 위해 마루를 내주고 비를 피해 젖은 몸을 말릴 수 있게 반갑게 맞아 주었고, 오래된 여관 주인아주머니는 소나기를 만나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부자에게 ‘공짜’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등구재 넘는 길에 만난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쉼터에서는 아무 것도 사먹지 않아도 기꺼이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내주며 쉬어갈 수 있도록 길손을 맞아주었습니다. 음료수라도 한 병 사지 않으면 파라솔 의자에도 앉을 수 없는 도회지 인심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무나 잡고 길을 물어도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합니다.  무슨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친절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사람들을 대하는 기계적인 친절과는 분명히 다른 마음이 전해오는 따뜻한 말과 표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민박집 아저씨의 살뜰한 보살핌, 마을민박 밥집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푸짐한 밥상과 넉넉한 인심, 그리고 동동주 파는 할머니의  다정한 웃음과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마을사람들만 인심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느리게 걷는 길, 천천히 걷는 길을 선택한 길위의 사람들도 친절하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배낭에 있는 먹을거리를 서로 나누는 사람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났습니다. 먼저 와서 쉬던 사람들은 뒤사람이 힘겹게 걸어오면 스스럼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길을 나섭니다.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되니 함께 걷는 아이도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시키지 않아도 큰 소리로 먼저 인사를 하는 겁니다. 가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좁은 공간에 함께 서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며 어색하게 서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던 느낌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올 여름 아이는 교실 대신 길에서 세상을 배웠습니다.

※ 2009년 8월 7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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