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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인도 연수

현대자동차 인도공장과 첸나이

by 이윤기 2008.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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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해외연수⑤ -자본주의 앞에 흔들리는 카스트제도

첸나이 현대자동차는 공장에서는 베르나와 산토르(아토스)를 생산하고 소나타를 조립생산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소나타를 타는 사람은 최고급 자동차를 타는 사람에 속한다고 한다. 현지에서 본 소나타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동종보다 배기량도 크고 외장의 본네트의 장식도 최고급 승용차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그리고 대부분 소나타를 타는 사람들은 오너가 아니라 기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봐서도 인도에서 소나타의 지위(!)를 가늠할 수 있었는데, 현대자동차 인도 현지법인은 산토르를 주력차종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방문은 현장을 먼저 둘러보고 회사의 현황에 대하여 소개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자동차공장을 가 본적 없기 때문에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조립공정을 처음으로 구경하였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따라서 차체를 옮겨 다니며 각각의 부품이 조립되는 과정에 현지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동차공장을 처음 본 나는 컨베이어벨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자동화된 공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회사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더 많은 고용을 위하여 주정부는 현대자동차의 자동화 시스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 공장에는 약 2,000명 정도되는 현지인이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현장 주요공정과 관리직 대부분은 한국인이고 대략 100여명되는 인도인들이 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자동차 조립공정의 마무리 부분에서 우리는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인도에서 생산되는 '산토르'는 왼쪽 빽밀러가 없었다. 인도에서는 양쪽다 빽밀러가 없는 자동차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곳에서 생산되는 산토르는 왼쪽 빽밀러가 없었다. 이런 것도 문화적인 차이인가 보다.

우리나라에서는 빽밀러가 있어도 사각지대를 잘 볼 수 있도록 보조 빽밀러를 설치하는 살람이 있는데, 인도에서는 한 쪽 빽밀러가 없는 신차가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고, 거리에는 양쪽 빽밀러가 다 없는 차도 많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인 오토릭샤의 경우에는 더욱 심한데, 깜빡이도 빽미러도 없이 운전사가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내밀며 우회전, 좌회전 신호를 보내며 거리를 질주(폭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현장방문을 마치고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받았는데, 시원한 실내공기와 안락한 의자는 설사와 배탈로 고생하는 우리 일행들에게는 적당한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어제밤 현대자동차 임원들과의 저녁식사 시간에 <시민의 신문> 소속 일행 두 사람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 중에도 설사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하여,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도의 종교, 사회, 문화, 역사, 경제, 정치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현황을 브리핑 받게 되었다. 사실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는 첫 머리에 이러한 기본적인 내용에 관하여 공부를 하였어야 되었는데, 늦었지만 현대자동차가 인도에 진출하면서 얻은 소중한 정보들을 전해 듣게 되어 인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간디가 평생을 두고 자신의 조혼을 후회하면서 반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시골에서는 여전히 조혼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최근에도 결혼 지참금 때문에 자살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도 현지 노동자들은 정직하고 순종적이며 숙명론적인 사고를 한다고 하였다. 이들은 인도 현지에서의 노무관리의 어려움은 오히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책임의식이 없고 잘못된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동차 판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에도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인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현대보다 먼저 인도에 진출한 대우자동차는 이곳에서 국내와 만찬가지로 할부판매를 하였다가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신용판매가 자리 잡히지 않아 할부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반품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현대는 일시불로 자동차대금을 받고 판매하고 있다고 하였다.


인도 공장은 2,000여명의 인도인을 고용함으로써 고용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국내와 마찬가지로 자동차공장의 노동자들은 인도의 노동자들의 평균임금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소득과 자동차 공장안에서의 새로운 관계는 인도 전통의 카스트제도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마을에서는 카스트에 따르는 신분의 차이가 명확하지만, 자동차 공장에서는 이러한 카스트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회사에서의 새로운 평가기준(성실함, 기술습득 등 자본주의적인 기준)에 따라서 새로운 위계질서가 형성되며 이것은 승진과 소득에서의 명백한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낮은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이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로 고용되면 한 사람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가계의 안정된 소득이 보장됨으로써 높은 카스트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도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석가모니가 실패한 그리고 인도의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가 실패한 카스트 타파가 새로운 생산관계인 자본주의 앞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봉건적 생산관계와 계급관계가 자본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생산관계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인도에 대한 기본 브리핑 후에는 현대자동차가 인도시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하는 산토르 자동차의 광고를 시청하였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배우를 모델로 하여 광고를 제작하였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점심식사는 현대자동차 인도 공장에서 한국식 식사를 하였다. 국내에서 공수된 깻잎, 무말랭이와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곁들인 식사는 인도에서 들렀던 여러 한국식당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마 이 곳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들을 위한 회사의 배려인 듯싶었다. 설사와 배탈로 고생하던 우리 방문 팀에게도 좋은 식사였다.

환자들이 속출하고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하기 위하여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폰티체리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예정시간보다 3-4시간 일직 폰티체리의 ‘아난다 인’ 호텔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 후에 동네구경을 나갔다. ‘아난다 인’ 호텔은 폰티체리에서 오로빌로 가는 길목에 있는 호텔인데 걸어서 10분이면 인도양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고, 오토릭샤로 5분 거리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호텔 명함을 한 장씩 받아들고 우리는 인도에서 처음으로 오토릭샤를 타고 시장구경을 나갔다. 쇼핑을 좋아하는 여자 일행 두 사람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게 된 은국장, 윤실장과 나는 그들이 쇼핑을 위하여 이 가게 저 가게를 들를 때마다 가게 밖에 지키고 서서 시장 구경을 하였다.

포목점과 옷가게가 즐비한 곳을 지나자 야채가게가 나왔는데, 인도의 남부지역은 열대의 기온이기는 하였지만 필리핀에 비하여 과일이 풍부하지는 않았다. 바나나, 야자, 망고 정도가 고작이었고 가끔씩 파파야를 파는 곳도 있었다. 과일가게 안으로는 방앗간과 각종 야채, 건과류를 판매하는 상점들이(마산의 어시장이나 부림시장의 시장 통 골목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이런 곳을 구경해야 진짜로 인도 시장을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용감하게 이 골목을 들어섰다가 몇 걸음 못가서 돌아 나오고 말았다. 이 시장 골목에서 나는 인도냄새(카레 + 꽃향기 + 향)는 도저히 참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 릭샤를 불렀을 때 시장까지의 요금이 20루피였는데, 호텔로 돌아올 때 릭샤 운전사는 어느새 40루피, 30루피를 불렀다가 20루피를 받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떠나버렸다.

인도는 바가지가 심한 나라라고 들었기 때문에 우리 역시 무조건 깍아야 했고 무슨 물건을 사거나 릭샤를 타고나면 서로 가격을 비교해보고 조금이라도 높은 가격을 지불하였다고 하면 ‘너 인도인에게 당했다’하는 분위기와 이런 저런 잔소리를 듣기 일수다보니 최선을 다해 흥정에 임하여야 했다. 어쩌면 인도인들 사이에는 한국 사람들과 흥정할 때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폰티체리는 인도에서 와인이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이 곳에서는 좋은 와인을 값싸게 즐길 수 있다고 우리의 성실한 가이드 ‘씽’으로부터 여러 차례 정보제공이 있었다. 마침 호텔 바로 맞은편에는 와인가게가 있었다. 우리 일행이 이틀간 이곳에 묶는 동안 와인가게 매상을 엄청 올려주었다. 만약 이 와인가게가 24시간 영업을 하였다면 매상은 두 배 혹은 세 배로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파는 와인 한 병을 어렵게 - 남은 일정 중에도 호텔에서 술이 부족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까지 가지고 왔다.

이 호텔에서 이틀 밤을 지내는 것보다 오로빌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진행팀에 전달하였건만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이번 여행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는 오로빌 방문을 기대하며, 한국에서 볼 시간이 없어서 노트북 컴퓨터에 담아온 KBS 수요기획에서 제작한 타큐멘타리 ‘오로빌’편을 보았다. 내일이면 이 프로그램에 나온 인류 공동체를 직접 보게되는구나 ! 내일 드디어 이번 여행 최종 목적지인 오로빌을 방문하는 날 이다.

2003년 4월 13 ~ 22일까지 진행된 NGO 활동가 인도 해외연수 참가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