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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법치주의는 대통령이 지켜야 하는 원칙

by 이윤기 200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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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시민이 쓴 <후불제 민주주의>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 등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철거민과 노동자들에게는 '준법'을 강요하면서, 국무총리, 장관이 되려는 자들은 온갖 불법, 탈법, 탈세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청문회에 나와서 주권자인 국민들을 절망하게 하는 나라, 통치권자가 앞장서서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나라에서 이루어진 그나마 다행스런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운동권 학생 - 국회의원 보좌관 - 독일유학 - 개혁정당 대표 - 국회의원 -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2008년 국회의원 낙선으로 자칭 '지식 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이 쓴 <후불제 민주주의>를 최근에 읽게 되었다.

그는, 우리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후불제 민주주의'에 해당 된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촛불집회라는 가혹한 후불을 톡톡히 치르고서야, 집회의 자유 중 일부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

"제헌헌법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얻었다. 양성평등이 대중적 의제가 되기도 전에 여성들이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노동 3권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헌법이 담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조항 하나하나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 복지와 사회적 안정을 갈망하는 인간의 오랜 꿈을 담은 헌법 조문들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싸우고 노력하고 헌신한 동서고금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왜, 후불제 민주주의인가?

유시민은 4.19 혁명, 5.18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은 모두 민주공화국에 들어가는 비용을 '후불'한 위대한 시민행동이었다고 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헌법과 제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주권의식,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이해, 공정한 경쟁규칙의 수립과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민주공화국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헌법의 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민주주의 비용을 후불해야만 한다는 것.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들불처럼 번지 촛불집회는 결국 민주주의 비용을 '후불'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은 우리 국민이 헌법과 민주주의 절차의 소중함과 '후불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더 깊이 체험하는 학습기간이 될 것이다. 이 시기에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주주의 위기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그의 말처럼,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 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용산참사, 4대강 살리기, 미디어법 반대, 지난 10여년간 비교적 수월하게 누려 온 민주주의 댓가를 '후불'로 지불 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유시민이 쓴 <후불제 민주주의>는 바로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엣세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냥 엣세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사전', 혹은 '민주주의 사전'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헌법의 당위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후불제 민주주의> 제 1부는 행복, 자유, 주권, 진보와 보수, 파시즘, 복지, 헌법애국주의, 애국자, 법치주의 차별, 인권, 채벌, 재산권, 표현의 자유, 통일과 같은 헌법 혹은 민주주의와 관련있는 중요한 키워드들에 대하여 헌법적 해석과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책을 읽은 동안 특별히 '법치주의'에 대한 헌법적 해석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경찰청장과 검찰총장 등 권력기관의 수장들이 앞을 다투어 '법치주의'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들은 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게 만드는 것을 '법치주의 확립'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용산참사가 일어난 것도 철거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은 탓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유시민은 국민들에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이 헌법적 의미의 '법치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법치주의의 본질은 국가와 권력자들이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반대말은 국민들의 법 무시가 아니라 권력자와 국가의 자의적인 통치 또는 인치라고 하는게 옳다.... 대통령 취임 선서의 첫 구절이 헌법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헌법에는 주요 내용은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될 일,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주어야 하는 규정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권력자들은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라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공공연하게 하면서, 국민에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을 법치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도록(헌법 제 37조)하고 있으며, 국가안전 보장 등의 특별한 경우에 법률로써 제한 하더라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즉, "국가는 헌법에 열거되어 있지 않더라도 우리의 이성이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며,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집시법이나 국가보안법은 헌법의 근본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그리고 광우병 촛불 집회에서 수 많은 국민들이 '헌법'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은 주권자로서 권력자들에게 헌법에 따라서 통치하라고 요구한 정당한 주권행사였던 셈이다.

히틀러도 후세인도 부시도 스스로는 모두 애국자

1970년대와 80년대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불타는 애국심으로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헌법적 기본질서가 지켜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애국하는 마음으로 독재정권에 맞섰다. 그런데, 독재정권의 앞잡이로 노릇을 하던 정보기관, 경찰 관계자들 역시 불타는 애국심으로 학생과 노동자들을 잡아들여 구타, 고문, 투옥하였다.

이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히틀러를 따르던 국민들은 불타는 애국심으로 그를 지지하였고, 자신들도 깨닫지 못한 애국심에 불타는 파시스트가 되었던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유시민의 지적처럼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모든 행위를 애국으로 간주한다면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히틀러와 스탈린, 처칠과 드골, 사담 후세인과 조지 부시, 그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애국자라는 명예로운 작위를 부여해야 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어디 그들 뿐인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뿐만 아니라 그들을 추종하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던 수 많은 권력기관의 하수인들이 모두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공안권력기관의 말단 하수인 이근안, 문귀동 그리고 박종철을 죽인 그들이 모두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어디 그들 뿐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자고 외치면서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며,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고 박탈하자고 외치는 자들도 있다. 자기네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생각과 견해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일을 바로 '애국'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 시민의 기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 많은 양심적 세력들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것도 결국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유시민은 애국이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주관적 심리상태와 구별되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기준이 바로 '헌법 애국주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가의 다원주의적 경쟁력을 최대화하는 민주공화국의 질서와 규칙을 담고 있다. 따라서 헌법의 규정과 정신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데 기여하면 애국이 되고 그 반대면 해국이 된다. 이런 기준에 따른 애국 행동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려고 하는 생각과 태도를 나는 '헌법 애국주의'라고 부른다."

유시민은 헌법 애국주의라는 개념은 <양철북>으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방송인터뷰에서 우파의 국가주의적 애국주의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헌법애국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또 이 개념은 독일 사회철학자 하버마스가 민족주의에 입각한 우파의 공격적 애국주의를 대체하기 위하여 말들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애국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심리상태와 상관없이 헌법의 규정과 질서를 실현하는 노력이 애국이라는 독일 지식인의 통찰은 우리에게도 역시 의미있는 규정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엊그제 3개 공무원 노조의 통합과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조합원 투표가 가결되고 나서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노총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강령이 충돌한다는 것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여 행안부, 법부무, 노동부 장관이 공동담화문을 발표하였다. 

합동 담화문에서 3개부처 장관들은 "투개표 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하여는 불법행위와 불공정행위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하여 엄중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투개표 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이나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3개 공무원 노조 조합원들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는 일인데 왜 장관들이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마침, 유시민이 쓴 '대한민국 헌법사전' <후불제 민주주의>에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조항에 대한 사전적 해석도도 담겨있다. 헌법 제 7조에는 다음과 같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규정이 있다고 한다.

①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즉, 이 조항에 따르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공무원의 권리에 속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다른 모든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선거법을 어길 경우 당연히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뿐만 아니라 국가공무원법에 따라서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헌법에 있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규정은 권력에 의하여 공무원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선거 개입이나 정치적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헌법 제 7조는 공무원 개인의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정치적 편향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독재정권시절 수 많은 선거에 공무원과 통반장이 집권 정당의 득표를 위하여 동원되었다. 물론 군인 공무원의 경우 이보다 훨씬 더한 일도 강요받았다. 헌법에 있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 정당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보장 받아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헌법 제 7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하도록 대통령이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일 뿐", 공직 선거법 제 9조가 명시한 것 처럼 "공무원이 선거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까지 위헌, 위법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공무원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하급자에게 위법한 지시를 하거나, 직접 그런 일을 하거나 누구에게 돈을 주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하는 구체적 부당 행위가 있을 때 처벌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한 불법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만으로 처벌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유시민이 쓴 <후불제 민주주의>는 민주공화국의 토대인 헌법의 당위에 이론적 실재적 접근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행정부처의 수장으로서 경험한 헌법의 실현에 관한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제 2부 말미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정치인으로, 참여정부 장관으로서 지냈던 소회도 고백적으로 밝히고 있다. 

다음 글은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쓴 '선의 연대와 민주주의'라는 시를 '남무'라는 닉네임을 쓰는 블로거가 낸 아이디어를 받아 고친 글이다. 결국, 각성한 시민들의 선한 연대만이 민주공화국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시민에게 처음 꽂힌 것은 대학시절 작은 소책자에 실린 그의 <항소이유서>를 읽었을 때였다.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카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이라는 표현에 무너졌다.

그의 항소이유서가 씌어진 1985년 당시는 '5월'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분노와 울분이 폭발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라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독백은 그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후불제 민주주의 - 10점
유시민 지음/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