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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단체 활동가가 블로그 못(안)하는 이유

by 이윤기 200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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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7일, 경남블로그 공동체 공부모임이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이날은 강사는 충청투데이에서 운영하는 '따블뉴스' 운영자이신 홍미애 국장이었습니다. 강의 중에 말해 준 짧지 않은 신문기자 경력에 비춰보면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프리미어는 인터넷 강의로 유명한 홈페이를 운영하는 IT 실무 능력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뉴미디어 미디어 전략국장이라는 직책에 딱 맞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날 강의에서는 따끈따끈한 블로그 뉴스를 모으는 메타블로그 '따블뉴스'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운영해 온 경험을 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메타블로그 개설과 지역블로거들을 조직화하는 과정 그리고 충청투데이 지면게재와 원고료 지급으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들려주더군요.



경남도민일보가 운영하는 갱블이나 충청투데이가 운영하는 따블이나 모두 공통된 고민을 안고 있었는데, 첫 번째는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신문사를 위하여 뭔가 구체적으로 도움되는 일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하였습니다.

홍미애국장께서는 '미디어 전략국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여러가지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더군요. 따블뉴스는 갱블에 비하여 후발주자이지만, 갱블 못지 않게 충청권에서 블로그의 저변을 확대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데, 홍국장께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고민중의 하나가 바로 '시사 블로거' 부족이었습니다. 지역의 여러 현안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포스팅해줄 수 있는 대전 지역 시민단체나 단체 활동가들이 블로그 활동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여러차례 피력하시더군요. 그동안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 붙였습니다.

블로그 공부모임은 보통 1교시 - 강의, 2교시 - 질문과 토론, 3교시 - 뒤풀이 및 집중토론으로 진행됩니다. 저는 강사이신 홍미애 국장과 '시민단체 활동가가 블로그 활동'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3교시에 토론을 집중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대전으로 가는 차 시간에 쫓겨 홍국장님과는 3교시 토론을 시작도 못해봤습니다.
그래서,  블로그 강의 후기 삼아 '시민운동가가 블로그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나름대로 제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았습니다. 사실 단체 활동가라고 해서 모두 처한 상황과 입장이 똑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리한 일반화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주변 활동가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시민운동가들이 블로그를 못(안)하는 이유

1. 시민운동가들은 블로그가 뭔지 정말로 모른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요.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블로그가 뭔지 잘 모릅니다. 이미 제가 쓴 다른 글에서 밝혔지만, 저도 블로그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대략 1년쯤 전에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윤기 부장도 오마이뉴스에만 글 쓰지 말고 블로그도 한 번 해보지요?"하는 충고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도 블로그가 있고, 네이버에도 블로그가 있는데 무슨 블로그를 또 새로하라는 말이야?"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에 쓴 글을 누가 읽는다고 블로그에 글을 쓰나" 이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저에게 블로그는 그냥 혼자 쓰는 까페 정도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얻은 이런 저런 자료를 모으는 자료 창고와 같은 곳이었지요. 다른 활동가들을 무시하는 이야기라고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1인 미디어로서, 사회적 소통 도구로서 블로그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계기를 만들든지 블로그가 뭔지 알 수 있는 교육이 먼저 되어야 합니니다. 아마 블로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누구보다 열심히 브로그 활동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활동가들은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고 헌신성과 열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2. 시민운동가들은 진짜로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진짜로 바쁜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주변의 후배활동가들을 보면 정말로 글 쓸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활동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점점 더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시민운동은 누군가가 따라다니면서 실무자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헌신성과 열정이 가득한 활동가일수록 진짜로 시간이 없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정말 없냐고 물으면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것 입니다.

회의, 모임, 토론회, 행사로 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현안들이 있을 때마다 그 문제에 관하여 상당한 수준으로 공부를 해야합니다. 세상은 시민운동가들에게 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민운동가들은 진짜로 바쁘기 때문에 블로그를 또 다른 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로 없습니다. 아울러 저는 블로그를 일처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블로그라는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결국 그동안 해오던 다른 무엇을 하나 그만두어야 합니다. 풍선효과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블로그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장 많이 줄였습니다. 저는 블로그를 좋아하지만, 저희 가족들은 아무도 블로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말에도 컴퓨터를 켜 놓고 앉아서 하루 종일 글을 쓰는 것을 못 마땅해 합니다.

3. 아직까지 블로그는 단체활동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저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이 부장은 기자야? 시민단체 활동가야?" 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 말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부지런히 글을 쓰는 저를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기자도 아니면서 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시민단체 활동이 20년이 다 되어가는 중견 활동가이지만 역시 선후배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늘 당장 뛰어들어서 해야할 일이 있는데,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있다는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염려가 완전히 떠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만약 저희 단체 활동을 알리는 소식지를 만들면 누구나 다 일을한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지금 처럼 제가 블로그를 통해서 이런저런 지역 현안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단체 활동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개인적인 활동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블로그 활동에 대한 불신의 밑바탕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소한 일상을 담는 옛날(?)블로그와 싸이에 대한 선입견이 크게 남아 있는 탓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근무시간에 싸이질 하는 후배들이나 하루 종일 네이트에 연결해놓고 수다 떠는 후배들을 싫어하였습니다.

여전히  그냥 '블로그'라고만 해서는 1인 미디어 혹은 사회적 매체로서의 블로그와 싸이류의 개인 블로그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4.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부담일 겁니다. 초보블로그부터 파워블로그까지 모두 다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시민운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만난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글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시민운동가들에게 높은 도덕성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NGO 활동가들은 월급은 적게 받지만 일은 GO 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글, 날카로운 분석, 예리한 통찰력이 발휘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무슨무슨 단체 사무총장, 사무국장, 사무처장, 부장 또는 위원장 같은 직함을 가진 분들이  굵직하고 중요한 현안 대신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별로 의미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할 것입니다.

5. 항상 실명으로 글을 쓰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건 저의 경험담입니다. 제가 다른 활동가들에게 "그냥 성명서 쓰는 마음으로 쓰면 된다. 대신 좀 쉽게, 좀 더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쓰면 된다" 하는 이야기를 더러 합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해보니 단체에서 자주 쓰는 성명나 보도자료와는 확연하게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단체가 내보내는 성명서는 실명이 아닙니다. 단체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성명서를 작성한 사람들의 익명성은 충분히 보장됩니다.

이런저런 지역 현안과 관련하여 공무원이나 정치인 등 구체적 개인을 만나면 입장이 난처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성명서는 어디까지나 단체의 입장이지 제 개인의 입장은 아닐 수 있습니다. 혹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아니라고 말 해야 하는 경우도 있구요. 실제로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블로그 글쓰기는 익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지역 현안에 대하여 개인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 부담일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6. 블로그가 단체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메타블로그를 운영하는 신문사가 메타블로그 운영이 신문사에 어떤 구체적 도움이 되는가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해야하는 것 처럼, 시민단체 활동가 역시 블로그 활동이 단체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답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단체가 하는 활동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다.",  "블로그 활동을 통해서 수 많은 블로거들, 네티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9월에 열린 전국시민운동가 대회 분과 토론에서 저의 블로그 활동 사례를 이야기 한 후에 제가 발표한 사례와 관련하여 "블로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냐?"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한 일이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저는 그날 "블로그는 세상을 바꾸는데 보탬이 될 수는 있겠지만 블로그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이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회원과 만나고, 시민과 함께 구체적 현장에서 활동해야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블로그 공간이 하나의 활동공간, 운동공간으로 인식되기 어려운 이유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시민운동과 블로그 활동을 전쟁에 비유해서 뭐하지만, 시민단체 활동가 입장에서 블로그는 '공군'과 같다는 느낌이듭니다. 대신 단체의 고유한 실천활동은 '육군'인 것이지요. 공군의 전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육군이 가서 땅을 빼앗아야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체활동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회원없는 시민운동,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을 할 때 동전의 양면처럼 셋트 따라 나오는 것이 시민운동이 '언론플레이'에 치중한다는 비판입니다. 블로그 활동이 단체 활동을 알리는 언론플레이의 일부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블로그를 통해 자기완결적인 운동적 전망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블로그 공간으로 뛰어들려면 시간과 고민이 좀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막사 포스팅 해놓고 생각해보니...이런 문제에 대하여 답을 해야하는 것도 어쩌면 먼저 블로그를 시작한 제 몫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