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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08:30

'가(家)족? 이제는 가족(加族)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우리 살아가는 지금 이 나라를 '토건국가'라고 규정하였습니다. 토건 이외에는 나라를 일구는 방법을 모르는 나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신도시를 만들고 아파트를 짓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 나라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안전한 마을을 일구는 주민도 없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도 없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기억'도 사라진 시대가 와 버렸습니다. 그저 조만간 거대한 슬럼이 될 거대한 아파트 빌딩과 돈으로 살 수 있는 찰나적 관계와 행복들만 만발합니다.… 아이를 더는 낳으려 하지 않는 시대,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본문 중에서)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는 바로 이러한 우리사회를 병든 토건국가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여성과 가정에 의해 지탱되던 전통적인 '돌봄'의 구조가 해체되는 지점에서 일어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들과 새로운 돌봄 모델의 가능성을 모색해가는 책 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모성 건전지가 아닌 재충전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과 숫자와 하드웨어로 풀어내는 삶이 아니라 상호 호혜와 이야기와 지혜로 풍성해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측은지심이 살아 있는 마을의 주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본문 중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며 배려와 돌봄의 사회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워크숍을 하였고, 거기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다고 합니다.


배려와 돌봄의 사회를 상상하는 사람들

이 책은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여성과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돌봄' 전통의 해체 그리고 사회화 과정을 돌아보며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글들로 1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1부 돌봄 사회의 구상은 2005년 봄에 열린 '돌봄과 소통이 있는 가족문화와 지역사회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오간 이야기들이라고 합니다.

2부에서는 새롭게 만나고 해석되는 가족의 의미 그리고 돌보고, 배우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학교, 그리고 마을과 만나는 공간으로서 새로운 의미의 학교 사례들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3부에서는 돌봄과 소통의 관점에서 마을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돌봄의 위기는 구체적으로 현재의 국가적 위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가족해체와 저출산, 고령화와 사회안전망의 파괴, 교육의 파탄 상황을 말합니다.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애정, 곧 관계성과 돌봄의 결핍이 사회의 토대를 허물고 있습니다. 위기의 극복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주체를 찾아내고 지원하면서 돌봄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 입니다.

그 방법으로 조한혜정 교수는 "지금까지 가정에서, 그리고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비공식/지하 영역에서 돌봄을 감당한 이들의 경험을 사회화 하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그러기위하여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이 나와야 하며, 이는 가정 영역 고유의 친밀성과 돌봄에 대한 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룰 수 없는 미지불 노동과 일자리 문화에 대한 논의"를 핵심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토건국가를 지탱해온 '경제합리적 인간관'을 '관계와 상호의존을 통한 인간관'으로 바꾸어 사유해야하는데, 포용과 소통의 원리가 주도하는 따뜻한 근대로 방향을 선회하고, 돌봄 노동을 회복하는 일은 측은지심을 가진 한국의 아줌마들이 그 희망이다. "비공식 영역에서 한국 사회를 돌보며 지탱해온 아줌마들의 저력과 관심의 에너지가 어떻게 모아지는가가 돌봄 사회로 전환하는데 관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돌봄 감수성을 지닌 성숙한 여성국민들이 자신이 원하는 공동체적 삶을 기획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바꾸어내는 것, 구체적으로는 지역사회에서 자녀와 부모를 위한 돌봄 노동을 하는 이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자원을 재분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허라금 교수는 '돌봄의 사회적 책임의 원리'를 제안하는데, 그 원리는 "각자의 돌봄 능력에 따라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연결망을 마련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돌봄 일에 대한 지원과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면서, 동시에 모든 이가 돌봄의 능력을 갖추고 보살피는 관계에 적절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방향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과다한 재정 지출의 부담, 돌봄활동의 사회적 비가시화, 돌봄의 임금노동화가 갖는 문제를 서로 보완하여 피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허라금 교수의 생각입니다.

누구나 돌봄 능력을 갖추고, 적절한 보살핌에 참여하기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에는 비교적 딱딱하고 다소 난해한 이론적 배경들과 함께 여러가지 재미있는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 가장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야 했던 두 편의 글이 여기까지 소개한 조한혜정 교수와 허라금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돌봄과 배움, 공동체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대목인 것은 또한 분명합니다.

저는 22명의 지은이들이 쓴 글과 토론을 엮은 이 책 중에서 특별히 도쿄대 '사토 마나부'교수가 쓴 '새로운 페다고지'와 황윤옥, 장정예가 쓰고 그린, '家족? 加족! 이제는 加族이다'라는 두 편의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토 마나부 교수가 소개한 '새로운 페다고지'는 일본의 가와사키시에 있는 미나미스 중학교에서 이루어진 배움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 과정에서 있었던 협동학습의 진수라고 할 만한 영어수업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토 마나부 교수가 수업을 참관한 이날 교실에는 학급의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 '다카시'와 영어에 대해서는 뭐가 문지 도통모르는 극심한 학습 부진아였던 사치코라는 아이가 같은 학습 모둠을 이루어서 서로 협력하는 협동학습을 통하여 영어를 익히는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영어를 못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치코가 다르나 사람과 대화하는데 익수하지 못한 다카시를 배려하여 영어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과 아울러 영어를 못하는 사치코가 더듬거리며 배우는 모습을 보고 다카시도 호의를 가지고 격려해주며 이루어지는 호혜적 협동학습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습니다. 사토 마나부 교수의 글에는 공동체 학습에 대한 몇 가지 사례가 더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듣고 배우는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하마노고 초등학교 야마자키 교사의 수업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기다려주고, 주제와 빗나간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기울여주는 교사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사토 마나부 교수는 수업관찰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된 것은 개성을 살린 배움과 다양한 해석을 존중하는 것이고, 텍스트의 말을 존중하는 수업 철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야마자키 교사의 수업에서는 어떤 아이의 말도 '좋은 말이자 훌륭한 말'이며, 이런 태도가 일관되게 행해지기 때문에 학급의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야마자키 교사처럼 다른 아이가 하는 말도 '좋은 말', '훌륭한 말'로 여기며 들어주는 관계가 형성되는 사례를 보여줍니다.

경쟁으로 가득 찬 우리나라 교실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돌봄학습', '공동체 학습'이 이루어지는 사례 그리고 활동적인 배움, 협동적인 배움, 표현적인 배움 등의 학습 방법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돌봄학습 사례

뿐만 아니라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에는 성미산학교, 해남서정분교,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하자센터, 꿈틀학교와 같은 실험적이면서도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례들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뿌리내리고 사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돌봄과 나눔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참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방법, '비폭력 대화'(NVC)를 소개한 이민식의 글도 인상적입니다. "NVC는 서로의 욕구를 동등하게 수용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의식과 태도,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익히는 대화법"입니다.

이 책은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가족과 학교, 학교와 마을이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가하는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돌봄과 배움이 있는 공동체를 가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전하는 다음 메시지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는 "(마음이)통하는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는 일을 시작하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 지붕 아래 모인 사람들만의 가족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加族(가족)"에 주목합니다.

"내 안에 갇힌 가족을 넘어", "사회 안에 다양한 공동체를 인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는 加族"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내 가족의 경계를 넘어 마을로 나아가는 새로운 加族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의 사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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