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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신형원, 안치환도 함께 탔던 프라이드

by 이윤기 2010.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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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16년 동안 타고 다니던 프라이드 승용차를 폐차한 이야기를 몇 차례로 나누어 포스팅하였습니다. 16년 정든 차를 20년 못 채운 이유 그리고 16년을 무사히 타고 다닌 나만의 비법을 소개하였지요. 오늘은 16년 동안 생사고락(? 자동차는 좀 그런면이 있지요), 동고동락(?)타고 다녔던 프라이드에 얽힌 가지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2010/01/18 - [시시콜콜] - 자동차 오래 탄 나만의 비법
2010/01/15 - [시시콜콜] - 16년 정든 차, 20년 못 채운 이유
2010/01/14 - [시시콜콜] - 사연 많은 16년 지기와 헤어지다



프라이드에 태웠던 유명(?)인


제가 처음 프라이드를 구입하였을 때만 하여도 당당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차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중형차와 준중형차 보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조금씩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더 세월이 지난 후에는 전혀 '프라이드'(?)를 세워주지 못하였지요.

10년을 훌쩍 넘기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폐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비원이나 주차요원이 안내를 해주는 주차장에서는 구석자리나 지하로 밀려나기 일쑤였습니다. 행사가 있어서 호텔 같은 곳을 갔을 때도 별로 환영받지 못하였구요.

그래도 '프라이드' 구입 초기에는 저희 단체의 의전(?) 차량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시민논단과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오는 강사를 마중하거나 배웅 할 때도 제 프라이드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은 유명 뮤지션이 된 안치환씨나 당시 이미 유명세를 탔던 신형원씨가 저희 단체가 주최한 청소년 축제에 초대가수로 왔을 때도 모두 제 프라이드로 마중과 배웅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서울로 돌아갈 때, 빠듯한 비행기 시간에 맞춰 김해에 있는 부산 공항까지 도착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치환씨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곡 '내가 만일'이 발표되기 전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아 서로 난감하고 미안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프라이드를 직접 탔던 사람들 중에는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 뒤에도 음악회 등의 행사로 이름이 잘 알려진 분들을 초청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시더군요. 그래서 제 프라이드를 함께 타는 일은 없었습니다.

프라이드에는 최고 몇 명까지 탈 수 있을까?

프라이드 승용차에는 최고 몇 명이 탈 수 있을까요? 기네스북 기록을 찾아보니 2000년에 폭스바겐 승용차에 25명이 탔다고 하는군요. 제 프라이드에는 몇 명이나 탔을까요? 기네스북 기록이기는 하지만 폭스바겐에는 25명이 타고 차를 운행하지는 않았지 싶습니다.

제 차에는 기네스북 도전처럼 차에 사람을 억지로 우겨넣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 프라이드 전성기에는 함께 일하는 부서 실무자들이 제 차에 모두 끼어타고 다니는 일이 많았습니다. 회식을 위하여 이동할 때, 영화를 보러 갈 때, 회의를 위하여 다른 사무실을 갈 때 따로 버스나 택시에 나누어타지 않고 한 차에 뭉쳐다녔지요.

가장 많이 타고 다녔을 때는 뒷자리에 5명, 조수석에 2명, 운전석 1명 모두 8명이 한꺼번에 타고 다녔습니다. 요즘 차들은 자동차 실내 공간이 넓어져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프라이드 시절에는 정말 꽉 채워서 다닌겁니다.

시내를 주행하다 교통 경찰이 보이면 "수구리(숙여)" 하고 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사전에 약속된 사람들이 의자 아랫쪽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즘은 교통 경찰이 자동차 정원 초과 단속을 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그 시절에는 정원 초과도 단속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안전벨트를 맬 수 없기 때문에 여덟 명이 타고 주행하거나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요. 지금 보다 훨씬 젊은 시절이라 재미로 여기며 이런 일을 하였지 싶습니다.

캠프, 캠페인 척척 해내는 '키트' 부럽지 않았던 차

제 차는 사람이 타는 승용으로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단체 활동을 위하여 징발(?)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은 집회와 시위 그리고 캠페인 용품을 운반하는 일이었습니다.

프라이드 베타는 트렁크가 있기 때문에 뒷 트렁크에 앰프 셋트가 들어가면 딱 맞습니다. 앞좌석 의자를 뒤로 젓히면 접이식 테이블도 그뜬히 실을 수 있습니다. 그외에 피켓을 비롯한 자잘한 도구들은 뒷자석이 싣고도 운전석 뒤에 한 명이 탈 수 있었지요.

완전히 짐차로 변신하는 것은 캠프를 떠날 때입니다. 요즘은 캠프장에 가면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그 시절에는 텐트와 천막을 들고 가서 캠핑을 하였습니다. 프라이드 뒷자석 바닥부터 천정까지 차곡차곡 텐트와 캠핑 장비를 싣고, 트렁크에 부식을 가득 채우면 일주일 캠핑정도는 문제 없었습니다.



북으로 강화도, 남으로 제주도 여행도 함께...

프라이드를 타고 가장 멀리 육지 여행을 간 장소는 강화도입니다. 2002년 겨울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린 간사학교에 한 달 동안 지낼때 프라이드를 타고 강화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강화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석모도인가 하는 더 작은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6년간 승용차를 운전하였지만, 장거리 운전을 싫어하기 때문에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는 여럿이 함께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따라서 제 차는 경상도 권역을 벗어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서 서울까지 간 것은 모두 3번인데, 그 때마다 프라이드와 함께 갔습니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시상식에 부모님 모시고 갈 때, 2002년 간사학교 갈 때, 2004년에 한 달 동안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갈 때 서울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갔던 적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해남 땅끝마을까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베스트셀러였을 때, 책에 나오는 남도답사1번지를 프라이드 타고 다녀왔습니다.
 
가장 남쪽으로는 제주도 여행을 프라이드와 함께 갔습니다. 통영에서 카페리에 차를 싣고 제주에 가서 2박 3일 제주 여행을 함께 하고 왔습니다. 자동차에 필요한 짐을 몽땅 싣고 떠났기 때문에 여행 경비도 줄일 수 있었고, 전에 못가 본 제주 곳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등산 장비도 모두 챙겨가서 한라산 등반도 다녀왔습니다.  아주 나중에야 카페리 자동차 요금보다 차라리 제주에서 렌터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높은 곳은 지리산 성삼재까지 올라갔었고, 가장 험난한 오프로드를 다녀 본 것은 프라이드를 타고 지리산 왕시루봉 근처에 있는 임도를 따라 여행을 하였을 때입니다. 차는 물론이고 등산객도 없는 가을 단풍이 절경이었던 지리산 임도를 달려 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