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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예습하고 와서 수업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

by 이윤기 2010.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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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블로거 무터킨더가 쓴 독일 학교 이야기, <꼴찌도 행복한 교실>

참 아름다운 봄입니다만, 대한민국 모든 중고생들은 지금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휴일이지만 시립도서관 열람실은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벚꽃이 피고 지고 진달래가 막 피어나는 계절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서관을 가득 매운 아이들에게 봄은 사치일까요?

만약, 한국에서 교사가 시험날짜를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중간고사를 치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내신 성적과 대학입시를 관리하는 열성 학부모들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힐지도 모릅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육을 한다는 독일학부모들 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소신 있는 독일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시험 날짜를 알려주지 않고 아무 때나 시험을 치러 아이들의 실력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시험 날짜를 미리 알려 주면 부모들은 분명 아이들을 놀지도 못하게 하고 공부만 시키려 할 것이 뻔합니다. 시험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진 바 있습니다. 날짜를 예고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독일 상황에서는 참 참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학교 성적만으로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서 어느 교사가 시험날짜를 미리 알려주지 않고 아무 때나 시험을 치른다면 아이들은 더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중간고사 날짜를 비밀로 한다면?

어쩌면 아이들은 한 학기 내내 시험이 언제일까 하고 조마조마 하면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중에 공부를 좀 잘 하는 아이들은 한 한기 내내 시험 준비를 하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면서 지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학과 공부를 위하여 선행학습을 하면 안 된다. 선행학습 뿐만 아니라 내일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예습을 하고 가서도 안 된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요? 공부에만 목숨걸지 않는 대안학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독일의 그냥 평범한 일반학교 이야기라고 합니다.

블로그 독일 교육 이야기(
http://blog.daum.net/pssyyt)를 운영하는 ‘무터킨더’가 쓴 <꼴찌도 행복한 교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무터킨더는 전형적인 한국형 입시교육을 받고 자라 부모가 된 뒤에 독일로 유아학을 가서 12년 째 독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무타킨더는 독일어로 ‘엄마와 아이들’이라는 뜻이고, 그녀가 쓴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1등 지상주의, 학벌제일주의, 사교육 천국 한국교육과 한국인의 경험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독일교육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럼 앞서하던 선행학습(예습)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독일 학교에서 예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습을 한 아이들은 다른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저하시키는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선생님을 무시하는 행위로까지 간주된다.”

초중고 대학까지 남들 못지않게 학교를 다녔지만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선행학습과 예습을 해온 모범생들에게 맞춰진 수업진도 때문에 영문도 모르는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예습하고 가면 수업이 따분하고 지겨운 학교

가끔 좋아하는 과목 흥미 있는 수업에는 예습을 하고 가서 잘난척도 해보았습니다만 예습이 다른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교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선행학습을 하여 또래 아이들에 비하여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월반’을 시키는 것이 상식에 속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예습을 하고 와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에게 교사는 월반을 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는군요.

“너 한 번만 더 미리 공부해 와서 수업을 방해하면 월반을 시켜버리겠다.... 너 정도의 수준으로 월반을 하면 분명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1년 후 다시 낙제하게 될테니...알아서 해라”

실제로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전혀 책을 읽지 못하는 상태로 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기 초에는 전혀 글을 읽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월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또래들 보다 뚜렷하게 실력이 뛰어난 경우에는 월반을 권유받는다고 합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1년 일찍 독일학교에 보내면서 한국식 선행학습 철저히(?) 시켰던 무터킨더 역시 실제로 아이를 월반시키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한글을 술술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칙연산을 모두 배우고 입학하는 한국아이들이라면 독일에서는 곧바로 2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한국에서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독일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문제이지만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사가 선행학습이 되어 있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지 않고, 예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 저자 강연회 (좌)블로그 무터킨더님 (우) 고래가그랬어 발행인 B급좌파 김규항님


성적이 너무 좋아도 찬밥 신세, 또래 보다 뛰어나면 월반 권유

이미 선행학습을 충분히 하고 온 아이들이 깝죽거리면서 잘난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교과서와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결국 예습을 철저히 하고 온 아이들이 학습의 흥미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뻔히 아는 내용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어찌 생각하면 찬밥신세나 다름없다.......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우수한 아이들을 한 학년 건너뛰게 하는 월반이라는 제도가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합리적입니다. 또래 보다 공부를 잘하면 자기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 속에서 잘난척하면서 우월감에 빠져 지내지 말고 더 잘하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좀 더 어려운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독일처럼 선행학습을 많이 하여 또래 잘 하는 아이들을 월반시키는 제도가 있다면 대부분 한국 부모들 대부분은 선행학습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 부모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은 뒤처지지 않고 공부를 잘 하라고 하는 것 보다 다른 아이들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초등학교 과정을 몽땅 가르쳐보내는 한국 부모들도 또래의 경쟁에서 1등 하는 아이를 만들려고 한 것이지 한 학년을 건너 뛰어 비슷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 속에 포함되어 1등을 놓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독일 학교와 교사들처럼 철저하게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정해진 교육과정에 맞는 교육, 그리고 그 반에서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맞추어 수업을 진행한다면 적어도 미취학 아동들의 사교육시장은 붕괴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독일에도 과외는 있다는데?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쓴 무터킨더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람인지라 큰아이를 독일 학원에 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가만두어도 그럭저럭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는 아이를 더 확실하게 가르쳐보겠다고 학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독일에도 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사설학원이 있더라는군요. 그런데, 학원 강의는 아이에게 너무 쉬워 배울 것이 없었고 교사는 왜 학원에 왔냐고 하며 난감해 하더라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학원이란 정말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거나 뒤쫓아가지 못하여 낙제할 위기에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더라는 겁니다.

“사교육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생각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성적을 더 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음 학기에 학년을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심각한 아이들만을 위한 응급처방이었다.”

결국 독일 교육에서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또래들과 같은 수준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또래 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경우에는 월반을 권유하고 사교육은 또래 보다 특별히 뒤처지는 경우에나 시키는 것이랍니다.

독일학교는 우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에 못 미치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둔다고 합니다. 많은 독일 사람들이 국제학력평가나 수학경시대회 같은 경쟁시험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잘 하기 때문에 성적이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요.

이점에 있어서는 국제학력평가에서(PISA)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어 최근 한국 교육에 반성적 사고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핀란드 교육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핀란드 역시 누구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유급제도를 통해 뒤쳐지는 아이들도 알 때까지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학교교육에만 의존하는 독일아이들의 수준은 학습 수준은 어떨까요? “보통 고학년 독일어나 영어시험 문제는 한국에서는 대학에서 전공을 해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논술 문제들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PISA 성적 나빠도 독일 아이들 지식과 사고력 뛰어나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지를 받아올 때마다 깊이 있는 지식과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들을 보면 이들은 학교에서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연습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터킨더’는 독일이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것도 이런 시험 출제 경향도 원인이라고 봅니다. 깊이 잇는 지식과 사고를 요구하는 독일의 출제 경향이 국제학력평가 대회의 문제 유형에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공부 이야기만으로 책 소개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 밖에도 무터킨더가 쓴 <꼴지도 행복한 교실>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독일 학교와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있습니다.

만 16세부터 투표권을 가지는 독일 아이들,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활동을 통해 정치의식을 키워가는 아이들, 개근상은 물론 출결과 내신이 아무 관련이 없는 평가, 잘 하는 과목을 골라 시험치는 수능, 초등학교 4년을 마치면 인문계와 실업계로 진로를 나누는 독일 교육,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 들입니다.

무터킨더의 큰 아이가 10학년 때 평범한 현직 독일 경찰관에게 직접 배운 ‘피의자의 권리’ 교육은 금태섭 변호사가 현직 시절에 한겨레에 기고하였던 ‘수사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과 참 비슷합니다. 궁금한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적 사고로는 현직 경찰관이 한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친구들에게 공부만 밝히는 공부벌레라는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나라, “성적을 더 올리고 싶어서요”, “지금보다 더 잘하려고요”라는 대답이 민망한 문화를 가진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가진 거울로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는 우리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는 줄도 모릅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독일교육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주는 책입니다.

우리학교와 우리사회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하는 내 아이들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만, ‘무터킨더’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듯이 쓴 참 재미나고 흥미 있는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도 더 여럿이 함께 이런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록새록 키워주는 이야기입니다.

※독일 학교 이야기 <꼴찌도 행복한 교실> 저자 '무터킨더'(박성숙)님이 마산에 옵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 저자 강연회

일시 : 4월 30일(금) 오후 7시
장소 : 경남도민일보강당
주최 : 경남도민일보독자모임

 

꼴찌도 행복한 교실 - 10점
박성숙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