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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정부는 인민의 힘을 이길 수 없다.

by 이윤기 2008.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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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교과서를 통해 세상을 배우던
시절에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으로 이루어진다고 달달 외웠다. 이때 국민과 영토 주권은 국가에 속해 있는 종속적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좀 더 어른이 되어 공부를 해보니 국가는 국민들이 일정한 영토에 통치권을 세운 공동체 정도로 정의되었다. 말하자면, 국가는 국민에게 속해 있는 개념이었다.

그제야 국민들은 국적을 바꿀 수도 있고 다른 나라를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때때로 국가는 모든 것을 바쳐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종 국가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 '독재 정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국가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국가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은 부당한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겠다는 각오를 하기도 한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그들이 생명을 무릎쓰는 대상이 국가가 아니라 정부라는 더 나아가 막대한 부의 소유자들, 정부와 연결된 거대 기업들이라는 점을 생각했더라면 그 청년들은 망설이지 않았을까?"(본문 중에서)

하워드 진이 쓴 새 책<권력을 이긴 사람들>은 바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누구를 위하여 애국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지는 책이다. 그는 미국 건국의 기초가 되는 문서인 독립선언서에 포함된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애국이란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따르면 정부는 '생명, 자유, 행복추구'에 대한 모든 이의 동등한 권리와 같은 어떤 목표들을 지키는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세운 인위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언제든 이 목표들을 파괴하게 되면 그 정부를 바꾸거나 무너뜨리는 것은 인민들의 권리이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진정한 애국주의라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들, 즉 평등,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과 같은 가지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며, 그 가치를 손상시키거나 훼손하는 것은 비애국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정부를 바꾸는 것은 인민들의 권리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죽어가고 있는 병사들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를 위해 죽어가고 있으며, 체니, 부시, 럼스펠드를 위해 죽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석유카르텔의 탐욕을 위해, 미 제국의 팽창과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하워드 진의 생각이다.

애국주의, 국가주의는 국민들의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진주만에서 2300명이 죽었기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24만 명을 죽인 것을 정당화해주고, 9·11 사건에서 3천여 명이 죽은 사건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수만 명을 죽이는 일을 정당화해 주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는 국가주의와 그 모든 상징들을 부정해야 한다. 깃발, 충성의 맹세, 찬가, 그 노래들에 담긴 신은 미국만을 선택해 축복한다는 주장들을…. 우리는 한 나라가 아니라 전체 인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충성을 다짐할 필요가 있다."(본문 중에서)

그는 미국이 역사에 등장했던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 다르고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워드 진이 쓴 <권력을 이긴 사람들>은 그가 최근 잡지에 기고한 칼럼, 다른 작가들이 쓴 책에 부친 서문이나 후기 그리고 새로 쓴 에세이 35편을 엮은 책이다. 각기 다른 곳에 쓴 글이라 길고 짧은 글이 섞여있고,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적 사건, 독립선언서, 남북전쟁, 민권운동,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 9·11사건과 아프카티스탄, 이라크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데이빗 소로가 말하는 '시민불복종'이다. 그는 미국 역사를 "권력의 기만과 억압의 역사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민들의 끝없는 불복종의 역사, 그리하여 결국 '권력을 이긴 사람들'의 역사였다"고 한다.

시민불복종은 정부 권력이 인권에 종속되는 것이며, 인권은 한 나라의 국민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 속하는 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흑인들의 권리가 국가의 법이나 헌법 보다 더 위에 있다는 주장을 소로를 인용하여 전하고 있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에는 정부가 노예 제도를 지원하고 도망친 노예들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그런 정부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소로 이야기와 베트남 전쟁이 부도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명령에 불복종했던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흑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이 저지른 폭력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그런 미국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의 운동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이런 역사적 운동에서 얻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정부 권력과 부유한 대기업 권력은 인민의 복종에 의존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시민들이 복종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거부할 때, 군인들이 총을 들지 않을 때, 기존 권력은 힘을 잃고 항복 할 수밖에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미국을 지배하는 사람들

미국에서 매년 10만부 이상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된 <미국 민중사>를 쓴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은 "미국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미국 헌법은 소수의 부유하고 힘있는 집단인, 노예소유주, 법률가, 상인, 땅 투기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건국 초기부터 언제나 부유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왔으며, 보통의 미국인 보다 대기업들에 우호적인 법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당시에 부자들은 돈으로 징집에서 빠져나갔으며, 부자들이 장악한 정부는 국가자원을 철도회사와 기업가들에게 선물처럼 분배하였다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독립혁명 이후 200년 미국 역사는 한 계급에 의한 국가 지배의 역사일 뿐이라고 한다.

문제는 미국에서 국민들을 계급 분할의 관점에서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유진 뎁스라고 하는 사회주의자가 1차 세계 대전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면서 "지배계급은 언제나 전쟁을 일으켰고, 종속계급은 언제나 전쟁에 나가 싸웠다"고 언급함으로써 간첩으로 몰려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살펴보면, 미국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없는 지배계급에 속할 뿐이라는 것이다.

"두 정당 모두 전 국민 무상의료보험을 지지하지 않고, 포괄적 저가주택 공급도 제안하지 않고, 전 국민 최저임금제를 요구하지도 않으며, 빈부간의 엄청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진정으로 진보적인 소득세를 옹호하지도 않는다."(본문 중에서)

또한 두 정당 모두 사형제도에 찬성하고 감옥 증설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군대와 지뢰, 핵무기 보유를 찬성하며 미국의 세계 지배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진은 미국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다르고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호소한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다

법치주의, 헌법과 법에 의한 지배는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위선이 숨어있다고 한다. 역사학자인 진은 헌법과 법률은 무한히 가변적이고 당시의 정치적 필요에 봉사함으로써 정의롭지 않았던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전쟁 앞에서는 헌법도 무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기간 중 헌법 절차에 따른 의회의 전쟁 선언이 없었으므로 참전을 거부한 군인들의 소송은 기각 당하였다고 한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의회는 전쟁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수정헌법 제 1조인 언론의 자유를 무시했고, 대법원은 이 법안에 따른 반대자들의 투옥을 만장일치로 확정했다."(본문 중에서)

이것이 자유의 나라 미국의 실체라는 것이다. 헌법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았으며, 8시간 노동을 달성하기 위하여, 최저임금법, 사회보장, 실업자 보험이 만들어지도록 의회를 압박하고, 동료들을 조직하고, 파업을 벌이고, 법과 법정과 경찰에 맞서야 했다는 것이다.

"빈민, 여자, 유색인과 다른 모든 반대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대법원에 의지하는 것은 순진한 태도일 것이다. 이들의 권리는 시민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조직하고, 저항하고, 시위하고, 파업하고, 보이콧하고, 반항하고 법을 위반할 때만 살아난다."(본문 중에서)

"보수파로 구성이 됐든 진보파로 구성이 됐든, 어떤 대법원도 이라크 전쟁을 멈추게 하거나, 이 나라의 부를 재분배하거나, 또는 모든 이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도록 하지는 못한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는 독립선언서의 약속(생명, 자유, 평등, 행복추구권)을 실현시킬 것을 요구하는 분개한 시민들의 행동에 달려 있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노동자, 여성, 흑인의 권리는 법원의 앞선 결정으로 쟁취된 것이 아니라, 권리를 쟁취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한 직접행동이 있은 후에야 뒤 늦게 법원이 권리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누가 대법관이 될 것인가에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주장이다.

시민불복종이야 말로 정의를 실현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조직하고, 저항하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일과 체제를 뒤흔드는 시민불복종에 참여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이 미국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로 정의가 실현되는 국가로 만드는 길이라고 한다.

진짜 테러는 '전쟁'이다

하워드 진은 미국이 1812년 이후 거의 200년간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사명은 전쟁 희생자들을 돕는 것을 넘어 전쟁 자체를 없애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정부들은 전쟁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도 한다. 현재의 정부와 정부를 지탱하는 경제적 동업자들은 전쟁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권력 가진자 들은 결코 전쟁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안정을 가져다준다던 전쟁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과 침략은 그들에게 안전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하마스 그리고 더 많은 아랍인들의 적이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든 모든 전쟁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쟁이 곧 테러리즘이고, 전쟁은 테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정의를 주장하는) 미국이든 이스라엘이든, 국가가 치르는 (모든)전쟁은 죄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악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보다 100배나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미국방부 대변인들은 민간인 사이에 숨은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은 우연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9·11사건과 헤즈볼라의 공격은 테러리스트에 의해 자행된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은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자를 잡기 위한 고의적인 폭탄 공격이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면,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보다 더 부도덕한 전쟁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모든 곳에서 우연한 사건으로 불가피하게 죽어간 무고한 양민의 숫자가 테러리스트들이 의도적으로 자행한 공격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 철폐는 지구를 멸망에서 구해내기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지만, 전쟁 철폐는 시민들의 불복종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전쟁에 복종하지 않을 때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한 두 사람의 영웅적인 행동 보다 "작은 행동이 수백만의 사람들에 의해 증식될 때,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조용한 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혁명적 변화는 격변의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놀라운 변화들이 연속해서 끊임없이 일어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에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헨리 데이빗 소로, 유진 뎁스, 로젠버그 부부, 사코와 반제티, 대니얼과 필립 베리건 형제와 같은 권력을 이긴 사람들의 감동적인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86세가 넘은 역사학자의 35편의 에세이 중에는 '시민 불복종'과 '평화를 다루는 문학작품과 영화를 다루는 색다른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을 비춰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책이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 하워드진 지음, 문강형준 옮김 - 난장/ 329쪽,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