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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새 창원시민 참 어색합니다.

by 이윤기 2010.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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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으로 이사를 한 것도 아닌데 어제까지 마산시민이었지만 하룻 밤새 제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창원시민이 되었습니다. (7월 1일에 쓴 글인데 포스팅이 하루 늦어졌습니다. 티스토리에 사진 업로드가 안 되어서...) 

행정구역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 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마산시의원들의 뜻에 따라 하루 아침에 창원시민이 되었습니다.


저희집 주소는 '마산시 산호동 OO아파트'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OO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거나 다른 지역에 가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되는데, "창원에서 왔습니다"라는 대답이 선뜻 나올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마산에서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지금 일하는 단체에서 20년가까이 일하고 있어 군대기간을 제외하면 마산을 오랫 동안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그러고 보니 우물안 개구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더 큰 도시에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마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제가 살던 큰 도시에 비하여 마산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신다는 부모처럼 저도 마산을 고향으로 여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창시절을 모두 마산에서 보내면서 제가 태어난 도시에 대한 어린시절의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지워졌습니다. 마산에서 살았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마산에 대한 애정도 깊어갔습니다.

오랫 동안 마산에 살았지만 마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난 후부터 입니다.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된 후에 3.15와 10.18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마산시청 홈페이지 창원시로 바뀌었네요. 옛 홈페이지에서 필요한 자료는 모두 창원시로 옮기고
 인터넷 박물관(혹은 자료관)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요?



지역운동 하면서 마산사람으로 정체성 생겨...

아울러 본격적으로 마산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시민운동을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지역'이라는 과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저도 제가 사는 지역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YMCA 활동가들은 미국 시애틀 시민운동 사례를 공부하면서 "살기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를 가장 중요한 운동과제로 삼았습니다.

"마산 앞바다가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21세기에는 마산도 이런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21세기는 생각보다 참 빨리 왔습니다)
"마산에도 도심지에 공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바다를 매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높은 고층 아파트는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학산 꼭대기에 철탑을 세워 바다 조망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 한국은행 터에 멋진 도심공원을 만들면 좋겠다."
"임항선 철길을 잘 활용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장을 그만 짓고 근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역 자원으로 개발하면 좋겠다"
"아파트를 그만 짓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시개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시민운동을 하는 동안 마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관심과 애정이 깊어졌기 때문에 '마산'이라는 지명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들 보다 더 컸던 모양입니다.

제 아버지는 사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마산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산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흔 중반이 된 저는 마산을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마산시라는 이름이 없어지고 창원시민이 되어도 앞으로도 마산을 고향으로 기억할 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 십 대인 제 아이들 고향은 창원이 될 것 입니다. 지금 당장은 제 아이들도 어색하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시절 마산으로 이사와 마산을 고향으로 여기게 된 것 처럼, 제 아이들은 창원을 고향으로 두게 될 것 입니다.

오랜만에 결론도 없는 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 봅니다. 내 마음의 '고향'이 없어지는 것 같은 허전함 참 크기 때문입니다. 바다도 산도 건물도 사람들도 모두 그대로이지만 주소 첫 머리가 '창원시' 바뀐 것 뿐인데도 아쉬움과 허전함을 쉽게 지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 제 스스로 자연스럽게 '창원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 기억으로 제가 태어난 도시에서 살았던 햇수 보다 마산에서 살았던 햇수가 많아졌을 때, 마산을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향에 대한 정체성이 바뀌려면 물리적으로 그 만큼 긴 시간을 그 도시에서 살아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 사십년 가까이 마산시민으로 살았으니 앞으로 한 사십년 쯤 창원시민으로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창원을 고향으로 여기게 될까요?

저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마산이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창원시민이 된 것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 사람들은 별 다른 느낌이 없다고 합니다.

유시민이 항소이유서에 인용하였던 네크라소프의 싯구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구절을 떠 올린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

창원시민이된 첫 날, 통합시 출범을 축하하는 각종 행사가 열리는 모양인데, 저는 조금도 기쁘지 않습니다. 앞으로 창원 시민으로 사는 것이 저 에게도 그리고 저와 함께 같은 날 창원시민이 된 옛 마산 시민들에게도 기쁜 일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