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친구한테 이야기 하듯이 옆집 아줌마에세 수다 떨듯이 쓰시면 됩니다."
"신문기사처럼 쓰지 마세요. 신문기사 딱딱하고 재미없잖아요. 그냥 이야기하듯이 친구에게 말하듯이 쓰면 됩니다."
"보도자료나 성명서처럼 쓰는 것은 절대 금물이구요."
"이야기형 글쓰기, 다른 나라 말로 내러티브 글쓰기라고 하지요. 블로그는 그냥 이야기 하듯이 쉽게쉽게 내러티브 글쓰기를 하시면 됩니다."
누가 이런 뻥을 쳤냐구요?
바로접니다.
한겨레 21, 안수찬기자에게 <스트레이트를 넘어 내러티브로>라는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뻥을 치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딱 저를 두고 한 이야기더군요.
안수찬 기자의 강의를 듣고 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그냥 쉽게쉽게 이야기하듯이 써라고 한 제 이야기가 무지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러티브 글쓰기가 그냥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이, 수다 떨듯이 써면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기 위하여 신문기자들이 많은 연습을 하듯이 내러티브 글쓰기 역시 체계적인 준비와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이더군요.
내러티브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블로그 강의 하면서 '쉽게 쉽게 이야기 하듯이 써라'고 떠들고 다닌 것을 생각하니 강의를 듣는 내내 참 부끄럽더군요.
경남도민일보 직업 기자들을 대상으로 좀 더 완성도 있는 내러티브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준비와 연습이 더 강조되었는지 모르지만 내러티브는 그냥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강의 도입부에 음악이나 미술처럼 글쓰기에도 장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학, 학문, 일상, 사무, 언론.......대부분 사람들은 특정 장르의 글만 잘 쓴다는 것입니다.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드물다는 것이었지요.
결국, 내러티브 기사쓰기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연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내러티브 글쓰기가 새로운 대안이다
안수찬기자는 "한국형 신문기사의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새로운 대안은 '내러티브'기사"라고 하더군요. 최근 몇 년 동안 퓨리처상을 수상한 모든 기사는 한결같이 내러티브 기사였다고 합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단순 명료화를 통해 대중이 쉽게 읽고 이해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사이지만, 오늘날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의 욕구에 부흥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내러티브인데, 유독 신문기사만 스트레이트를 고집하기 때문에 신문기사는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시애틀 타임즈에 연재된 내러티브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충격과 환희를 전해주었습니다. 20쪽이 넘는 두터운 강의 자료에는 그가 직접 번역한 영문 내러티브 기사가 요약되어 있었습니다.
그느, 시애틀 타임즈에 연재된 기사 제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더군요.
들어가며/ 1. 떠오르는 별/ 2. 관타나모의 임무/ 3. 배반의 공포/ 4. 증인/ 5. 체포/ 6. 간첩단의 광기/ 7. 고통스런 비밀/ 8. 미궁에 빠진 사건/ 9. 마지막 붕괴/ 마치며
저는 "이 제목을 보는 순간 딱 ~ 소설 목차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코드>나 <로스트 심볼>같은 소설의 목차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잠시 수강생들을 둘러보며 뜸을 들인 안수찬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미드가 생각났습니다. 시리즈별로 각각 다른 제목이 있는 미드가 떠오르더군요"
미드를 본 적이 없는 저는 소설 목차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내러티브 글쓰기의 교재로 삼을 만한 텍스트로는 '소설'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가장 좋은 교재로 추천한 책은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었습니다.
난쏘공은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는 것만 빼고나면 내러티브 글쓰기와 가장 많이 닮은 꼴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설과 내러티브의 차이는 꾸며낸 이야기와 사실을 다루는 것만 다르다고 하더군요. 요약하면, 사실만을 근거로 소설처럼 쓰는 기사라고 할 수 있겠더군요.
내러티브 글쓰기의 스승은 소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블로그 강의하면서 사람들에게 어이없는 뻥을 쳤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같은 글을 써야하는데, 겁도 없이, 뭣도 모르면서 "내러티브는 이야기하듯이 그냥 쉽게 쉽게 쓰는 글"이라고 떠들었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았겠습니까?
내러티브 기사 쓰기 강의는 다음과 같은 소주제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갔습니다.
▲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주목하라
▲ 사건이 발생이 아니라 전개를 드러내라
▲ 기승전결 구조를 활용하여 점증하는 갈등과 모순을 다루라
▲ 생생한 묘사로 심각한 사안을 친근하게 전달하라
그는 노동OTL를 비롯한 자신의 내러티브 기사쓰기의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도 아낌없이 공개하였습니다.
▲ 전형적인 인물을 선택하라
▲ 독자를 케릭터에 몰입시켜라
▲ 소수자는 언제나 좋은 소재다
▲ 사건의 주변을 살펴라
▲ 공간에 주목하라
▲ 삶의 위기에 주목하라
▲ 공공의제에 주목라라
▲ 유명인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감춰진 이야기에 주목하라
▲ 보도된 기사를 뒤집어보라
▲ 정보의 객관성을 입증하라
▲ 담담하고 담백하게 쓰라
▲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라
▲ 예술정신이 아닌 장인정신으로 써라
그는, 짧고 담백하고 간결하게 쓰라는 이야기를 강조하면서 다시 한 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처음 내러티브 기사쓰기를 시도할 때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곁에 두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짧고 담백하고 간결하게 쓰는 또 한 사람의 작가로 김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작가 김훈에 관한 이야기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소설책이 내러티브 글쓰기의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는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김훈의 작품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를 꼽았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입니다. 그는 모든 기사가 내러티브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였습니다. 내러티브 기사가 확산되어도 전체 기사중 30% 정도면 적당한 비율이라고 하더군요.
강의 말미에는 그에게 '한국기자상'을 안겨었던 내러티브 기사 '노동OTL'의 취재와 기사 작성과정을 공개하였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세운 원칙과 역할분담 같은 아주 실무적인 이야기도 언급하였구요.
질의응답 시간에는 문자 메시지 취재메모, 기록을 적게 하는 인터뷰 방법과 같은 현장 경험도 공개하였구요. 사진 대신 삽화를,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 인물 중심의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좋더라는 이야기 있었네요.
내러티브 글쓰기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교재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같은 소설책외에 <다큐 3일>같은 PD저널리즘이 잘 구현된 TV프로그램도 훌륭한 교재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앞으로 블로그 강의 가면, 함부로 '내러티브 글쓰기'를 입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새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쉽게 써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강조하겠지만, "이야기 하듯이 쉽게 쉽게 내러티브 글쓰기를 해보라"는 말은 할 수 없을겁니다.
블로그는 신문기사를 흉내낼 필요도 없고, 신문기사 같은 짜여진 형식에서 벗어나 그냥 자유롭게 자기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면 된다는 이야기까지만 할 수 있겠더군요.
아~ 그리고, 내러티브 글쓰기의 교재로 소설책만 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하버드대의 니먼 언론재단의 아카이브 홈페이지 ( http://www.nieman.harvard.edu )에 가면 교재로 삼을 만한 잘 쓴 내러티브 기사가 모아져있다고 하더군요. 영어공부도 하고 내러티브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교재라고 추천하였지만.......덕분에 저도 하버드대학 홈페이지 구경은 한 번 했습니다.
이번 강좌는 8월 10일 오전 10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기자회가 주최하였고 시민, 독자들에게도 강좌를 개방하였습니다. 좋은 강의에 무료로(^^*)초대해주신 경남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만, 강의 후에는 경남도민일보기자회에서 참석했던 독자와 시민들에게 점심도 사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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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 2010/08/13 10:38
지금 저도 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의 주 내용이 글쓰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데 아직도 가슴에 다가오는 내용이 할부 글은 쓰지 마라입니다.
오늘 다시 님의 글을 통해 글쓰기란 무언지 반성하고 자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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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2010/08/13 11:15
제 생각엔... 그렇지 않습니다. 내러티브 스토리에도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이제 막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해보려는 사람에게 제임스 리 사건 같은 걸 보여주며 '이렇게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 글쓰기를 포기하고 말 겁니다.
그런 탐사보도와 내러티브가 결합된 롱스토리는 결국 전문가의 몫일뿐입니다.
이윤기 님의 이야기는 그대로 유효합니다.-
이윤기 2010/08/13 18:19
그런가요?
담주에 강의 있는데... 계속 이대로 해도 되려나?
그래도.... 내러티브가 스트레이트 보다 더 쉬운 것처럼 말했던 것은 고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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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gummy 2011/01/02 02:37
참 좋은 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이곳은 서울이지만 그런 강의가 있으면(이수찬기자)
미리 알려주실 수가 있는지요, 혹~
한 걸음에 달려갈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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