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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교통

대체 얼마나 더 빠르게 살고 싶은가?

by 이윤기 201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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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또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면 가장 먼저 알고 싶어하는 그 나라 말은 무엇일까요?

오래 전 중국여행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알려준 답은 '빨리 빨리'랍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현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중국어로 "빨리빨리"를 뭐라고 하는지 묻는다더군요. 자신의 경험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빨리 빨리'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더군요.


지난 11월초에 대구∼경주∼부산을 연결하는 경부 고속철도(KTX) 2단계 구간이 개통되었습니다. 지율스님이 목숨을 건 단식으로 지키려던 천성산 터널을 지나 2시간18분 만에 서울∼부산을 주파할 수 있게 되었지요.
 
더군다나 12월부터는 서울-부산을 논스톱으로 2시간 8분만에 이동할 수 있는 KTX 직통 열차까지 개통하였습니다.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서울∼부산을 달리는데 17시간이 걸리던 것과 비교하면, 당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빨리 이동하면 과연 무엇이 얼마나 좋아질까요? 삶의 질은 더 높아지고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진주-대전 고속철도 타고 가면 더 행복할까?

최근 지역 신문 보도를 보면, 진주 - 대전 간을 연결하는 남부고속철도 노선을 두고 지역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전-김천-함양-의령-진주-거제를 연결하는 구간과 대전-무주-함양-진주-거제를 연결하는 구간을 두고 지자체간의 유치 경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남부고속철도건설사업은 중부 내륙권과 남해안을 연결하는 철도사업으로 연말에 노선을 확정하고 2016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속철도 유치운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남부고속철도 노선도를 보면서 과연 이 구간에 고속철도가 꼭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대전-무주-함양-진주-거제 노선의 경우에는 기존의 대진(대전-진주) 고속도로 구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고속도로, 고속철도 중복투자하면 낭비 아닌가?

이미 고속-도로 만으로도 대전-진주를 2시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데, 또 다시 고속철도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중복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미 고속도로만 하여도 전국을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KTX는 서울을 중심으로 부산과 목포까지 전국을 ㅅ자 형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대전-진주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만드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 일일까요?

고속도로는 고속도로대로 만들고, 고속철도는 고속철도대로 만드는 것은 중복투자와 사회간접 자본의 낭비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일은 중앙정부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중복투자와 낭비를 막아야 하는 일인데, 지금은 도로공사와 코레일이 앞다투어 경쟁적으로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공사를 벌이는 형국입니다.

이 경쟁에는 민간 재벌 건설사들도 뛰어들었지요? 정부가 돈이 없으니 민간사업자들이 고속도로와 다리, 철도를 만든 후에 막대한 통행료를 받아 챙겨서 말썽이 되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통행량이 적으면 세금으로 적자를 대부부 보전해주도록 하는 계약을 맺어 국민들로부터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철도교통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은 중소도시까지 도시내에는 도시철도를 만들고, 도시와 도시는 고속철도로 연결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창원시도 적자운영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도시철도 사업을 계속 추진중이지요.

고속철도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친환경적인 미래형 교통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문화가 깊숙히 자리잡아버렸습니다. 자동차 내수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으면 국내 경기가 휘청거리고 세금을 깍아주면서까지 자동차 내수 판매를 높이려고 애를 썼는데, 과연 철도를 중심으로 교통체계를 바꿀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철도 중심으로 하려면 자동차 억제 대책 꼭 필요 !

아울러, 고속철도 혹은 철도를 중심으로 교통체계 바꾸려면 자동차를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 강력한 대책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동차가 다니기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고속도로를 만들지 않아야 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인상하여야 하며 자동차구입을 억제할 수 있도록 세금도 많이 물려야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정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 될 것입니다. 자동차, 특히 승용차 통행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원유가가 인상되는 것이지요. 원유가격이 배럴당 200달러 혹은 300달러를 넘어서는 날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세우게 되겠지요. 쿠바나 북한처럼 말입니다.

한편, 고속열차를 유치하려고 하는 지방정부들은 지역 경제가 발전하고 관광 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고속철도만 지나가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관광의 경우에는 대형마트에서 먹고 마실 것을 잔뜩 사서 자동차에 싣고 떠나는 여행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고속열차를 타고 관광을 떠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기차에서 내린 후에 주변 관광을 하려는 계획을 세워보면 자동차를 두고 갈 수가 없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저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땅 덩어리가 아주 큰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서울-부산, 서울-목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도 과연 고속철도를 더 만들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민자유치사업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토론회에서 어느 토론자가  "우리나라는  OECD 기준으로 볼 때 이제 더 이상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단계에 도달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세한 통계를 살펴보지 않았지만, 지도만 보아도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속도로, 고속철도를 만들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