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입니다. 급한 볼 일이 생겨 블로그 포스팅이 다른 날 보다 좀 늦었습니다. 미리 쓴 글이 있어서 예약포스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늦게라도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쓸려고 합니다.
저는 리영희 선생을 가까이서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강연장에서 먼 발치로 뵌 것이 고작이고, 당사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지적 스승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책을 통해실천적, 지적인 스승이라 할 만한 분들을 여러분 더 만났지만 맨 처음 만난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아주 강렬하게 오래남아 있습니다.
어제 아침 느지막히 페이스북에서 리영희 선생님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습니다. 갱블에 접속했더 정운현 선생님이 쓴 글이 포스팅되어 있더군요. 봄날 같이 따스한 겨울 하루를 보내며 풋내기 대학생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뜨게 해주신 그분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저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전환시대의 논리>입니다. 대학에 입학하던 그해 선배들이 권해주는 도서목록 앞쪽에 있던 <우상과 이성>을 먼저 읽었지만, <전환시대의 논리>가 유독 기억 더욱 또렷이 남아있는 것은 바로 실베스타스텔론이 주연한 영화 <람보>와 얽힌 기억과 충격 때문이었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아이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는 반공 소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2학년때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든 소년단인 '한별단'에 가입하였던 저는 해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입소 교육을 받는 동안 국가관과 안보관이 투철한 소년이 되었지요.
1982년과 1985년에 각각 개봉한 '람보', '람보2'는 흥행의 돌풍을 일으킨 영화였습니다. 람보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던 전쟁 영웅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 전쟁 포로들을 구출해서 돌아오는 환상적인 활약(살인)을 그린 영화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람보를 처음 볼 때는 주인공의 활약이 살인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엔딩화면이 올라갈 때는 함께 박수를 쳐대는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철이 없었다기 보다도 학교에서 가르쳐준대로 반공교육을 훌륭히 받은 모범생(?)이었던 것이지요. 20년도 더 지난 첫 흥행의 약발이 아직도 남았는지 2008년에 람보4를 개봉하였고, 2011년에 람보5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대학 1학년 가을 무렵 선배의 권유로 리영희 선생님이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권해준 선배는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거야' 뭐 이런 말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일주일여 동안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아주 오랫 동안 그 여진이 남았습니다. 아니 그 여진은 평생동안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정확할 겁니다.
세상에, 쏜살같이 밀림을 헤치고 다니며 비루해보이는 베트콩들을 무찌르던 영웅 람보가 베트남에 불법으로 침투한 무장간첩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때까지 무장간첩은 북한에서 남한으로만 보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우방(?)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이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에 아시아의 보잘 것 없는 나라 베트남에 무장간첩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것이지요.
물론 영화 람보는 정부가 책임지지 못하는 전쟁포로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뜨거운 전우애와 애국심에 불타은 미국 청년을 영웅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국제법을 마구 어겼지요.)
<전환시대의 논리>는 이런 환상을 확 걷어내었습니다. 처음으로 민주국가는 선하고 공산국가는 악하다는 이분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지요. 아니 그냥 균열이 생긴 것이 아니라 바위가 깨져나갔습니다.
처음으로 자주독립국가인 베트남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요. 베트남과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자 공산 중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로워졌습니다. 베트남전을 제국주의와 반민중적 권력에 맞선 베트남 인민의 투쟁으로 이해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훨신 더 훗날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비롯한 미국이 일으키는 수 많은 전쟁이 모두 부도덕한 침략전쟁이란 것을 알게된 것은 모두 <전환시대의 논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철한 반공교육으로 한 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스무살 무렵의 젊은에게 두 눈을 모두 뜨고 세상을 볼 수 있게 하신 분이 바로 이영희 선생님입니다. 새로운 세상, 비로소 진실한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지요.
어디 저만 그랬을까요? 많은 선배들과 많은 후배들에게도 그랬을겁니다. 그 후에도 <전환시대의 논리>를 참 여러번 읽었습니다. 후배들과 이른바 학습을 하느라고 여러 번 읽었고...람보 이야기도 참 많이 하였던 것 같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수많은 청춘들에게 '사상의 전환'을 일으켰지요.
이 아침 리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한겨레에서 만든 리영희 선생 추모 동영상입니다.
※지방에 사는 저는 온라인 조문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다음 주소를 클릭 하시면 http://j.mp/f4N9Zv 실명 확인을 거친 후에 온라인 조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도 온라인 추모 서명을 하는 곳이 있네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00950
Trackback : http://www.ymca.pe.kr/trackback/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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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추모시’ 뼈저린 진실의 스승 「리영희」
2010/12/07 03:50
조금 덜 욕심을 낸다면 진실의 푸른 강물은 도도히 흐르련만… 뼈저린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스승 -리영희 선생님, 81세 일기의 흔적을 더듬으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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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2010/12/08 12:33
네, 선생님이 남긴 역작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고 후배들도 이책을 궁금해 하더라구요.
지금 읽어도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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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Darcy 2010/12/07 10:07
저도 이윤기님과 비슷한 변화를 격었지요 ㅎ 이야기듣는 걸 좋아하는 아이여서, 고등학생때까지만해도 학교교육과 학교선생님을 말을 들으며 '반공' 혹은 '배타적 민족주의'에 치우쳐있었는데, 학부시절 다양한 시각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단 것을 깨달았어요 ㅎ 전 리영희 선생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전환시대의 논리란 책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ㅋ 함 봐야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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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2010/12/08 12:35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너무 거짓을 많이 배웠지요. 훗날 진리를 알았을 때의 충격이 너무도 컸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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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절망 2011/01/20 19:11
저는 가난때문에 중학교도 못가고 검정고시로 공부한 사람입니다. 악세사리 가내공업 공장 10년 다니다가 중금속때문인지 몸이 안좋아서 10년째 빌빌대고 있는데요. 빨치산한테 총살당한 작은아버지를 두신 어머니 밑에서 살다보니 제 성향도 그쪽으로 되더군요. 김대중을 무지 싫어하시고..어머니는 작년 12월 24일에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저도 조금씩 바뀌게되고..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최근엔 어머니도 이명박 한나라당 비판을 좀 하셨지만.. 어쨋든 전 다른 눈을 뜨고 싶더라구요. 전환시대의 논리 책도 주문했고. 아무튼 제가 싫어했던 쪽의 책을 많이 봐야겟습니다. 멍청하게 살아왔던거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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