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형 기적의 놀이터 계속되어야 한다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5. 2. 24 방송분) |
지난주 언론보도에 따르면 창원시가 2019년부터 추진해온 슝슝통통놀이터 사업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는 5월 준공을 앞두고 있는 슝슝통통놀이터 3호가 준공되면 추가적인 놀이터 조성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민참여형 놀이터 조성사업 중단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창원에서 어린이들이 원하는 새로운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 처음 의논된 것은 2018년 5월 11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우리가 만드는 창원시 정책 파티> 행사에서부터입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시내버스 불편과 대중교통 활성화, 주택가 분리수거 문제, 걷기좋은 도시, 공원 부족, 공공의료 확대, 마을공동체 활성화, 미세먼지 대책 마련, 청소년 문화시설 부족 문제 등 다양한 생활공약과 함께 <어린이 놀이터>를 새롭게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참가자들의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했는데, 1순위가 창원형 기적의 놀이터 만들기, 2순위가 청소년 문화인프라 구축, 3위가 포켓 공원, 쌈지공원 조성이었습니다. 이날 정책파티에는 지방선거 출마를 앞둔 허성무, 석영철 창원시장 예비후보, 김종대, 이우완, 전홍표, 최희정, 노창섭 창원시의원 예비후보 등이 참석하였는데요.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 <우리가 만드는 창원시 정책파티>에 제안된 정책을 실현시키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보름 후 5월 28일에는 마산YMCA에서 생활협동운동을 하는 등대모임 회원들이 창원시장과 시의원 예비후보들에게 어린이 통학로 안전시설 확대와 이미 순천시의 성공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기적의 놀이터’를 창원에도 만들어 달라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순천 기적의 놀이터에서 놀아 본 아이들이 자꾸 순천까지 다시 놀러 가자고 부모들을 조른다”면서 “시 예산을 투입해 놀이전문가와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순천에 있는 그런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2016년부터 순천시에 만들어진 기적의 놀이터는 주민참여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놀이터 모습에서 벗어나 자연물과 새로운 놀이기구를 이용해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한 놀이터” 모범 사례로 그해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창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원형 기적의 놀이터 사업의 시작은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되었습니다. 5월 11일 <우리가 만드는 창원시 정책파티>에서 ‘창원형 기적의 놀이터 조성’을 약속했던 허성무 시장이 당선되자 취임도 하기 전, 인수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허성무 시장 취임 전인 2019년 6월 27일에 창원시 ‘놀이터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산, 창원, 진해를 순회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참여를 유도하는 놀이터 학교가 개최되었는데, 마산, 창원, 진해에서 각각 30 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순천과 해외 사례를 공부하고, 순천 기적의 놀이터 현장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아울러 행정과 의회 그리고 전문가들로 실무협의회를 구성하고, 창원시 놀이터 학교 운영, 대상지 선정, 주민참여단 교육, 어린이 디자인 캠프 등의 활동을 밀착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무려 2년 동안 놀이터 학교 운영, 주민참여단 활동, 대상지 선정, 어린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공사 후 감리까지 거치는 긴 과정을 거쳐 2021년 4월 마산합포구에 창원형 기적의 놀이터인 ‘슝슝통통 1호 놀이터’ 좋아좋아‘가 개장하였습니다. 행정이 주도하던 사업을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행정과 주민이 만나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주민과 주민이 만나서 이해를 조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마산, 창원, 진해에 사는 주민참여단 단원들이 3개 지역 놀이터 현황을 모두 살펴보고, 첫 번째 사업 대상지로 마산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지역부터 만들고 싶은마음을 내려놓고 가장 열악한 지역부터 만들자는 결정을 해내는 과정은 드라마처럼 놀라운 숙의민주주의 체험이었습니다. 2년 동안 시민주도형 놀이터를 만들어가는 주민참여 활동 과정과 숙의민주주의 체험과정은 모 방송국에서 <놀이터 민주주의>라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습니다.
1호 놀이터가 어린이와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자 창원시는 마산, 창원, 진해에 각 1곳씩 설치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5개 구별로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2023년 9월 홍남표 시장 위임 이후에 2호 놀이터 ‘우주최고봉’이 진해구 풍호공원에 개장하였을 때는 5곳보다 더 많이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의창구 소계동에 추진 중인 3호 공원부터는 주민참여 절차가 생략된 채 다른 놀이터처럼 행정 주도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오늘 5월에 준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창원시는 “개발제한구역에 놀이터를 설치하기 위하여 1년 이상 협의 과정을 거치는 등 어렵게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시민주도형 놀이터 사업에 참여해왔던 주민참여단 소속 시민 대표들에게 행정 주도의 3호 놀이터 졸속 추진은 너무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원시는 단 한 차례 의견수렴이나 협의조차 없이 이미 약속했던 4호, 5호 성산구, 마산회원구에 조성하기로 했던 주민참여형 슝슝통통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습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창원 시내에 270여개나 있는 놀이터 중 2개를 취소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창원시에 있는 그 많은 놀이터 중에서 어린이와 주민이 직접 참여해서 어린이와 주민이 꿈꾸는대로 만들기어진 놀이터는 단 2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와 주민들은 어디를 가도 별로 다를바 없는 270여개의 놀이터 말고 동네마다 특색있고 다른 놀이터를 만들자고 하는 것인데, 창원시가 이런 주민의 뜻을 무시하고 시대를 역행하여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행정을 하겠다고 하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마산합포구, 진해구, 의창구에 우선순위를 양보했던 마산회원구, 창원성산구 주민참여단 시민들의 더 크게 실망하고 있으며, 주민과의 약속을 이렇게 쉽게 팽계치는 시장과 공무원들에게 더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부터 먼저 만들었다면?” 하는 후회의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창원시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함으로써 우리 동네부터 놀이터를 만들자던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어렵게 ‘꼭 필요한 곳’, ‘더 열악한 곳부터’ 만들자고 합의했던 주민들의 공론화 결과도 함께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끝내 주민참여형 놀이터 사업이 이대로 중단된다면, 앞으로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주민참여형 놀이터 만들기는 지방자치 30년 동안 창원시에서 이루어진 ‘주민자치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와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만드는 ‘주민참여’를 중단시키는 것은 앞으로 창원 시정을 주민의 뜻을 묻는 대신 행정이 주도하겠다는 명백한 시대 역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