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 생기면 지역 정치 살아날 것
|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5. 10. 13 방송분) |
내년 지방선거가 23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에 내년 출마 예정자들이 추석 인사를 위해 거리에 내걸어 놓은 현수막들 많이 보셨을텐데요. 오늘은 지난 방송에 이어서 우리나라에 아직 도입되지 않은 지역정당의 필요성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정당이 몇 개나 있을까요? 흔히 잘 아시는 정당을 국회의석 순서로 나열해보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순서로 7개 주요 정당이 있는데요. 아마 7개 원내정당도 다 기억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테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텐데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 숫자가 49개나 된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정당은 2007년 8월에 등록된 <한국독립당>이고, 가장 최근에 등록된 정당은 올해 8월 18일에 창당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로 있는 ‘자유와혁신’이라는 정당입니다. 아주 독특한 당명과 정치 지향을 가진 정당 중에는 2020년에 창당된 ‘거지당’도 있습니다. 이 당은 “정치인들이 국민들보다 거지가 되어야 한다”면서 부자 정치를 반대하고, 정치인들을 거지로 만들어야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49개나 되는 다양한 이념과 지향을 가진 정치 결사체가 있는데요. 이 모든 정당의 공통점이 있는데 혹시 짐작 가시나요?

왜 정당 사무소는 모두 서울에 있나?
49개 정당의 공통점은 주된 사무소가 모두 서울특별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며 정당사무소 전화번호는 휴대전화번호나 전국 공통번호를 사용하는 몇 곳을 제외하면 모두 02지역번호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우리나라는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지 않으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방자치가 부활하고 30년이 지났는데, 지방에는 정당 사무소를 둘 수가 없다는 것이.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 나라의 성장 동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토를 5개 권역으로 나눠 균형발전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실행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이 나라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수도는 관습에 따라 서울로 해야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다고 생각하구요. 바로 그런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현행 정당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당법은 정당의 중앙당은 반드시 수도인 서울에 있어야 하며,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면서 5개 이상 시, 도당을 두어야 정당 설립이 가능하도록 명백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현행 정당법은 지역 정치를 위한 지역정당의 설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모든 정당은 수도 서울을 기반으로 정치 활동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주거 이전의 자유가 있고 대한민국 어디서나 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만, 정당만은 반드시 수도에 사무소를 두도록 하는 것이 저는 너무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정당법은 근본적으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막고 정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으며, 국회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정치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에서 중앙당이 주최하는 집회나 행사가 열리면 전국의 지방의회 의원들은 지방의회 회의에 불참하면서 서울로 달려가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영호남 중심의 지역주의 정당 구도가 고착화되어 있어 그 폐해가 더 심각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500명이 넘는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고, 경남도의회처럼 제1당이 64석 중에서 60석을 차지하는 1당 독점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정치를 주도하는 거대 양당의 독점적 지역 분점 체제가 영호남에서 심화되고, 고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모두 싫다, 지방선거는 지역정당에 투표 할 것.
만약 일본이나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처럼 지역정당 설립이 가능하게 된다면, 영호남 지역주의 정당 구조와 상관없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지방의회 일꾼으로는 국민의힘도 싫고, 더불어민주당도 싫다는 유권자들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구요. 지역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자와 전문가들도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 독일, 미국의 경우 지역정당이 배출한 지방의원이 과반을 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동경이나 베를린, 워싱턴에 주된 사무소가 있는 정당이 아니라 창원에 사는 사람들이 창원에서 만든 정당 이를테면 창원발전당, 진해시민당, 마산정치네트워크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정당들이 존재하고 이런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들이 지방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역정당의 공천을 받아 뽑힌 시의원들은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선거에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되지도 않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선거가 있으면 소속된 시, 도의원들이 자기 선거보다 더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요. 지역정당 소속 지방의원들은 그럴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지역정당들은 국회의원 후보와 대등하게 정책협약 같은 것도 체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독일이나 일본에는 국회의원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만 출마시키는 지역정당들이 많이 있고, 지역정당이 전국정당을 제치고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등장하였습니다. 독일의 경우 1990년 이후부터 탈이념 생활정치를 표방하는 지역정당들이 지방선거에서 30% 이상 득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0개(2035)가 넘는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절반 이상 지역에서 지역정당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가나가와네트워크, 도쿄생활자네트워크, 도민퍼스트회 같은 지역정당들이 다수의 시원원을 당선시키고 있고, 지방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으며 전국정당과 정책협약을 시도합니다. 두 나라 모두 지역정당 설립을 막는 법들이 없고, 일본은 정당 뿐만아니라 지역 정치단체들도 지방선거에는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정당법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위헌법률 심판 청구가 있었지만,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정당 설립을 규정한 정당법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습니다.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이 꼭 옳다는 판단은 아니기 때문에 국회가 하루속히 정당법을 고쳐 지방 정부를 4년마다 새롭게 구성하는 지방선거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주도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