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
매년 2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하고, 외국에 나가는 한국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중국을 다녀온다고 한다. 거꾸로 한국에 입국하는 중국인 숫자도 일본과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타이완이나 홍콩 입국자까지 포함시키면 매년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중 중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두 나라 사람들의 왕래는 역사 이래 가장 활발한 상황이라고 한다.
서점가에는 중국여행 경험을 엮어 낸 책 역시 수두룩하다.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책들은 대부분 눈으로 보는 여행을 위한 정보들이 빼곡히 담겨있거나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낀 지은이의 감흥을 적은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유장근이 쓴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는 그동안 많이 출간된 중국여행 관련 책과는 다르다. 유장근은 중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과 교수다.
따라서, 중국변방을 여행하는 그의 발걸음도, 상해시내를 한가하게 산책하는 걸음도, 동네 사람들과 떠난 뱃놀이 여행도 늘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과 문화와 마주친다.
유장근은 이 책이 "30여 년 동안 매달려온 중국 역사 연구를 기반 삼아, 최근 몇 해 동안 중국 현지를 직접 관찰하면서 얻은 성과를 대중과 교감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에 실린 글들은 2004년 사천, 귀주 지방 여행과 2006년 상해 사범대학 방문교수로 지내는 동안 상해를 중심으로 곤명, 대리, 여강에 이르는 남방여행과 서안, 연안을 거쳐 거얼무, 돈황, 우루무치에 이르는 서북방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아울러, 여행지이면서도 1년 동안 머물렀던 생활터전으로서 상해를 중심으로 살펴본 중국인들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 바둑, 대장금, 축구, 한류를 통해 살펴보는 양국 교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붉은 수수밭, 홍등, 집으로 가는 길 등 장예모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영화로 본 중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상해 사범대학에 교환 교수로 있는 동안 쓴 글들은 대부분 경남도민일보에 '지금 중국에선'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이다. 당시 그는 신문사로부터 '읽기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게'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가급적 그 기준에 맞추어 쓰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지은이는 멜라민 파동과 같은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가난하거나 혹은 싸구려 나라로만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몇 년 사이 중국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모순을 일으키고 충돌하면서도 상생을 추구해야 할 국가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의 수준도 이에 부응할 때가 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수준도 높아져야 하는데, 역사학자의 눈으로 탐색한 중화제국에 대한 관찰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중국은 '중화제국'인가?
유장근 책 제목을 왜 '중화제국'이라고 지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중국에서 변방은 내부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티벳이나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일어났던 신강지역 뿐만 아니라 서북방지역으로 갈수록 식민지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상해, 북경을 중심으로하는 중심지역과 변방의 관계가 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통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정치,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국가를 너머 이루어지는 제국의 지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 말기 중국이 일시적으로는 패전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의 속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인 친구들과 서북부 지역의 여행담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의 경제적 격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금방 어두워진다. 이 격차는 바로 한족과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적 차별까지 내포하고 있으며, 나아가 두 개의 중국으로 분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이러한 모순을 상징하는 사건이 2007년 연초에 신강에서 중국공안당국이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단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18명을 사살하고 비슷한 인원을 체포한 일이다. 이 단체는 지난 2세기 동안 신강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동북 변방 우루무치를 갔을 때 그동안 갖고 있던 '중국'이란 개념에 혼란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그곳은 역사와 민족, 문화, 종교, 일상생활, 그리고 생태적 조건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과는 별도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내 소수민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피력하면서, "근대기 한족에 의해 강제된 식민지성에 주목"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여행을 통해 비한족 세계에 대한 한족의 지배력이 예전보다 더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택동이 이국으로 보았던 티베트 동부 사회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중국의 일부가 되어 있다. 중국은 이 점에서 더 강해질 수 없을 만큼 동아시아에서 초강대국이 되어있다. 거기에 개혁 개방을 통해 종래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민족 문제는 좀 더 극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정부의 '민족 만들기' 작업 결과였다고 한다.
1950년대 해당 민족 자체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독립된 민족이라고 규정한 민족수는 400여개였는데, 빈틈없는 통일국가의 유지와 민족 보호라는 전략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하여 한족과 소수민족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른바 민족동원론(民族同源論)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를 쓴 유장근의 중화제국 탐색에는 늘 중국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중국인과 문화에 대하여 '바로 보기', '다시 보기'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오류, 한국 중심으로 중국을 이해하는 오류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중국을 바라보려고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노력 역시 진득하다.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경험을 비교해보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이런 지은이의 생각이 반영된 탓인지, 책에 포함된 중국 여행 지도에는 중국만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한반도는 물론이고, 자신의 생활 터전인 마산이 다른 중국내 여행지처럼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유장근은 중국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 특별한 것,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한국과 비교하고, 유익한 것, 도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잊지 않는다.
그중 특별히, 관심을 두고 소개하는 것은 구체구 황룡 같은 빼어난 관광지에 설치된 '잔도(棧道)' 이야기다. 잔도는 "시멘트나 나무기둥을 다리 삼고, 그 위에 두껍고 넓은 송판을 깔아 인도를 만든 단순한 형태"인데,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잔도'를 설치하여 산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장근의 일행들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산자락을 휘돌아 감는 잔도를 둔다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숲속을 거닐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정상을 향해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길만 있는데, 좌우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산책개념의 산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유장근과 일행들은 관광자원을 활용하는 중국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동인을 사회주의에서 찾고 있다.
"자연경관에 대한 철저한 국가 관리나 대규모 개발은 사회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토지가 국유인 까닭에 보호지구로 묶거나 개발을 한다고 하여도 국가에서 지불하는 비용은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게 든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티베트인들의 거주지 구채구, 종교 공간이던 황룡고사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적 목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근대국가가 문화국가의 성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써 문화재를 '창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의 문화재 '창조' 과정은 '혁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장정 7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장정 루트를 따라가는 홍색 여행도 인기 있는 유행상품이었다고 한다.
대장정 70주년, 혁명은 관광으로 남는가?
유장근은 중국의 혁명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혁명은 관광으로 남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성공한 자들은 이곳을 떠나 북경으로 갔고, 이후 혁명의 열정은 변색되어 갔다. 반면 그들의 성공을 도왔던 이곳의 노백성들은 여전히 어려운 자연 조건 아래서 예전처럼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연안사람들에게 혁명은 무엇일까."(본문 중에서)
이런 회의 끝에 그의 상념은 연안에서 혁명을 꿈꾸던 조선인 혁명가들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에게까지 이어진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소멸된 연안파와 김산의 꿈은 어디에 있으며, 오늘날 그들이 연안에 남긴 흔적은 관광객들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주로 중국 변방여행기에 관한 소개다. 유장근이 쓴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로 변방을 둘러보는 중국 여행기, 2부는 상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중국사람들의 일상이야기, 3부는 한중 문화 비교와 영화를 통해보는 중국역사 이야기로 되어있다.
제 2부에는 한국과 다른 중국 대학 풍경, 중국의 과열된 월드컵 열기, 잘 갖춰진 중국의 학교 체육시설, 부활하는 귀뚜라미싸움, 상해에서 본 북한 식당, 상해의 역사기록관 '당안관' 등을 소개하는 글로 중국인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평범한 중국인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이야기 그리고 세계최대도시 상해에 거주하면서 본 중국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 3부에는 상호교류의 시선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는 글들이 실려 있는데, 특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에 대한 중국인들과 중국 언론의 평가를 소개하는 글이 눈에 띈다. 유럽 축구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박지성을 소개하고 있을 분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축구를 분석하는 것은 배울 점이라고 한다.
"요컨대 중국축구계의 정보 획득 노력과 그에 따른 분석은 우리가 경중(敬中)하면서 학중(學中)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영화를 통해보는 중국사회에 소개된 13편의 영화이야기 역시 꾸며진 이야기라는 본질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될 만한 글들이다. 독자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겨찾는 아마추어 평론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학자의 영화평론을 만날 수 있다.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를 쓴 유장근은 연구대상 중국과 실제 중국은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는 여행가이드의 말만 믿고 끌려 다니지 않으며, 책을 읽어보면 역사학자인 그가 지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관광지, 재래시장, 열차에서 만나는 중국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록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저자의 꼼꼼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장점이다.
역사학자가 탐색한 중화제국을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소개한 탁월한 여행기이지만, 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는 편집과 빼어난 비경을 흑백사진으로만 보아야 하는 것은 작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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