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단다>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일대기를 소개하는 이야기책입니다.
민주화운동, 사회운동에 헌신해 온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영성운동, 생명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음으로부터 스승으로 모시는 많은 분들 역시 장일순 선생을 스승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90년대부터 생협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장일순 선생의 이름을 들었지만, 제대로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돌아가신 후에 책으로 나온 최성현이 쓴 <좁쌀 한 알>과 이현주 목사가 펴낸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와 같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을 살펴보면, 장일순 선생은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장경호 선생께 한문을 배우고 독립운동가 박기정 선생에게 붓글씨와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보통 학교를 마친 후에는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를 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일생을 살아갔다고 합니다.
장일순 선생은 서울에서 공부하던 중 국립대학 설치를 반대하고 원주에 내려와서 지내는 동안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만나고 평생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교육운동에 헌신하던 젊은 시절에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하기도 하였지만, 감옥생활과 군사정권의 감시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서로 돕고 살도록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농촌과 탄광지역에 신용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 생활협동조합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반독재투쟁에도 참여하였지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소중히 여기며 온 생명이 서로 돕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난초 그림과 붓글씨로 유명한 예술가이기도 하였지만, 서화 작품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해주었고, 뜻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짜로 내주어 힘을 보태어주었다고 합니다.
김선미가 쓴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있다>는 어린이를 위해 쓴 책입니다. 이 땅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장일순 할아버지가 생전에 품었던 마음과 생각을 전해주기 위해서 쓴 책이랍니다. 좁쌀 한 알에 땅과 바람과 햇빛과 공기와 물과 우주만물이 담겨 있다는 지혜를 어린이들에게도 전하기 위해서 쉽게, 쉽게 풀어쓴 책이지요.
모자라니까 더 많이 채워지는 거야
이제부터 조한알(장일순 선생의 또다른 이름) 할아버지가 생전에 품었던 마음과 생각 중에 몇 대목을 소개해드리지요. 어린 시절에 조한알 할아버지가 동생과 낚시를 같을 때 이야기 입니다. '게바리' 낚시를 하면서 낚시를 드리우고는 있었지만 물고기를 잡는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에 흥미도 없었고 재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의욕도 없었다고 합니다.
조한알 할아버지는 스스로 늘 "나는 참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주위 모든 게 선생님처럼 보여 동생이든, 친구든, 어린아이든 가리지 않고 스승으로 삼았고, 심지어 길가의 풀 한 포기에게도 항상 겸손하게 배우려고 했답니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맛난 음식을 담을 수 있어. 배가 고파야 음식이 더 맛있고 말이야. 항상 내 배가 부르고, 아는 게 많아서 생각 주머니가 꽉 찼다고 여기는 사람은 새로운 걸 배우기가 쉽지 않단다."(본문 중에서)
붓을 들고 독립운동, 붓을 들고 사회운동
조한알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던 차강 박기정 선생님에게서 붓글씨와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차강 선생님은 나라를 빼앗기자 일본군과 맞서 의병으로 싸우셨고, 그 뒤에는 그림과 글씨를 팔아 나라 밖에서 독립운동하던 분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는 칼로, 나이가 들어서는 붓으로 일본이랑 싸웠던 분"입니다. 조한알 할아버지는 차강 선생님께 글씨를 배울 때 늘 자랑스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훗날, 조한알 할아버지 역시 환갑을 넘긴 나이에 '한살림'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쓴 글씨며 난초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팔아 번 돈을 모두 한살림운동에 내놨다고 합니다. 스승이셨던, 차강 선생님이 그림과 글씨를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 주던 일을 빼닮았던 것입니다.
조한알 할아버지는 그림이 어떻게 팔렸는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묻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늘 "그림을 그려서 얼마를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나는 붓을 꺾을 것이야"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선물로 그림을 그냥 그려주기도 했고, 좋은 일을 하느라 돈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 그림을 팔아 쓰라고 했답니다. 귀한 글씨와 그림을 왜 그렇게 헤프게 나눠주느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의 글과 그림에 부적과 같은 마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차강 선생님뿐만 아니라 조한알 할아버지의 장경호 할아버지 역시 훌륭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땅을 많이 가졌던 부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조한알 할아버지 가족들은 모두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조한알 할아버지 집에서는 평소에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늘 따뜻한 밥을 대접하였고, 날이 추운데 동냥 바가지도 없이 찾아온 사람에게 아예 안방을 내어주고 정성껏 밥상을 차려 대접 했다고 합니다. 또한 토지개혁 때도 할아버지 가족들은 소작인들에게 땅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추수 때마다 받아먹은 곡식이면 땅값은 치르고도 남는다. 이제 다 땀 흘린 사람들에게 돌려주거라. 할아버지 뜻에 따라 아버지는 글을 모르는 소작인들을 위해 땅문서까지 직접 만들어 주셨지."(본문 중에서)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작을 줄 때도 단 한 번도 수확량을 세어보고 땅 주인 몫을 확인하는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늘 주는 대로 감사히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조한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장경호 어른이었기에 지주라면 무조건 반동으로 몰아 죽이던 전쟁 때에도 소작인과 농민들이 먼저 감쌌다고 합니다.
'브라보콘' 값은 누가 매기지?
마지막으로 조한알 할아버지가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할 때 농민들을 모아놓고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있었던 이야기 하나만 더 소개할께요.
1970년에 처음 나온 브라보콘은 인기 있는 고급 아이스크림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아이스크림이 한 개 5원 할때 브라보콘은 50원이나 했다고 합니다. '열 두시에 만나요 브라콘 ~ 둘이서 만나요 브라보 콘~' 하는 광고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따라 부를 정도로 유명했다는군요.
조한알 할아버지는 이 브라보콘을 예를 들어 농민들 귀에 쏙 들어오도록 협동조합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브라보 콘) 그게 얼마예요?"
"50원이죠"
"그걸 누가 정했나요?"
"그거야 브라보콘 만드는 데서 정했겠지요."
"그래요. 재료랑 광고비랑 또 만드는 사람 월급까지 계산해서 값을 매긴거란 말이죠. 그런데 쌀은 어때요? 쌀값은 누가 정해요?"
조한알 할아버지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값을 매기는데, 쌀값은 농사지은 사람들이 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조한알 할아버지는 쌀값, 배추값을 농사지은 사람들이 옳게 매길려면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농민들을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원주에서 처음으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 때도 이런 이야기로 사람들 마음을 모았다고 합니다.
"십시일반이라고 자기 밥에서 한 숟가락씩만 덜어 내도 금세 밥 한 그릇을 만들 수 있어요. 적은 돈이지만 여럿이 모아 꼭 필요한 사람을 돕자는 게 신용협동조합이에요."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신용협동조합은 은행에 갈 엄두도 못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협동조합운동은 생활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공동육아협동조합, 농인생활협동조합으로 발전하였고, 조한알 할아버지가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원주는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잘 되는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주교인이었던 조한알 할아버지는 "서로 돕고 협동하여 잘 살 수 있으면 이 땅이 천당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한살림 운동을 시작할 때도, 몸에 좋은 것을 먹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었다고 합니다.
"몸에 좋은 것만 사 먹자는 게 아니에요. 그걸 기른 농부들을 하느님처럼 모시자는 거죠. 여러분을 잘 먹여 주는 분들이잖아요. 여러분은 또 농부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 주니까 그분들의 하느님이 되는 거지요."(본문 중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와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가 모두 서로에게 하느님이고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것 역시 하느님 일이라고 사람들을 깨우쳐주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살림 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살림은 온 인류가 함께 사는 길이어야 한다. 나아가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풀과 나무, 벌레와 땅과 바다, 온 우주가 함께 사는 길이어야 한다. 그것을 되살리려면 온 우주와 인간이 결국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그러니까 내 몸처럼 자연을 지구를 우주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본문 중에서)
이렇게 할아버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를 새롭게 만드는 일"을 시작하신 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일은 한살림을 넘어서 조한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 모습의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생명운동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답니다.
지은이는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밥을 먹을 때 말이야, 밥알 하나 키우는 데도 바람과 비, 햇빛, 땅, 농부 그리고 부모님의 땀까지 온 우주가 힘을 모았다는 사실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 밥이 바로 하느님이거든."(본문 중에서)
김선미가 쓴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단다>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으면서 뭐든 다 하시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마음과 생각을 어린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쓴 책입니다.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을 책입니다.
무위당 장일순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 누리집 http://www.jangilsoon.co.kr 을 방문하시면, 조한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무위당 좁쌀 만인계'에 참가할 수도 있고 서예작품과 그림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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