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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1:39

"수구세력에게 5년을 더 내줄 순 없다."

25일,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주최한 시민논단에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가 강사로 왔습니다. 한국사를 전공한 한교수는 과거 역사에서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들면서 우리 앞에 놓인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현수막에 쓰인 것 처럼, "희망이 절망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민논단, 시민대학, 시민역사학당 등 여러 이름으로 진행된 YMCA 시국강연의 역사는 20년이 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암울했던 시기에 문익환, 김진균, 한완상 같은 분들이 강사로 오는 날이면, YMCA 회관은 민주주의에 목마른 시민들로 가득하였고, 회관 밖에는 경찰과 전경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어제 시민논단엔, 최근 10여년 사이에 가장 많은 시민, 학생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중간에 드문 드문 빈자리가 있었지만, 강당 맨 뒷쪽까지 의자를 놓아야했으니까요. 20여년 동안 회원으로 실무자로 YMCA 활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참  착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YMCA가 또 다시 '시국강연'을 열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인가?"

가슴 한 켠에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시민논단은 하천살리기, 시민운동 진단, 주민자치운동과 같은 주제로 민주화의 성과를 생활현장으로 심화시키는 주제를 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민주주의' 이야기하는 시국강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후 7시에 시작해서 9시까지, 두 시간을 꼬박 채운 열띤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교수가 참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중 제 마음에 와 닿았던 이야기, 기억나는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대중은 예측하지 못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역사학자이며, 과거사문제 전문가인 한홍구 교수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기억이 남달리 뛰어나고 정확하더군요. 박정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79년 부마항쟁, 혹은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 된 87년 6월 항쟁, 그리고 지난 5, 6월 촛불시위의 공통점은 불과 몇 개월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우리는(누가 우리일까요?) 대중의 역동성을 신뢰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박종철 인권상을 받은 KTX 여승무원들이 '박종철'이 누구인지 모랐다는 일화를 통해 우리(?)의 안일함을 질타하더군요.

결국, 역사는 발전한다.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들에게 당했던,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진보세력이 결국 7년도 안 되어 4.19로 일어섰지요. 5.16쿠테타로 무너졌던 민주세력은 71년 선거로 상황을 반전시켰고, 유신선포 7년 만에 10.26 사건이 일어났으며, 광주학살 7년 만에 6월 항쟁으로 되살아 났다. 또한 3당 합당 7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것.

역대 선거를 돌아봐도 대중들은 수구세력의 권력 연장 음모를 단 한 번도 그냥 내버려둔 적이 없다는 것이다. 67년 선거, 71년 선거, 78년 선거, 85년 선거, 92년 선거, 2004년 선거가 모두 민주세력에게 힘과 희망을 실어 주었다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 대목에서 김수영 시인이 남긴 시 '풀'을 인용하더군요. "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말 입니다.

지난 대선, 총선 왜 졌는가?

지난 선거에 질 수 밖에 없었는 이유야 많겠지요. 한 교수는 강의 서두에 "결국 대선은 양자구도로 간다"는 안 일한 정치공학에 매달린 것이 큰 패착이었다는 지적을 먼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적 실패는 "과거 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위기"이며, 결정적 변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과반수가 넘는 열린우리당 의석, 민주노동당 10석, 그리고 민변 출신 대통령에, 민변 창립회장 출신 국정원장에, 민변 부회장 출신 법무장관에, 민변 대표간사 출신 원내대표가 '국가보안법' 하나 폐지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중이 등을 돌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대선과 총선 실패, 그리고 이명박 지지율이 8%까지 떨어져도 민주세력에 대한 지지가 회복되지 않는 것도 결국 개혁실패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촛불, 10대들 어디서 나타났나?

과거 민주화운동 세대는 민주화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책으로만 민주주의를 배웠다. 머리로는 절박하게 민주주의를 원하지만, 몸은 군사문화와 군국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그렇지만, 민주정부 10년을 살아 본 10대들은 이론으로 민주주의는 몰라도, 살아 본 경험으로 체질로 가치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10대는 민주정부 10년의 가장 소중한 성과라는 것.

"왜 내가 먹을 것을 니들이 멋 대로 정해?"
"내가 먹기 싫다는데, 왜 강제로 먹이려고 들어?"
"그렇게 국민들이 애타게 얘기했는데, 왜 대통령은 우리 얘기 들으려고도 안 하지?"

이런, 질문은 모두 민주주의를 살아 본 아이들에게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냉소적이었지만, 민주화는 우리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놓았고, 삶의 질을 높였으며, 고문과 구타가 없어지고.......

막상,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가기 시작하고,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치고,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10년 동안 민주화의 성과가 많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8년 촛불 이후, 4년 후 선거 준비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촛불의 열기를 제도로 정치권 내에서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것. 촛불 집회 수사, 전교조 탄압, 교과서 파동, 과거사 진상규명 봉쇄, 시민단체 탄압, 뉴라이트 준동, 방송장악, 국정원 기능강화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공안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파시즘과 애국주의가 준동하는 것에 대한 걱정, 어쩌면 고문과 구타와 같은 독재의 망령이 다시 살아 날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반민주적 일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구요. 그렇지만, 수구세력을 대신할 대안 세력 역시 지리멸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5년도 우리가 수구세력에게 권력을 내주고 민주화를 후퇴시킬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치공학으로 인물에 매달리지 말고, 정책과 공약을 중심으로 후보를 발굴하고 키워서 4년 후 선거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또 다시 민주화를 위한 재조직화를 시작해야만 한다더군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희망과 승리를 향한 험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소주 한 잔 나누는 뒷 자리도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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