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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남자, 자전거 여행 위해 준비 할 세 가지

by 이윤기 201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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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급함이 사람들에게 여행을 꿈꾸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장거리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움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녀온 자전거 여행기를 보며 한편으로는 '대리만족'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이런 장거리 자전거 꼭 여행을 해보리라는 다짐을 거듭하고 합니다.

차현호가 쓴 <일본 자전거 건축 여행>을 고른 것도 바로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대리만족과 더불어 언젠가 꼭 다녀오리라 위로도 하는 것이지요.

<일본 자전거 건축 여행>을 쓴 차현호는 나이 마흔에 오랫동안 꿈꾸던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자는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기행>을 읽고 자전거 여행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건축사인 저자는 10년 동안 건축 일을 하고 난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자전거 여행을 선택하였고, 한 달 동안 후쿠오카를 출발하여 도쿄까지 가면서 멋진 건축물(주로 미술관)을 둘러보는 여행을 했습니다.


자전거 여행 준비 첫째, 아내 설득하기

그는 평범한 직장인자 가장인 남자들이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세 가지 조건으로 체력, 돈, 그리고 아내 설득하기를 꼽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아내 설득하기'라고 하더군요. 아마 세상 많은 남자들이 깊이 공감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인 저자의의 여행 테마는 '자전거로 가는 일본 건축 기행'이었고, 여행 루트는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1600킬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는 페리호를 타고, 일본에서는 캠핑장에서 노숙까지 그때그때 해결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그의 여행 준비, 여행경로, 준비물, 자전거 고르기, 자전거 훈련 과정이 비교적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텐트와 침낭을 빼고도 15킬로그램이나 되는 가방을 자전거에 매달고 1600킬로미터를 달렸더군요.

그가 밝힌 여행테마처럼 이 책은 '자전거 여행'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일본 건축 기행'에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1일째 부산항에 가득한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여행이야기는 어느새 '컨테이너와 박스건축'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매일매일 기록한 여행기는 28일째 마지막 날  '요코하마 페리터미널'을 소개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데, 일기처럼 기록한 여행이야기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서 만나는 독특한 건축 작품들을 저자의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만든 숲 빌딩, 어크로스 후쿠오카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여행지마다 만나는 독특한 건축물들과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흥미롭게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있는 건물을 숲처럼 만든 '어크로스 후쿠오카'나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미술관, 마쓰야마 성, 우키요에 미술관, 트리하우스 같은 건축물과 주고받는 대화는 흥미롭고 엿들을만합니다.

"도시 중앙에 솟아 있는 건물을 보고 저마다 갖는 상상과 감상은 다르다. 어떤 이는 부동산 가치로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개인적인 추억의 장소로 기억할 수도 있다. 여기에 건축적 시선을 보탠다면 내가 그것을 보고 그것이 나를 보는 관계를 랜드마크, 도시 경관을 만드는 방식, 도시를 감시하는 지배자의 눈길로도 파악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마쓰야마 성을 둘러보면서 저자는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감시자의 눈길을 읽어냅니다. 죄수들 간의 시선은 차단되고 오직감시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을 떠올립니다.

바로 이런 식의 대화들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1600킬로미터를 달리면서 만난 길 위의 건축물들은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저자는 마주치는 건축물들마다 대화를 시도하고 자신이 길 위의 작품들과 나눈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에밀리오 암바스의 어크로스 후쿠오카, 안도 다다오의 구마모토 현립 장식고분관,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라무네 온센, 안도 다다오의 지중 미술관, I. M. 페이이 미호 미술관, SANNA의 21세기 미술관, 이토 도요의 마쓰모토 시민예술관,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다카스키안, 니겐세케이의 폴라 미술관, 구마 겐고의 안도 히로시게 미술관, 야마모토 리켄의 요코수카 미술관, FOA의 요코하마 페리 터미널 같은 유명작가의 유명 작품들과 나눈 이야기들입니다.



예술적 고립감으로 세계적 명소가 된, 나오시마섬

한 달 동안 이어진 저자의 여행지 중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곳은 '나오시마'라는 작은 섬과 그 섬에 있는 여러 미술관들이었습니다. 나오시마는 도시에서 불과 2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도시와 고립된, 문화와 예술만 숨 쉬는 '단절'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육지로부터 고립된 이 섬은 매년 휴가철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적 고립감'을 찾아오는 곳이라고 합니다. 네온사인도 호텔도 없고 동네슈퍼도 몇 개 없는 작은 섬을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라는 것이지요.

"나오시마의 볼거리는 대략 세 개 지역에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는 현재 내가 있는 미아노우라 지역, 두번째는 미아노우라의 섬 반대편으로 가옥을 개조한 미술관들이 있는 혼무라 지역, 세번째는 지중미술관과 베네세 뮤지엄 오벌 등 대형 미술관과 베네세 하우스가 있는 곤타지 지역." (본문 중에서)

자전거로 하루 만에 한 바퀴를 돌아올 수 있는 섬에 이렇게 많은 미술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혼무라 지역에 있는 미술관은 마을에 있던 집 여섯 채를 개조하여 원룸형 미술관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안도 다다오라고 하는 걸출한 건축가의 지중 미술관도 흥미로 왔습니다. 이 미술관에는 작가 네명의 9작품만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홀과 복도 같은 곳에서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답니다. 건물 천장에 구멍을 내 하늘을 바라보도록 만든 제임스 터렐의 작품 '오픈 스카이'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건축물 사진과 건축가인 저자가 눈으로 풀어헤친 건축 도면 같은 설명서가 있어 글로 못다 한 작품 설명을 채워주는 주는 것은 이 책의 매력입니다.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 소개는 이런 설명이 있어 더욱 돋보였습니다.

저자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처럼 길 위에 세워진 건축 작품을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소개하는 빼어난 큐레이터의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전거로 떠난 여행이야기와 길 위의 건축 작품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여행기입니다.

오래전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그의 발길을 쫓아 남도 여행에 나섰던 것처럼 차현호가 쓴 <자전거 건축여행>을 들도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따라 가 봐도 좋을 듯합니다. 
 

자전거 건축 여행 - 10점
차현호 지음/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