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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죽기 전에 풀뽑은 노무현...왜 그랬는지 알겠다"

by 이윤기 201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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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영국의 리빙라이브러리 사례를 담은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를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리빙라이브러리는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이며, 책 대신 사람을 읽는 프로그램입니다.

책 대신 사람을 읽으니 그 사람의 삶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인 셈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어떤 책이나 강좌보다 더 훌륭한 교양서 혹은 '의식화' 학습교재가 되기도 합니다.

동 시대를 사는 사람이 살고 있는 이야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생생한 체험담이 모두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공명할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은 탁월한 학습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진한 감동이 오랫동안 남습니다.

회사원에서 배우로, 또 정치인으로... '문성근 스토리'

국내에도 리빙라이브러리가 소개된 후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리빙라이브러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사람도서관'을 기획하여 '문성근'을 함께 읽은 후 종이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발간하는 사람도서관(living book)은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해 여럿이 함께 읽고 그 결과를 책으로 내는 일종의 게릴라 단행본입니다.

영국과 유럽의 리빙라이브러리 소개 책을 보면 '사람책'과 독자가 1 대 1로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오마이뉴스> 사람도서관은 여럿이 함께 한 사람을 읽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사람책을 읽은 기록을 엮어 사람책을 읽지 못한 또 다른 독자들을 위하여 종이책을 만들어냅니다. <오마이뉴스>가 만든 사람도서관 제1권 <새로운 연애-문성근을 읽다>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그 첫 호인 <문성근을 읽다>는 2012년 2월 1일 오마이뉴스 사옥인 '서교동 마당집'에서 10만인클럽 회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이후 서너 차례 추가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되었습니다.

30명의 10만인클럽 회원들이 사람책 문성근을 함께 읽고 시집 크기의 문고판 124쪽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문성근 함께 읽기'가 진행된  2월 1일은 그가 민주통합당 최고 위원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의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난 직후이지요. 배우 문성근이 본격 정치인으로 인생을 바꾼 바로 그 무렵입니다. 백만민란을 만들어 야권통합 운동을 하던 문성근이 민주통합당 당대표 최고위원 경선에 참가하여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4·11총선 부산 출마를 선언하였을 때지요.

이 책에는 운동권 로열 패밀리 집안에서 태어나 남다른 삶을 살아온 흥미로운 '문성근 스토리'가 많이 있지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치 이야기였습니다. 문성근이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문성근은 자신의 인생에서 몇 번의 큰 전환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배우가 된 것이고 두 번째는 2001년 3월 노무현 후보를 만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문성근 개인에게는 회사원 문성근에서 배우 문성근으로 인생을 바꾼 것이 더 큰 사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회사 다니는 걸 늘 안타까워하던 아버지 문익환 목사도 인생을 소모하던 아들이 배우가 되었다고 좋아하였다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정치인 문성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더 큰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배우 문성근의 삶은 생략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유서에서 발견한 '담담함'의 정체

문성근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후 바로 정치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 만남으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그는 결국 정치에 뛰어들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결국 그를 정치로 이끌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서에 담긴 뜻을 해석해내고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야권통합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오랜 생각이다. (줄임) 죽어서도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뜻이구나 하는 걸 1년이 지나서 알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고향 봉하마을에 자리잡은 것은 지역 구도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그는 죽어서도 지역 구도를 해소하겠다는 뜻으로 국립묘지 대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을 세우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에는 육체의 생명이 끝나지만 역사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뜻이 담겨있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판단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에 담긴 뜻을 깨달은 후 결국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백만민란'이었다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깨달음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읽어낸 '담담함'의 정체입니다. 연기자인 문성근은 죽음을 앞둔 대통령의 행동에서 동기를 찾아내려고 매달렸다는군요.

"부엉이 바위에 오르기 전 CCTV에 잡힌 풀을 뽑는 모습입니다. 아니 무슨, 유서를 써놓고 당신 아들보다 어린 전경한테 허리 숙여 인사하시고, 특유의 뒤뚱뒤뚱 걸으시다가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느냐고요."

문성근은 어느 강연에서 '나는 죽어서 역사에 묻혀야 한다'는 아버지 문 목사의 시에 관하여 이야기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보여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 이건가 보다 했죠, 노 대통령의 심정이. 15분 후면 내 육체의 생명은 끝나지만 나는 역사 속에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엊그제 풀을 뽑았듯이 오늘도 가지런히 풀을 뽑고 담담하게 경호원까지 풀어주고 가신 거죠."

이후 문성근은 '미안해하지 말고 원망하지 마라'는 말씀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판단하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영화 몇 편 더 찍는 삶을 집어치우고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백만민란 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운동권 로열패밀리' 출신...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백만민란 운동은 결국 그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낙선하였던 부산 북강서을 국회의원 후보로 밀고 갔습니다. 문성근이 부산에서 당선될 수 있을까요?

당사자는 지역구도를 무너뜨리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하였더군요. 부산 언론사 기자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이번 선거에 낙선해도 부산에서 다시 출마하겠다'는 말을 하였다는 겁니다. 이번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배수진을 치는 것보다 더 지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성근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일컬어 '역사를 사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문성근이야 말로 역사를 사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한마디로 운동권 로열 패밀리입니다.

5대조 할아버지는 동학군 출신,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입니다. 1976년 문익환 목사가 3·1민주구국선언을 하고 처음 투옥됐을 당시 유명한 일화가 있더군요.

"두 아들(문익환, 문동환 목사)이 감옥에 가고 며느리(박용길 장로)와 손자(문호근)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자 문재린 목사의 말씀. '집안에 애국자가 넷이나 있어 흐뭇하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버지의 친구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윤동주, 장준하 같은 인물들이고, 문씨 집안과 아버지와 교류하던 분들은 모두가 이른바 운동권 거물들입니다. 문성근 스스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아버지요, 형님과 같은 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를 살기 위해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

또 문성근은 당대 최고의 연설가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가장 뛰어난 연설가로 문성근을 꼽더군요. 이 책에도 독자의 질문 중에 그런 질문이 있습니다.

"문성근씨가 누구보다 정치가로서 자산, 무기를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을 땅 때려주는 연설 능력, 한마디로 말하면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뛰어나요. 또 가족사와 관련해서는 삶이 정치고 역사였잖아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문성근은 이성을 감성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성과 감성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희한한 대중적 파괴력을 지녔다'고 평가하였지요."

'사람책 문성근 읽기'에 참여한 독자의 질문 속에 문성근에 대한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김어준은 문성근을 두고 "도덕적 자격, 역사적 자격, 현실적 역량"을 모두 갖추었다고 평가하였던 모양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배우 문성근이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에서 '역사를 살겠다'는 그분의 뜻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도 문성근 자신이 역사를 사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회사원일 때도 평범한 회사원일 수 없었고, 배우일 때도 평범한 배우일 수 없었습니다. 그가 여관방에서 뒹구는 역할을 하고 있었을 때에도 그는 늘 역사를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사람책 문성근을 9개의 키워드로 들여다보는데, 바로 '강박', '몰입', '시래깃국', '침묵', '다정다감', '왕자', '로열패밀리', '막걸리', '살림'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밀어내려는 '강박', 뭔가에 꽂히면 그 생각만 하는 '몰입'이라는 키워드에 가장 공감했습니다.

정치인 문성근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은 한 번도 바꾸기 힘든 삶을 다섯 번이나 바꾼 문성근이 부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역사를 살아야 하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부산에서 국회의원 두 번 출마하고 일흔이 넘으면 다시 배우가 되어 여섯 번째 삶을 살거라고 하더군요. 두 번 모두 떨어질 수도 있고, 두 번 모두 당선될 수도 있겠지요.

125쪽. 시집 크기의 가벼운 책으로 역사를 비켜갈 수 없는 문성근의 가볍지 않은 삶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여러모로 문성근은 <오마이뉴스> '사람책 제1권'으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성근 다음은 누구일까요? <오마이뉴스> 사람책 제2권이 기대됩니다.
 

※ 3월 24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