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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세월호 슬픔 속...표창원의 책을 권하는 까닭

by 이윤기 201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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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은 사회계약 틀 안에서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고 개입할 수 있으며 개인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가해하고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일은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민주정부 10년을 거친 21세기 대한민국은 "부당하게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법행위가 중단되거나 처벌받지 않고 방치되는 반면에, 이에 항의하는 질서위반 행위는 단호하게 처벌"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기관의 늑장대처와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가겠다고 나선 실종자 가족들을 막아선 경찰들은 마치 시위 진압하듯이 서울에서 500km 떨어진 진도대교 부근에서 길을 막았습니다. 


이번 사고만 봐도 '정의의 적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이미 드러난 여러 가지 증거와 정황들만 봐도 조난당한 배의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친 선장과 항해 선원들은 '정의의 적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사와 선주의 불법행위 정부기관과 안전기관의 불법행위 방조 등 곳곳에 '적의의 적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초기대응을 제대로 못한 해양경찰은 수사대상이 되었고, 앞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불법 행위가 밝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과 정의 앞에 국민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황제노역' 논란입니다. 이른바 황제노역의 주인공인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일당 5억 원의 강제노역을 하였지만, 보통 사람들의 하루 강제 노역 일당은 5만 원에 불과합니다. 재벌그룹 전 회장님은 하루 일당 5억 원의 강제노역을 하고, 보통 사람들은 하루 일당 5만 원에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나라는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나라 아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성폭력이나 절도·횡령·살인 행위를 저질렀을 때 누구는 처벌을 피하거나 경미한 처벌만 받는데 다른 누군가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면 정의에 대한 믿음으로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특히 권력과 돈 앞에서 정의가 바로 서기 더욱 어렵습니다. 5·18광주항쟁에 대한 학살 책임으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선고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으로부터 300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갈취해 착복한 전두환은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금 납부 명령을 받았지만,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채 2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두환 본인뿐만 아닙니다.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차남과 처남은 징역 3년 및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40억 원씩 선고 받은 것이 전부입니다. 또 사기범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은 사기범죄자 복역해야 했던 동생 전경환은 3년째 형집행정지를 유지한 채 각종 편의를 제공 받았다고 합니다. 권력자로서 전두환이 누린 특권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2012년 6월 8일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전두환 부부를 상석에 '모시고' 생도들의 사열을 하게 하는 등 극진히 모셨다. 전두환의 고향 합천에서는 지방정부 예산으로 그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을 조성하고 그의 생가를 보수해준다." (본문 중에서)


<정의의 적들>을 쓴 저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글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독일과 유럽연합의 기준에서 본다면 전두환 우상화는 모두 범죄행위나 다름없다고 주장합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전두환을 지존파나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보다 덜 흉악한 범죄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전두환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이명박 정권 때도 권력에 정의가 짓밟힌 대표적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최시중에 대한 특별사면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최시중은 건설 인허가 청탁을 받고 8억 원의 뇌물을 받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최고 권력에 가까울수록 무책임한 공직자들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과 무고함을 호소했지만, 1심과 2심 법정에서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는데, 돌연 대법원 상고를 포기합니다.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2012년 11월 2년 6개월의 징역형이 확정되었지만, 불과 두 달만인 2013년 1월 말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고 맙니다. 


"최시중처럼 권력을 이용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고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국정을 농단한 파렴치한 범죄자를, 단지 대통령과 가깝고 정치적인 이익을 안겨줬다는 이유만으로 사면해주는 것은 사사로운 정과 관계에 이끌려 국가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한, 그 자체가 권력적 범죄로 해설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예컨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고유영역인 재판 결과를 뒤집어 형을 취소하거나 면제하는 조치인 특별사면이 악용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시중'에 대한 특별사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시중은 특별사면을 염두에 두고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사법부'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며, 파렴치한 눈속임으로 국민을 우롱한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2, 제3의 최시중 사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표창원은 <정의의 적들>에서 18대 대선 국정원 게이트의 총책임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나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장 같은 자들이 모두 '포스트 최시중'과 같은 방식으로 헌법과 법률을 무력화시키면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국정원 게이트의 경우에는 초기에 국정원 직원이 전 직원을 통해 여론조작 범죄 정황을 제보하는 '폭로'로 시작된 측면도 있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야당의 공격과 시민사회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직원 개인이 아닌 국정원장이 공개적으로 국가 기밀을 유출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본문 중에서)


표창원은 비뚤어진 애국주의적 신념을 지닌 이들은 대통령이나 정부, 정당을 곧 국가라고 여기고 반대세력을 적으로 간주하는 광신적 확신범들이라고 진단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금언은 "정의는 때론 늦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문장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범죄 행위는 그들이 권력을 가진 동안에 처벌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험적 확신입니다. 




돈 많은 자가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치외법권


한편 '정의'를 우롱하는 자들은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금권을 가진 자들 말하자면 재벌들이 '정의'를 우롱하는 일이 과거보다 더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도 더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유치하기까지 한 금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는 바로 재벌 그룹 회장의 조폭을 동원한 '무차별 폭행'사건입니다. 2007년 3월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워낙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국민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징역 3년 이상의 형이 추가되고, 다른 폭행 혐의에도 가중 처벌이 되어야 합니다만, 거물급 전관 변호사를 동원한 한화 김승연 회장은 2심 재판을 받던 중에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 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리고, 9월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나게 됩니다. 


2013년 김 회장은 차명으로 소유한 개인회사의 빚을 그룹 계열사 돈으로 메워 3000억 원 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2014년 2월 또다시 환자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선 김 회장에게 대법원은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맙니다. 


언론과 여론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며 들끓었지만, 돈으로 권력을 움직이는 자들은 유유히 감옥을 빠져 나가버린 것입니다. 탈주범으로 유명해진 지강헌은 500만 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총 17년 형을 선고 받았지만, 회사돈 3000억 원을 훔친 재벌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이지요. 


예컨대 이 나라는 아직도 '정의의 적들'에게 포위당한 나라입니다. '정의의 적들'이 권력과 돈으로 정의를 유린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정의가 옳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대중의 일반적 믿음과 신뢰가 무너지는 나라에 사는 것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 이미 눈치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표창원이 쓴 <정의의 적들>은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죄와 벌' 시리즈로 연재되었던 글을 묶어 펴낸 책입니다. 앞서 집중적으로 소개한 전두환 일가와 형제 그리고 최시중과 국정원 게이트에 연루된 자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건 같은 권력형 사건들만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 사기꾼 조희팔 사건, 연예인 성 상납 사건, 만삭 아내 살해 사건, 변호사 실종 사건, 불륜 교수의 살인 사건, 강화도 총기 탈취사건, 친족 성폭행 사건, 아동 성폭행 사건, 조승희 총기 사건, 인천 모자 살해 사건, 의대생 성추행 사건 등 여론을 들끓게 하고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던 희대의 사기사건과 살인 사건, 성폭행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 표창원이 다루고 있는 기막힌 범죄 사건에 대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살펴보면 돈과 권력으로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자들을 빼고는 대부분 잔혹하고,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죄 값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의 적들>을 읽어보면 결국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은 돈과 권력으로 행정, 입법, 사법부를 농단하는 파렴치한 '정의의 적들'이 여전히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를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의'를 파괴하는 권력 기관을 바로 세우고,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국가권력을 관리하거나 집행하는 자들이 공적 신뢰에 반해 그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악용하고 남용하는 행위야 말로 사회를 타락, 부패시키는 모든 범죄의 근원이며, 가장 극악한 '정의의 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싸움이 길고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며, 작은 패배와 작은 승리가 교차하는 오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이 "정의는 때론 늦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금언을 마음에 새기고 힘을 모아 싸운다면 끝내 이기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아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의 적들 - 10점
표창원 지음/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