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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

by 이윤기 201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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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야마오 산세이가 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가 사는 이곳이 다른 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며, 내가 사는 지금이 다른 때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개 사람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좋은 집에 살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보다 더 좋은 동네로 가려고 애쓰면서 살아갑니다. 


오늘 소개하는 <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일본 큐슈 최남단 가고시마에서 100km 정도 더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라는 섬에 산 농부이자 시인인 야마오 산세이가 쓴 책입니다. 그는 제주도 면적의 1/6쯤 되는 야쿠시마에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크고 작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1977년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야쿠시마로 이사 간 야마오 산세이는 하루 중 오후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오전 반나절은 '지구는 곧 지역, 지역은 곧 지구'라는 관점에서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사는 삶이라고 해서 늘 즐거운 일로만 가득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는 오전에는 공부를 하거나 시를 쓰고 오후에는 농사를 짓는 삶을 살면서 산과 숲과 바다와 벗하여 사는 삶에서 무궁무진한 즐거움을 발견하면서 살았더군요. 


1977년 도쿄에서 야쿠시마로 귀농하다


오랫동안 살다보면 늘 보아 새로운 것이라곤 없을 것 같은 작은 섬에서 그는 늘 새로운 것을 만나고 감동하고 배우고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며 삽니다. 마당에 핀 목련이나 나팔꽃 그리고 밭에 핀 들꽃 한송이를 보면서 우주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맑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의 영혼이 돌아갈 별자리를 찾고, 울안의 자두를 따면서 석기시대부터 사람에게 체화된 수렵채취의 기쁨을 깨우칩니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노동에서 얻는 즐거움과 기쁨에는 가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재미와 행복 위에서 인간과 자연의 영성을 이야기합니다. 야쿠시마 여기저기를 여행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바닷가에서 조개를 딸 때나 가릴 것 없이 그의 삶에는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만남'이 넘쳐납니다.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만남은 인간이 본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여러 차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를 살았던 자연철학자들의 사유에 깊이 공감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물과 빛, 흙과 공기에 속해 있는 생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지금 와서 분명해진 것은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라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야쿠시마의 깊은 숲 속에 조몬시대로부터 시작해서 7200년을 살아온 삼나무 '조몬스기'와 비교해보면 제아무리 잘난 인간도 오히려 삼나무 한 그루보다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삼나무 한 그루보다 하잘 것 없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고 나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음식쓰레기를 밭에 묻고, 똥오줌과 아궁이 재를 모아 밭에 뿌렸으며, 밭에서 베어낸 잡초를 다시 밭에 덮어 거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야쿠시마는 사슴 2만, 원숭이 2만, 사람 2만이 어울려 살아가는 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사슴과 원숭이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새싹부터 열매까지 싹쓸이하는 사슴과 원숭이 때문에 변변한 수확물을 거두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라고 하더군요. 


결국 많은 사람들이 전기 울타기를 만드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야마오 산세이의 방식은 다릅니다. 어부들이 사용하던 낡은 그물로 울타리를 치거나 사슴과 원숭이가 좋아하지 않는 작물을 심는 것으로 공생의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는 농사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전업농이 아니기에 이런 선택이 가능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농사가 생계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가족의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업농으로 살았다고 하더라도 자연을 대하는 마음자세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한편 야마오 산세이가 자연을 대하는 삶의 자세, 마음가짐은 세상 만물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는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를 '가미'라고 부릅니다. 그는 신을 천국에만 가둬 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자연철학은 '가미'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에 아직 얼이 빠져 있지 않기 때문에(거기에 있는 것도 신이지만) 그런 하나로서의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지만 새로운 신을 그냥 가미라고 표기한다." - 본문 중에서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다 가미다. 왜냐하면 가미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진심으로 좋았다고 느끼는 것을 통틀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실제로 야마오 산세이는 야쿠시마의 숲과 바다에서 만나는 풀, 나무, 바위, 돌, 이끼, 곤충들에게서 가미를 찾아냅니다. 풀과 나무와 바위와 돌과 곤충들에게 가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과도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직선의 시간과 회귀하는 시간의 교차점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시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배웠습니다. 그는 시간을 직선의 시간, 회귀의 시간 그리고 무의 시간으로 구분합니다. 아울러 사람들은 주로 직선의 시간에만 주목하며 회귀의 시간을 자각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그 하나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곧바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결코 뒤로 돌아설 수 없는, 불가역적인 '직선의 시간'으로 우리 문명의 시간은 이 시간에 지배되고 있다. 문명 특히 과학 기술 문명이 결코 뒤로 돌아가는 일 없이 앞으로 진보해 가는 것은 문명이란 처음부터 진보하는 것을 숙명으로 하는 직진하는 시간 안에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 직진하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주 그 존재를 망각하지만 바로 회귀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에 따라, 아침과 낮과 밤이 만복되듯이 지구의 공전에 따라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일 년이 된다. 아침과 낮과 밤으로 회귀하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로 회귀하는 시간은 태양계가 안정돼 있는 한 영원히 반복될 자연 시간으로 우리 개개인의 생명이나 가족이라는 집단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순환을 한다는 점에서 이 회귀하는 시간 안에 있다."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인간의 삶을 놓고 보면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해 가는 혹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는 직선의 시간이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아버지의 삶이 아들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삶이 딸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세대를 이어가며 마치 아침과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회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이 오늘 아침이 아니듯이 아들이 아버지와 같을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직선의 시간과 동시에 회귀하는 시간이 함께 존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하는 것도 인간의 역사가 직선의 시간과 회귀의 시간에 똑같이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선의 시간에만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연에 깃들어 있는 '가미'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정복이나 이용가치만 두고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닷가 어부를 위해서 산속의 숲을 가꾸는 사람들


아울러 이 책에는 생명의 순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어부의 숲'입니다. 어부의 숲은 바다 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숲을 인공숲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은 바닷속에 인공 어초를 넣거나 인공으로 산란한 치어를 방류하는 것이 바다 생물 자원을 늘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야쿠시마에서는 바다 자원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어부의 숲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공조림된 삼나무만 가득한 숲이 아니라 넓은 잎나무로 이루어진 자연림에 가까운 숲을 되살리면, 그 숲에서 부엽균이 생기고 그 부엽균이 강을 지나 바다로 옮겨지면 프랑크톤의 양이 늘어나고 어패류를 증식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에는 옛날부터 '어부의 숲'이라는 말이 있어 해안지대 수목은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합니다. 해안 숲, 해안에서 가까운 숲,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숲도 바다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바로 '숲은 바다의 연인'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심은 나무가 언제 자라나서 바다의 프랑크톤 증식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직선의 시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회귀의 시간으로 보면 지금 심은 나무가 결국은 바다의 프랑크톤을 증식시키고 어족자원을 풍부하게 할 것이며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부터 야쿠시마에 산 야마오 산세이는 2001년 8월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만, 그가 남긴 시와 글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은 야쿠시마 여행을 앞두고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남긴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읽는 내내 오래전부터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는 두 분이 자주 생각났습니다. 한 분은 장일순 선생님, 다른 한 분은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쓴 이 책에서 장일순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생각과 삶이 수 없이 많이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운동가이자 농부이면서 철학자이자 구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가 품고 산 삶의 원칙, 생활의 원칙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집중한다"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쉽게 지치지 않고 그 길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 10점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