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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하얀꽃 피면 감자, 자주꽃 피면 고구마(?)

by 이윤기 200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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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영득 글, 김동수 그림 <할머니 집에서>

이영득 선생님이 쓴 동화 <할머니 집에서>를 읽는 동안 자꾸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교보환경대상을 수상한 고승하 선생님이 만든 노래 중에 '서울 아이들'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서울아이들은 윤동재 선생님이 쓴 글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서울(요즘) 아이들

서울(요즘) 아이들에게는 질경이 꽃도 이름 모를 꽃이 된다
서울(요즘) 아이들에게는 굴뚝새도 이름 모를 새가 된다
서울(요즘) 아이들에게는 은피라미도 이름 모를 물고기가 된다
말도마라 이제는 옆집 아이도 이름 모를 아이가 된다


이제는 서울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에 사는 아이들도 질경이 꽃도, 굴뚝새도, 은피라미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서울' 대신에 '요즘'이라고 가사를 바꾸어 부릅니다.

<할머니 집에서>를 쓴 이영득 선생님은 풀꽃과 나무가 좋아서 들여다보고 찾아다니고 공부를 하다가, 어느새 숲 해설가이자 들꽃 안내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숲에서 어린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이 책을 쓰는 일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북 울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김해에 사는 이영득 선생님이 쓴 <할머니 집에서>는 경상도 지역말로 써 더 반갑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서울 아이들'처럼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들에게 질경이 꽃도 가르쳐주고, 갈퀴덩굴도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질경이 꽃도 가르쳐주고 갈퀴덩굴도 알려주고 싶어 풀꽃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내 눈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만 가득한 창원 봉림산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을 때마다 제각각 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풀꽃들과 인사를 시켜주신 분이 이영득 선생님입니다.

5년 전 봄에 봉림산 풀꽃 공부할 때, 그리고 3년 쯤 전, 팔용산에서 풀꽃 공부할 때, 딱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이지만, 마치 자주 만나는 친한 사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영득 선생님이 5년 전 여름 내 놓은 책 <풀꽃 친구야 안녕?>을 자주 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풀꽃 친구야 안녕?>에는 풀꽃 지기가 들려주는 재미난 풀꽃 이야기와 자세하게 관찰하면 찍은 풀꽃 사진이 담긴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영득 선생님이 쓴 <할머니 집에서>에는 이야기책에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다정한 친구 같은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곤 합니다. 하얀 감자꽃, 자주 감자꽃, 망개덩쿨, 호박꽃, 콩, 옥수수, 참깨, 이질풀이 그들이다. 주인공 솔이와 시골 친구 상구가 설사하는 닭에게 '설사하는 이질에 약이 되는 이질풀'을 뜯어다 먹였더니, 설사병이 멎었다는 이야기가 '꼬꼬꼬 닭이 아파요'에 나옵니다.

<할머니 집에서>에는 경상도 표준말도 많이 나옵니다. 말씨만 보아도 솔이네 집은 서울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서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경상도 지역이라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솔이냐? 할미다. 내일 할미 집에 올 끼가?", "오야 오야. 자주 꽃 핀 감자, 이제 솔이 끼다"와 같은 '경상도 표준말'이 가득하답니다.

솔이 할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시며 사시고, 솔이네는 인근 작은 도시에 살면서 주말이면 할머니가 사는 '원앙골'로 내려가 농사일을 거듭니다. 요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른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젊은 부부는 도시에서 사는 가족입니다.

감자 꽃이 하얗게 핀 감자밭에 자줏빛 꽃이 피었는데, 솔이는 이 꽃을 보고 하얀꽃에는 감자가 열리니 자주꽃에는 '고구마'가 열릴지도 모르겠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합니다. 솔이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솔이 엄마도 '자주감자'가 열리는 줄을 모릅니다. 아마 서울 아이들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자주감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이만 마흔이 넘었지만 도시에서만 자란 저도 서른 즈음에 '노래마을 1집' 음반에서 '감자꽃'이란 노래를 듣고서야 자주감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권태응님의 시에 백창우 선생님이 곡을 붙이고, 이제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다는 노래 말입니다.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할머니 집에서>에 나오는 요즘 아이 '솔이'도 자주꽃 핀 곳에서는 자주감자가 열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50여 쪽 남짓한 이영득 선생님의 짧은 동화 <할머니 집에서>에는 자주 감자 이야기가 나오는 '내 감자가 생겼어요', 시골 친구 동수와 친해지면서 망개로 목걸이를 만드는 이야기 '또글또글 망개 목걸이' 밭에 있는 호박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이야기 '말 잘 듣는 호박', 그리고 이질풀을 먹고 설사병이 낳는 '꼬꼬꼬, 닭이 아파요'라는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또글또글 망개 목걸이'를 읽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망개 목걸이를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말 잘 듣는 호박이야기에는 암꽃이 피지 않아 열매를 맺지 않는 호박을 나무라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머니에게 혼이 나는 호박을 보고서 솔이는 콩밭에다 대고 "콩콩, 많이 달려!"하고 소리치고, "옥수수야, 알 꽉꽉 차야 돼!"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호박도 콩도, 옥수수도, 참깨도 솔이 말을 모두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솔이 할머니와 같이 농사를 지어본 어른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호박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콩, 옥수수, 참깨랑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답니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아이의 그림일기를 보는 듯한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이 참 예쁘고요. 솔이랑 또래인 정한나라는 어린이가 썼다고 합니다.

이영득 선생님 이야기에 그림을 그려주신 김동수 선생님 그림 역시 솔이 또래 아이들 보다는 훨씬 잘 그렸지만, 그래도 솔이 만한 아이의 그림일기를 보는 듯한 기발한 표현이 담긴 그림이 가득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솔이의 그림일기장 본 듯한 느낌이 오래 여운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 종일 '서울 아이들'과 '감자꽃'이라는 동요 두 곡을 흥얼거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할머니 집에서> 이영득 글, 김동수 그림/ 보림 - 56쪽, 7,000원

 

풀꽃 친구야 안녕? - 10점
이영득 지음/황소걸음
 
할머니 집에서 - 10점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보림
주머니 속 풀꽃도감 - 10점
이영득.정현도 지음/황소걸음

내가 좋아하는 풀꽃 - 10점
이영득 지음, 박신영 그림/호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