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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차례상 여섯 가지면 충분하다는데...

by 이윤기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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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1.23 방송분)

 

요즘은 차례를 안 지내는 집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설이나 추석이면 가족 휴가를 떠난다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그래도 또 아직 많은분들은 설날을 맞아 어제 아침에 차례도 지내고 떡국도 드셨을텐데요. 오늘은 설 차례상 간소화 문제와 설 차례상을 통해 바라보는 ‘기후변화’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차례상을 어떻게 차려야 하는 지에 관해서는 지난 추석 때, 유교 전통문화를 보존해 온 성균관에서 차례상 간소화 방법을 새롭게 제시하였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오랜 세월 전통 의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였던, 성균관의례정립 위원회가 지난 추석을 앞두고 한국프레스센터 에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차례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을 표현하는 예식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후손들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것은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아울러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 가짓 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도 하였습니다. 

이 표준안에 따르면 음식 가짓수는 6개면 충분하고, 더 하고 싶으면 9개까지만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가장 손이 많은 전도 붙일 필요가 없다고 권유하였습니다. 당시 제안되었던 추석 차례상 여섯 가지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이었습니다. 여기에 조금 더 하면 육류, 생선, 떡을 놓을 수 있지만, 더 올리는 것은 가족들이 의논하여 정하라고도 하였습니다. 

 

차례 준비로 가족 불화... 취지에 맞지 않다

특히 차례 음식 중에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굳이 차례상에 올리지 말라는 지침도 내놨습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밀가루를 꿀과 섞은 기름진 과자)인 “유밀과를 올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셨다”는 사례를 들면서 기름으로 조리한 전과 튀김을 올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차릴 때 과일을 놓는 순서로 지키던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과일은 서쪽에 놓은다는 뜻의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 순서를 뜻하는 ‘조율시이’ 같은 순서들은 모두 예법책과 문서에 없는 내용이니 지킬 필요가 없고 편하게 올리라고도 했습니다. 아울러 어려운 한자로 뜻도 잘 모르는 지방을 써 붙이지 말고, 사진을 사용하라는 실용적인 지침도 내놨습니다. 

당시 성균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40%가 차례문화에서 가장 많이 개선해야 할 것으로 차례 간소화에 응답하였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집안마다 지켜오던 관습이 있어서 성균관의 발표만으로 곧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하루속히 더 간소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기후변화로 예상되는 차례상의 변화에 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차례상에는 바나나, 오렌지 같은 열대과일이 오르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과학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설, 추석 차례상의 대표 과일인 사과는 앞으로 차례상에서 점점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사과는 여름철 평균기온이 섭씨 26도를 넘지 않는 지역에서 재배되어야 열매가 잘 익어 상품성이 있는데, 이미 기후변화에 따라 남쪽 지방 평균온도가 점점 북상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수입 농산물로 달라지는 차례상

이미 사과 주산지는 대구에서 경북 북부지역으로 바뀌었고, 강원도의 사과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사과 재배지가 북상하면 21세기 말에는 한국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한 곳은 강원도 일부 지역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것도 있는데요. 명태의 경우 무분별한 남획과 함께 기후변화로 인해 수온이 상승하면서 서식지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명태는 1980년도에 강원도 앞바다에서만 10만톤 가깝게 잡혔습니다만, 2010년대에는 1~9톤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아예 국산 명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끼 명태에 대한 무분별한 남획도 원인이었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수온이 낮은 러시아 해역과 일본 오호츠크해로 북상했다고 하는 것이 기후과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명절 차례 상이나 제사상에 오르는 명태전은 모두 러시아산뿐입니다. 

사라지는 대신 새롭게 등장하는 생선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방어입니다. 예전에는 제주 인근 해역에서 잡히던 방어가 요즘은 강원도에서도 잡히고 있습니다. 연간 1000톤 수준이었던 강원도의 방어 어획량이 2017년에 3000톤으로 급증하였는데, 반대로 제주의 경우 어획량이 20~30%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례 상의 과일은 사과를 밀어내고 열대과일이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던 파파야, 바나나, 패션푸르트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고, 멜론, 망고, 샤인머스켓 키위, 블루베리 등은 이미 ‘메이드인 코리아 열대과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차례상에도 멜론, 망고, 샤인머스켓, 키위, 블루베리 등이 과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저희집의 경우에도 어린 조카들이 사과, 배보다 열대과일을 더 좋아하다보니 차츰차츰 과일 종류가 바뀌고 있습니다. 

 

50년 후에는 국내산 나물 구할 수 없을 것

차례상의 변화는 과일뿐만 아니라 나물 종류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기후변화에는 초본류가 더욱 취약하기 때문에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등 이른바 삼색 나물도 앞으로 50년 후에는 국내산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시금치의 경우 미국남부에서 재배가 힘들어지면서 샐러드 재료에서 시금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후변화는 과일이나 식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기후변화로 옥수수 수확량이 줄어들면 곧바로 옥수수를 사료로 하는 닭, 돼지, 소 등 육류 생산량에도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가축 사육량이 줄어들게 되고 더 비싼 값을 치뤄야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기상청에서 시민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2100년 차례상을 차려라>하는 체험행사를 진행했는데요. 2100년 차례상에는 북어포, 동태전, 건오징어가 사라지고, 제주도 귤대신 강원도산 귤, 빨간 사과대신 초록색 사과가, 전남 나주대신 충남에서 생산된 배가 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온도 1.5도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경고하는 기후 위기 시계가 6년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6년 안에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막아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번 설 연휴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이를테면 채식을 하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겠다와 같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 해보고 함께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